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친구

아무튼 말이 문제다.

by 정민

일 잘하는 친구가 회사를 그만둘 때는 보통 세 가지 이유가 있다. 돈, 사람, 일, 아니면 개인적인 사정인데, 그 녀석은 그런 문제들을 일으켜 본 적이 없는 친구였다. 내가 아는 그 녀석은 꽤나 일에 열심이었던 친구였고, 솔직히 회사생활이 재미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녀석이 있어서 나도 귀찮은 일들이 많이 줄었다.

나는 그냥 했던 이야기이기도 했다. 이 바닥에 성인이 어디 있고, 고수는 어디 있을까. 나도 그만큼 간절했고, 그저 한 달에 몇십만 원 용돈 쥐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 일을 시작했었다.

솔직히 우리 인생에 만족이 어디 있나? 나도 그 녀석처럼 진짜 돈이 없었다. 그런데 말아먹어서 없던 건 아니었고, 아무리 직장생활을 오래해도 돈이 안 모이는 건 지극히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오히려 말아먹은 것에 대해 자책하고 있고, 한번 바닥을 떨어뜨린 그 녀석을 보고 있자니 매일같이 스트레스가 남아있었다. 하던 일이나 잘하지, 왜 오선 씨 말을 듣고 하지도 못하는 주식을 했나…

나는 그 친구를 그저 그렇게 생각했었다. 평범한 그 친구가 내 옆에서 오래 일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 친구가 무엇을 더 원하는지 찾아서 내가 해결해주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제 한 말은 솔직히 좀 과했던 것 같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그 친구를 챙기겠다는 건지.

치사하지만 믿는 구석이 전혀 없진 않았다. 나도 오랫동안 모시던 스승님 한 분이 계셨다. 그분은 1년에 한두 달만 한국에 계시고 나머지 시간은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을 하신다. 돌아오시면 일정을 소화하셔야 해서 만날 기회는 없지만, 1년에 한 번쯤 사주를 봐주시듯 말씀하셨다.

"올해는 이걸 하련다."

나를 포함한 수많은 제자들이 함께 분석을 했다. 각자 종목에 대해 스터디를 진행하고 발표회를 열었다. 문제점이 있으면 따져 묻기도 했고, 성실하지 않은 사람들은 혼이 났다. 자존심 강한 이 바닥에서는 젊은이들이 스스로 떨어져나가 또 다른 모임들을 만들어냈지만, 그런 조직들은 생각보다 탄탄하거나 오래가지 못했다. 이런 돈을 다루는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돈으로부터 멀어져야 돈을 만질 수 있다는 스승님의 가르침 덕분에, 이곳의 사람들은 특별했다. 대부분의 주식쟁이들처럼 HTS를 들여다보거나, 거래에 매달리거나, 증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대신 가정주부, 교사, 자영업 음식점 사장님, 그리고 은퇴 후 외딴곳에서 산과 바람을 벗 삼아 사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일을 시작하면 돈에 대한 집착부터 버려야 한다고 하셨다. 돈을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학문으로서의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면 처음부터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이 스승님의 철학이었다.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 낭만적으로 느껴졌고, 최소한의 생활비를 버는 방법도 알려주셨기에 나는 이 모임에서 오래 함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 역시 항상 스승님의 뜻에 순응할 수만은 없었다.

"너 정말 똑바로 하고 있는 게 맞아?"

이번에 내가 발표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신 것 같았다. 스승님이 모르시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기업의 본질은 제쳐두고, 오직 수급과 바닥에서 끌어올리는 힘만을 교묘하게 가려 발표했었다.

나는 부끄럽지 않았다. 솔직히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에 잃어도 되는 돈이 어디 있겠는가? 가까운 가족들도 돈 때문에 의가 상하는데, 남 중의 남인 우리가 스승님을 모신다는 이유만으로 도제식으로 된다는 건 어려웠다. 그저 하는 척이라도 하고 싶었을 뿐, 나도 이제 나만의 길을 떠나고 싶었다.

