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도 묻어 둔 우주
검고 잠잠한 어둠 속
천천히 천천히 흘러다니다
사람의 별에 오게 된 건
당신이 나를 불렀으니까요
열 달을 웅크려
낯선 내가 되어가는 동안
내가 곧 만날 곳이 참으로 두려워도
당신의 목소리가 세상을 기대하게 하였습니다
내가 처음 만난 이 세상은
차갑고 딱딱하고 낯설어
크게 크게 울 수 밖에요
당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세요
세상을 만날 용기를 내어 보게요
좋은 집을 바라지 않아요
멋진 당신을 바라지 않아요
나를 불렀던 목소리를 오래오래 듣고 싶은 거예요
그 목소리로 나를 안아 주세요
당신의 표정으로
웃음으로
제가 지난 2021년 9월 썼던 시입니다. 소설의 모티브가 된 글이기도 합니다.
정인이 사건이었습니다. 어릴 적 작가의 꿈을 묻어두고 흘러가던 내 삶에 다시 글쓰기에 대한 불꽃이 일게 된 것은. 20년 넘게 일과 무관한 글에는 펜 한 번 들지 않았던 제가 어느 날 밤 벌떡 일어나 노트를 펼치고 휘갈겼던 시였습니다. 당시 내 마음에는 활활 타듯 이런 말들이 떠돌았습니다.
"당신이 나 오게 했잖아, 당신이. 내가 세상에 오고 싶다고 했어? 당신이 오게 해 놓고, 왜 나를 이렇게 아프게 하는데?"
이것은 세상을 향한 욕지기이기도 했고, 나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 세상에 오기까지 아무런 의사 없이 오직 나의 의지로 오게 된 이 생명이 때로는 힘들고 벅찼고, 어려웠습니다. 대체 언제 클까. 언제쯤 해방 될 수 있을까. 웃지 않는 얼굴로 무심하게 쳐다보기도 했고, 잠들지 못하고 울어제끼는 아기에게 마음 속 짜증을 여과 없이 얼굴에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아기가 오히려 모든 것을 안다는데, 천릿길을 내다 본다는데. 언젠가 들었던 할머니의 그 말이 내 마음에 선명히 겹쳐졌습니다. 정인이 사건 이후, 모든 것을 빤하게 들여다보고 있었지만 아무런 힘없이 세상의 별로 져야 했을 그 생명들이 가슴에 사무쳤습니다.
나의 삶에 많은 것이 끼어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보육 시설에서 어른들의 손길을 기다리는 아이들을 자꾸 훔쳐 보며 입양에 대한 꿈을 혼자 몰래 키워가기도 했습니다. 입양이 단지 '가지고' 싶은 한 사람의 욕망으로 할 수 없는 것임을 절절히 깨닫고 비로소 마음을 접은 뒤에는 미혼모 카페를 가입했습니다. 동정도 연민도 아니었습니다. 고마움. 내 배로 낳은 내 아이와 함께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그들을 보면, 문득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습니다. 오래된 좁은 빌라에 생활고로 힘든 상황이지만 내 엄마의 품에 안기고 잘 수 있게 해 주어서. 가끔은 화도 내고 피곤함에 짜증도 내는 엄마이지만 미안해, 미안해 진심으로 울며 내 얼굴을 쓸어주는 내 엄마로 곁에 있어 주어서. 어떤 상황에도 생명을 지켜내 준 그 마음이 너무 고맙고 눈부셔서, 덥썩 안고 마주 앉아 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나는 문득문득 생각합니다. 뻐팅기는 아이를 유모차에 태울 때, 아이를 데리고 장을 볼 때, 내가 아플 때. 나는 힘을 보탤 수 있는 누군가를 쉽게 불러댈 수 있지만 혼자 그 모든 것을 견뎌야 하는 상황에 놓인 엄마의 자리를. 직접 돕지는 못하더라도 그저 관심을 가지는 그 마음이 조금이라도 모이면 좋겠다 생각했었습니다. 나는 권력이라는 것이 없고, 분노하고 슬퍼하고 모자란 글밖에 쓸 줄 모르는 엄마입니다. 그렇지만 아기를 어른으로 길러내는 엄마의 마음이 따뜻하고 행복하다면 이 세상에 아픈 일들이 점점 줄지 않을까. 내가 받은 상처를 조금이라도 덜 물려주기 위해 노력하다보면 작은 날개짓의 나비가 큰 파도를 만들어 내는 나비효과처럼, 언젠가는 세상에 웃을 일이 더 넘쳐나지 않을까 작지만 원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특별한 상황에 놓인 엄마의 이야기지만, 모든 엄마가 위로 받을 수 있는 이야기.
'엄마'보다 위대하고 아름다운 이름은 없다는 진실.
변하지 않는 그 보석같은 이야기를 언젠가는 더 잘 쓰고 싶습니다.
어설픈 첫 졸작. 읽어주신 분들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열심히 써 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