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1,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의 2022년 올해 경쟁률이라 했다.
A시에서 유일했던 국립 대학교의 부설 초등학교였다. 국립이라 그런지 나라에서 시행하는 각종 시범 교육을 먼저 시행했다. 학년 별로 세 학급 밖에 없었고 학급마다 다른 색깔의 체육복을 입었고 그 시대에 유일하게 초등 급식을 시행했고, 수영장도 있었다. 한 달에 한번 현장학습이라는 명목 하에 소풍을 갔고 발레와 바이올린도 배울 수 있었다. 사립처럼 좋은 교육기회를 제공하는 학교이나, 그리고 A시 제일의 선진화된 교육 방식을 추구하는 학교이나 누구에게나 기회가 개방되어 있다는 것에 문제가 있었다. (내 생각에는 그것이 문제였다.) 약자에 대한 차별과 사회의 불평등이 너무나 쉽게 용인되던 그 시절에.
A시에서 손꼽히는 부자도, 그러나 학교가 가깝다는 이유로 그저 원서한 번 내본 중심가 주변 가난한 뒷골목의 아이도 운이 좋으면 학교를 들어올 수 있었다. 나는 집 장사하던 아빠 덕에 일 년에 한 번 꼴로 이사를 다녔고, 엄마는 전학을 보내야하는 번거로움이 싫어 그 학교에 원서를 냈다고 했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꽤 만은 학습 전집을 경험했던 나의 유년을 생각하면 엄마도 교육 욕심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부자(학교에서의 부자 아이들은 정말 A시 제일의 부자 A시에서 가장 큰 종합병원 원장의 딸이라던가 였기에 나는 감히 거기 끼지 못했다.)도 아니었지만, 학교 주변의 뒷골목 아이도 아니었다. 그렇게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채로, ‘조용하고 얌전한’ 아이로 초등학교 6년을 보냈다. 그러나 생활기록부에 기록된 나와 나의 내면은 달랐다. 나의 욕망은 무엇이었을까. 난 언제나 말없이 불평등을 목격하고, 조용히 분노하는 아이였다. 한편으로 눈에 띄지 않고 싶으면서 또 활발하고 인기 있는 아이들을 선망했다. 반 아이들 앞에서 선생님에게 공개적으로 모욕을 당한 친구에게 편지를 전해 준 적이 있다. 꼭 공부 열심히 해서 성공하라고. 학교와 선생님께, 너를 괴롭힌 아이들에게 복수하라고. 그러나 나는 그 편지를 ‘몰래’ 전해주는 아이였다. 안타까워 다가가고 싶으면서도 또 그 아이와 친해 보이는 건 싫었다. 기류에 휩쓸리고, 휩쓸기를 좋아하는 멍청한 부잣집 아이들을 속으로 무시하고 경멸하면서도 그 아이들이 말 걸면 좋았다.
깨고 나면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민망했던 나의 어린 시절의 꿈. 꿈은 항상 같다. 그 아이들을 부러움에 차서, 열등감에 쌓여 바라보던 내가 아니라 그 아이들과 같이 교실에서, 운동장에서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다. 아이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고, 나는 활짝 웃는다. 내 목소리는 크고 당당하고 자신감 넘친다. 공부도 잘하고 인기도 많던 어떤 한 남자 아이이거나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괴롭히던 어떤 짓궂은 남자이거나,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남자아이 중 한 명이 나를 좋아한다. 나는 우쭐해져서 새침하게 이야기한다. 난 너 싫거든.
나는 그런 꿈을 30대까지 꿨다. 무려 20년 넘게. 직장을 다니면서, 아내가 되고 첫째를 낳고난 직후까지도. 꿈에서 깨고 나면 민망함에 실소하다가도 내가 지금 느끼는 행복에 어떠한 부족함이 있는 건지 공연히 불안해지기도 했다.
……언제부터였지? 꿈을 꾸지 않은 것이.
착하고 성실한 남편을 만나 변하지 않는 마음이 있다는 것에 감동하게 되면서, 가난은 결코 불행과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어느덧 내 나이가 그때의 엄마의 나이보다 훌쩍 지나고, 나의 거울 속에서 방에 우두커니 홀로 앉아있던 할머니를 닮은 여자가 스치듯 보이기 시작하면서, 여자로서의 가엽던 엄마와 할머니를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다정하게 아이들을 키운다는 것이 완벽한 상황에서조차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를 닮은 아이들을 낳고 별 일 없이 살아가는 이 모든 순간이 기적과 같은 놀라움으로 다가오기 시작하면서…….
나는 꽁꽁 숨겨두었던 내 지난 날을 나는 아무렇지 않게 내 입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이 용어를 빌려, 나 아싸 였잖아, 하며 호탕하게 웃기도 하고, 너무 어두워 은따로 지냈던 초등 시절을 남의 이야기 하듯 술술 내뱉기도 하고. 그러면서 어느 순간 꿈도 꾸지 않고 있음을 발견했다. 나는 이제 내 깊은 곳의 우울을 정시하려 한다. 한 불안했던 인간이 제대로 인간으로 커가는 과정을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고 싶다. 내 외로웠던 유년이 내 잘못만은 아니었고, 내 부모의 잘못도 아니었고, 그저 한 불완전했던 우주들이 만났던 세월의 한 이름이었음을 느끼게 되면서, 나는 다시 꿈을 꾼다.
내가 몇 편의 습작을 거치며 하나 깨닫게 된 것은 내가 ‘나’를 소재로 글을 쓰고 싶다고 해서 어느 날 요이땅, 하고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소설가 김영하의 말대로 문을 똑똑 두드려 주인공의 공간으로 들어가려고 하지만 거기 자꾸 그 시절의 작가인 내가 겹쳐지고, 내가 하고 싶은 다른 말들이 불쑥불쑥 머리를 내민다. 그리고 다독다독 해 주어야 다시 제 공간으로 돌아가는 것만 같다. 마치 그 이야기를 담지 않고서는 결코 그 다음 이야기를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왜 동화를 쓸 수 없었는지. 내가 한동안 습작했던 동화 <넌 참 예쁘구나>의 주인공이 될 뻔했던 행복하고 정의감 넘치는 아이보다, 미성숙하고 외로운 한 소녀가 나를 먼저 만나고 싶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