언젠가는 후회할 일이겠지만, 나는 스승님과 결이 달랐다. 스승님의 오랜 시간과 큰 자본이 그렇게 만들어진 것은 분명했지만, 나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당장 아이 둘을 키워야 했고, 늘 일이 많이 벌어졌다.

나만의 방식이 굳어지다 보니, 이 모임에 참석해도 심드렁했다. 사람들과 술을 마셔도 즐겁지 않고 따분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신나게 돈을 벌 수 있는데, 여기서 보내는 시간이 처음으로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은망덕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스승님께 오히려 묻고 싶은 게 있었다.

"그럼 선생님께서는, 이게 왜 좋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수십 명의 제자들이 있었는데, 나 같은 사람은 처음이었다.

아무도 묻지 않았고, 스스로 답을 찾고 있었던 이 조직에서 나는 처음으로 의사결정에 반기를 들고 있었다.

스승님은 몇 년 동안 조용하던 나의 이상 반응에 차갑게 답하셨다.

"간단한 것에 자꾸 네가 살을 붙이고 있다. 우리는 간단하게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들인데, 지금 자네는 의미 없는 포장재를 덧대고 있어. 재활용도 못할 것들을 어디서 가져온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너를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이 로직이 맞으면, 너는 다음부터 안 나와도 된다."

모든 사람들의 사연은 기구하고 비슷하다. 적어도 이 바닥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그렇다. 세상의 위험이라고는 뉴스에서 가끔 나오는 사고들, 나와 관계없어 보이는 부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저 멀리서 일어나는 소소한 전쟁들이 전부였던 사람들이, 어느 날 필연적으로 맞닥뜨리는 연속된 금융 사고들로 세상의 무게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갑자기 금리가 올라 대출이자가 증가하니 허리띠를 졸라매다 터져버리고, 여유가 있는 줄 알았던 내가 어느 날 갑자기 회사에서 해고 통보를 받고, 건강하던 자녀가 병에 걸려 맞벌이를 못하고, 결국 외벌이를 하다가 본인마저 교통사고를 당하는, 이런 처참한 일들이 한번에 벌어져 갈 곳 없는 사람들을 거두어준 것이 나의 스승님이셨다.

그런 스승님께 처음으로 반기를 든 사람이 내가 된 것인데, 나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지금 상태로는 겨우 먹고 살 정도였기에, 더 치고 나가야 낭만이라는 게 생길 것 같다는 나의 탐욕 때문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것들이 나에겐 진실처럼 다가왔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비교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비교가 나를 더 강하게 만들고 새로운 길로 이끌었다.

난 자신 있었거든,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 회사까지 난 늘 '적당히 살면 된다'는 주의였다. 지금보다 조금만 더 열심히 해도 항상 절반 이상은 간다는 내 삶의 모토가 투자에서도 통했다. 1등할 필요 없는 게 이 바닥이라, 나중에는 대충해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깨닫고 나서는 큰 위험 없이 꾸준하게 수익을 낼 수 있었다.

그런데 스승님한테만큼은 태를 내고 싶지 않았다. 나에 대한 기대가 크지는 않으셨지만, 가끔 삐딱거리는 내가 밉지는 않으셨고, 내 의견을 꽤 신선하게 보셨던 것 같았다. 나도 스승님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거래 방식이 스승님과 멀어지는 것에 대해서도 익숙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내 마음이 이날 처음 본능적으로 터져 나왔었다. 그리고 수년 뒤, 위태로운 아이가 한 명 있었다.

마치 나의 시작과 똑 닮은, 길을 일은 비에 젖은 고양이 같은.

어쩌면,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 친구의 손을 잡았는지도 모르겠다.

후회할 일은 만들지 않는 것이 원칙이므로, 이미 벌어진 일을 어떻게 할지 고민해야겠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녀석이 내 말을 덥석 받아들일 줄은 몰랐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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