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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 Jun 02. 2022

아기의 집

과거_덕은동


등교 시간과 하교 시간, 학교 앞에는 검은색 고급 승용차가 꽤 많이 줄지어 서 있었다. 양복을 멀끔하게 차려입은 기사가 기다렸다가 차 문을 열어주는 풍경도 그리 놀랍지 않았다. 소녀는 학교 앞 4차선 대로에 걸쳐져 있던 두 개의 횡단보도를 건너 도시 외곽 덕은동까지 운행하는 109번 버스를 기다렸다. 30분에 한 번 오던 109번 버스는 시내의 대형 입시 학원 앞에서 쏟아져 나오는 청년들과 소녀를 함께 태우고 달렸다. 잔뜩 뚱뚱해진 몸으로 힘겹게 달리던 버스가 조금씩 홀쭉해지고, 어른들 덩치에 밀리지 않으려고 등받이를 단단히 잡고 서있던 소녀에게도 앉을 자리가 생길 즈음이면 창밖의 풍경은 슬그머니 학교 앞의 그것과는 다른 얼굴로 변해 있었다. 소녀는 비포장 도로 위 보얗게 피어오르는 흙먼지나 슬금슬금 붉게 잠겨오는 공기나, 버스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지친 표정을 보면 정확히 그 느낌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괜히 슬퍼지곤 했다.


버스를 내리면 그 자리에 서서 정거장 표지판을 붙잡고 구토를 했다. 차멀미는 소녀에게는 일상적인 일이었다. 작은 키의 초등학생이 제 몸보다 무거울 것 같은 가방을 등에다 짊어지고, 웩웩 먹은 것을 쏟아내고 있으면 마음씨 좋은 행인 한 분이 꼭 소녀의 등을 두들겨 주었다. 아이고 어쩌나, 아기야 괜찮나? 하며. 소녀는 그 손길을 거절하지 않았고 시원스럽게 점심 먹은 것을 다 쏟아낸 뒤 감사합니다, 인사를 꾸벅 하고 아무 일 없다는 듯 태연하게 집을 향해 걸었다. 정류장에서부터 길바닥에 줄지어 펼쳐진, 떠들썩하게 나물이며 생선을 파는 행상들을 지나 떡볶이와 튀김과 순대를 팔던 분식점도 지나 도넛과 꽈배기를 온통 노랗게 튀겨 내던 옛날 제과점도 지나 그리고 이제 소녀의 흥미를 끌지 않는 여러 가게들을 지나 십 여 분을 더 걸어 들어가면 토끼장처럼 낮은 지붕에 몸집이 고만고만한 주택들이 줄지어 나타나는, 런닝과 빤스바람으로 동네를 쫓아다니는 아이들이 이상하지 않은 소녀의 동네가 나타났다. 그러나 소녀는 동네에서도 이방인이었다.


동네의 아이들은 함께 우르르 몰려 다녔다. 햇볕에 그을린 까만 피부의 아이들이 석구야 학교 가자, 영희야 노올자 대문께에 서서 초인종을 태연스럽게 누르고 남의 집 대문을 아무렇지 않게 드나들었다. 함께 학교로 향하고 학교 끝나 가방 내팽개치고 금새 또 만나 같이 노는 아이들이었다. 이사까지 자주 다니는 마당에 쉽게 동네의 친구들이 생길 리가 없었다. 소녀가 하교 시간보다  시간은 더 훌쩍 지나 동네어귀에 들어설 즈음이면 아이들의 놀이는 이미 한창이거나 파하는 분위기일 때가 많았다. 동네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원피스와 볼이 반질반질한 샌들을 신고 동네에 들어서는 소녀를, 동네 아이들은 구슬을 치다가 소꿉놀이를 하다가 낯선 눈으로 올려다보곤 했다.


소녀의 집은 언제나 사장집, 2층집으로 통했다. 조용하던 동네에 흙먼지를 일으키며 2층 양옥집을 요란하게 짓고 벽돌 바른 시멘트 냄새가 채 마르기도 전에 소녀의 가족은 새 집으로 이사했다. 이미 동네에는 사장집이 이사 들어온데, 라는 소문이 파다해 있었다. 그깟 양옥집.  운이 좋아 빨리 팔리면 1년도 되지 않아 소녀의 엄마는 또 파리한 표정으로 혼자 이삿짐을 싸야만 했지만 적어도 그 동네에 사는 동안 소녀의 집은 사장집이었고, 소녀의 엄마는 사모님이었다. 1층 가게들에 세를 준 기간 동안은 주인집이기도 했다. 동네의 학교도 다니지 않고 혼자 백화점에서 파는 ‘김민제 원피스’를 입고 다니며, 언제나 뚱한 표정에 말도 없었던 재수 없는 2층집 아이, 학교에서도 동네에서도 언제나 이방인인듯 겉돌았던 그 소녀가 1990년 그 곳, 덕은동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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