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계절이 바뀌었어도 당신은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없었습니다. 무서운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어린이집은 새로운 원아를 받지 않았고, 당신이 일하고 싶었던 곳도 더 이상 구인 공고를 내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한 가닥의 희망을 잡기 위해 두드리려 했던 모든 문들이 두려움으로 문을 꽁꽁 닫고 있었습니다. 뉴스에서는 이 전염병으로 인한 사람들의 죽음과 격리 소식을 연일 발표했습니다. 낯선 길을 걷고, 새로운 음식을 먹고, 누군가를 만나는 모든 행위가 죄인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불면과 두통은 당신을 때로 힘들게 했던 고질병이었습니다. 미용실에서 일 할 때도 야간 근무를 하고 걸어서 집에 간 날은 도시의 소음이 당신을 따라와 괴롭히는 탓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그 다음 날 어김없이 두통에 시달렸습니다. 그래도 그 때는 견딜만 했습니다. 정신없이 일하다가 진통제 한 알만 먹으면 금새 통증이 가라앉았기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나를 낳고 난 후, 당신은 거의 매일 불면의 밤을 보내야 했습니다. 내가 잘 때 곁에서 잠깐씩 쪽잠을 잘 수 있으면 좋으련만, 당신에게는 얼른 잠에 빠져 드는 것이 너무 힘든 일이었고 24시간을 뜬 눈으로 보낼 때도 있었습니다. 잠보다 더 괴로운 것은 잠을 못 잔 날의 당신에게 들이닥치는 두통이었습니다.
두통의 강도는 점점 심해졌습니다. 두통이 당신을 괴롭히고 있을 때 마침 나의 울음이 터지는 날은 당신이 가장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었습니다. 당신은 나를 들쳐 업고, 빈 속에 물도 없이 약을 한 알 털어 넣고, 약 기운이 돌기도 전에 참지 못하고 또 금세 한 알을 더 털어 넣곤 했습니다. 등에 업혀 불안한 내가 계속 칭얼거리면 그게 또한 두통의 원인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머리가 빙글빙글 돌아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던 어느 날, 당신은 두통약을 방금 먹은 것도 잊고 냉장고에 있던 술을 꺼내 벌컥벌컥 들이켰습니다. 술과 약은 당신을 핑그르르 아득한 공상 속에 빠지게 했고, 다 잊고 꿈을 꾸듯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옆에서 내가 울고 있었는데도 말이지요. 그 뒤 당신은 진통제 한 줌과 소주를 함께 들이키는, 위험한 행위를 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당신의 두통을 잊게 하고 이 좁은 방의 어두움을 삼키고, 나의 울음을 견디는 하나의 방편이 되고 말았습니다.
자주 당신의 귀에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이대로 내가 죽으면 어쩌지.
아이가 아프면 어쩌지.
취해 있는 동안은 적어도 괴롭지 않았습니다. 전화할 곳 하나 없다는 극명한 사실이 어쩐지 편안하게 느껴지던 환각. 당신은 훨훨 날아다니기도 했고, 돌아가신 할머니를 만나기도 했고, 이제는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엄마의 품에 안겨 있기도 했습니다. 당신의 엄마가 얼굴을 쉽게 보여주지 않아 당신은 자면서도 웅얼웅얼 잠꼬대를 했습니다, 엄마, 엄마아. 어디선가 아기의 울음소리가 아득히 들려와 눈을 뜨면 다시 떨어질 곳 없는 반 지하 방이었습니다. 술에 취해 있을 때만 이 시간이 견딜만 했습니다. 한밤중에 깨어나 캄캄한 어둠으로 묻히는 것이 두려운 당신에게, 술과 두통약만이 유일한 품이 되어주었습니다.
당신은 표정이 없어져갔습니다. 차라리 자주 울고 웃던 당신이 그리울 정도였습니다. 당신은 내가 칭얼거리면 말없이 그냥 들쳐 업고 방안을 서성였고 자주 술과 약을 털어 넣었습니다. 취해 있는 동안 나의 엉덩이도 짓물렀고, 나는 자주 배고팠지만 그래도 더 걱정이었던 것은 점점 말라가는 당신이었습니다. 당신은 나를 업는 것만이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인양 무심한 표정으로 나를 업고 먹고, 나를 업고 휴대폰을 보고 잠시 우유를 주고 기저귀를 갈고는 다시 나를 업고 술을 마시다가 그리고 나를 등 뒤에 두고 잠들었습니다. 나는 비척비척 울거나 손을 빨며 당신의 등을 보며 잠들었습니다.
ㅡ 늦어서 죄송합니다. 목요일 최종화와 에필로그 게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