소설_당신의 목소리 (6)

by 지예

비로소 내가 태어났지만 당신은 창문을 잘 열지 못했습니다. 밤낮으로 울어 대는 나의 울음 소리 때문에도 열 수 없었고, 서쪽 끝으로 난 창이 신생아에게는 너무 춥거나 너무 탁한 바람을 몰아오는 탓이었습니다. 당신은 나와 함께 두 평 남짓한 그 공간 속에서 허둥대거나 끝도 없는 막막함에 잠기는 때가 많아졌습니다. 나는 자주 울었고 자주 비틀어 댔습니다. 혼자서 아무것도 못했지요. 잠드는 것도 어려워했고 잠에서 깨는 것도 짜증을 내며 깨어났습니다. 변명하자면 처음 만나는 세상의 빛은 나에게 너무나 시리고 낯섭니다. 나는 그 빛에 익숙해질 때까지 자주 내가 듣던 목소리로 위안 받고 싶어합니다. 당신은 당연히 내가 왜 우는지 몰랐지요. 당신은 우는 나를 내내 안거나 업기 위해 찬 물에 즉석 밥을 말아 마시고 그리고 나에게 젖을 먹이고 똥 기저귀를 갈았습니다. 팔이 아프고 어깨가 아픈 것은 사실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처음 괴롭힌 것은 나보다 먼저 당신의 자궁 속에 있었던 그 아이의 기억이었습니다. 그것은 슬픔이라고만 하기에는 좀 낯선 감정이었습니다. 엄마의 선택으로 한 아이가 태어났고, 한 아이가 태어나지 못했습니다. 나를 업는 것이나 달래는 것, 젖을 먹이는 것 모든 것이 아직 어설프고 서툴렀지만 결국 나는 당신에게 업혔고 꿀럭꿀럭 젖을 힘차게 빨아댔고 기어이 당신의 품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마침내 그 모든 일들을 해내고 나면 오로지 당신에 의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나에게 깊은 연민을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나를 안고 허둥대느라 얼굴은 창백해지고 머리는 땀에 젖은 채로, 잠든 나를 내려다보며 빙긋이 웃다가도 그만 감당하기 어려운 슬픈 감정에 젖어 들곤 했습니다. 내 손에 당신의 손가락을 끼우고, 당신이 잡지 않았던 그 손을 자꾸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이 손도, 당신이 놓았더라면, 쉽게 보냈다면, 그 남자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순간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당신의 그 생각이 나를 정말 어디론가 데리고 갈 것만 같아 두려웠습니다. 당신은 그럴 때면 괜히 내 손등을 간지럽히며 내 이름을 불렀습니다. 내 이름은 당신의 눈물로 잔뜩 젖어 나왔습니다.

그렇다고 매일 매일이 슬프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당신, 그 날을 기억하나요. 오랜만에 당신의 기분이 참 좋았던 어느 날. 내가 비로소 알아듣지 못할 신기한 옹알이 – 대충 어우, 정도 였을 겁니다. -를 시작했던 그 날. 당신이 흔들어주던 흑백 모빌에 방긋 웃음을 짓던 그 날. 당신은 나의 사진을 수 없이 찍어대다가 오늘은 50일 동안 고생한 당신 자신에게 크게 한 턱 쏘아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육아 카페에 ‘모유 수유 중인데 맥주를 먹어도 될까요?’ 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당신의 질문에 동지 의식을 느끼는 많은 엄마들이 “맥주 한 잔 정도는 즐겨도 되어요!” “젖은 오늘 하루 짜서 버리면 됩니다.” “엄마도 살아야죠!” 라고 댓글을 달아주었습니다. 그들의 짧고 다정한 한 줄이 참 친근했습니다. 그리고 당신도 그들처럼 평범하게 아이를 낳아 키우는 여자 같아 기분이 더욱 좋았습니다.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유명 연예인의 사진이 박힌 치킨 한 상자와 생맥주가 흰 봉지에 묶여 집 앞에 놓였습니다. 당신은 그 아름다운 연예인이 치킨을 입에 물고 있던 TV광고를 떠올렸습니다. 그 여자도 이 치킨을 먹겠지? 자장면과 치킨. 한강이 보이는 주상복합 고급 아파트에도, 이 도시 변두리의 반지하방에도 똑같은 가격으로 배달되고, 배달 기사는 “맛있게 드세요!”라는 공평한 인사를 건내 준다는 것. 산다는 게 별 건가? 당신은 오랜만에 삶이 참 재미있다 생각했습니다. 치킨 박스를 풀며 당신은 콧노래를 흥얼거렸고, 나에게 자주 말을 걸었습니다. 태어나 줘서 고마워. 너는 엄마에게 행복이야. 엄마가 오늘 과소비를 좀 했어!


나는 당신의 높아진 목소리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서 누워서 얌전히 잘 놀았습니다. 벽 한 구석 자꾸 자리를 넓혀가는 곰팡이를 쳐다보고 놀았고 내 주먹을 보며 놀았고 빨개지는 당신의 얼굴을 보며 놀았습니다. 맥주 한잔에 기분이 더 좋아진 당신은 나를 물고 빨며 내 볼에 얼굴을 부며 대며 한참을 깔깔대며 웃었습니다. 나는 그 고소하고 비릿한 냄새의 치킨이라는 것을, 내 오줌 색깔을 닮은 맥주라는 것을 자주 당신이 먹었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날은 다시는 오지 않았습니다.



ㅡ (5)가 너무 짧아 함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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