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조차도 없던 나
내 꿈은 좋은 아빠였다.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생각했었는데,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고, 그냥 구체적이 될 것 같으면 다른 생각들이 너무 많아서 고민을 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좋은 아빠의 기준은 뭐였을까.
2가지 조건을 갖추는 아빠라면 어떨까, 남이 봐도 괜찮은 아빠, 그리고 가족이 봐도 괜찮은 아빠. 즉 , 이 2가지가 완성적이라면 아버지로서 좋은 조건이 될 것이라고 나는 당시 생각했었다.
남들이 볼 때 좋은 아빠는 뭘까 고민했을 때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나쁘지 않은 외모, 은퇴가 필요 없는 직업, 걸맞은 차, 적당히 시간적 여유가 있어 보이는 설명하기 귀찮네, 그냥 아내들에게 부러운 사람이면 된다.
내적인 좋은 아빠는 어떤 것일까? 가족에게 존경을 받는 아빠는, 대단히 어려운 존재가 된다. 너무 깊이 관여하지도 않고, 너무 방관하지도 않고, 대신에 필요한 것을 가르쳐주고 가족 유대감을 형성해 주고, 다양하게 발생하는 자녀를 포함한 가족의 인생의 이벤트를 슈퍼맨처럼 잘 해결해 나가야 한다.
대단히 상상 속에 가득한 아버지의 존재는, 현실로 오버랩하기에는 너무 힘든 것이었다. 아 이래서 영화나 드라마의 아빠는 그렇게 멋있던 것이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이 2가지 조건을 나는 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나는 불행하고 모두는 행복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업을 하는 친구의 아버지는 집이 부유해서 먹고사는데 걱정이 없었고, 다른 친구는 일찍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유산 덕분에 더 삶에 대한 짐이 오히려 좀 더 풀어진 듯해 보였다.
또 다른 친구는 외국계 회사의 임원이신 아버지 덕분에 20년 이상 장기근속하시면서 쌓아둔 자산들이, 자식들이 뭔가를 할 수 있는 언덕이 되었다. 그런 괜찮은 부모님 아래서 공부한 괜찮은 친구들은 좋은 대학 좋은 학과를 나와서 좋은 직업을 선택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서 귀한 자손을 낳고, 그렇게 살아갔다.
그런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 부모님이 부끄럽지는 않았지만, 우리 가족은 늘 외나무다리에서 살아야 하는 필사적인 목적을 갖고 수십 년을 살아왔다.
그럼 적어도 내 자식은 그런 인생을 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작했었지만, 이윽고 그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가, 당연하게도 지금의 삶에서 단 한 톨도 더 이상 나아지는 것을 바랄 수가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니 학자금 대출의 빚이 수천이었는데, 회사 생활을 5년을 하니 빚을 다 갚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사이에 결혼 준비를 할 수가 없었고, 열심히 모아봤지만, 집을 살 여력은 안되었다. 집을 산다면, 대출의 과정을 거친다 하더라도 원금 포함한 이자가 약 2백만 원에 육박하니 내월급중 많이 잡아야 100만 원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니, 모든 것은 환상이라는 것에 나는 기준을 세우게 되었다. 1억을 모으려면 200만 원씩 50개월을 모아야 한다. 그런데 집값은 4억이다. 그럼 나는 200개월을 모아야 한다 다 모으면 나는 결혼을 할 수가 없다. 뭐 이런 간단하지만 자명한 논리라는 것이다.
전쟁을 하더라도 그럼에도 사랑은 일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하고 싶다.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이다.라는 것을 전제해 보았을 때, 나는 이 부분에 대단히 공감을 한다. 인간이 불완전하기도 하고, 살다 보면 한 번쯤 넘어질 때 그래도 유일한 내 편한 명이 엄마가 아닌 다른 이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런데 사실 이 과정에서도 정상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또 다들 짝이 있다. 뭔가 결핍이 있는 사람들이 갈구하지만 마음이 가난해지니, 더 이상 누군가를 만날 힘조차 사라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남을 지속한다, 그리고 사랑이 시작되지만, 그건 결코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불확실의 존재 그 자체를 느끼기 위한 인생의 예측불가한 활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결론의 끝은 어떻게 살아도 좋으니 결국 지금 의 삶이 안전하지 못하다는 결론 때문에 출산율이 낮고, 결혼이 힘들고 좋은 배우자를 찾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그럼 거꾸로 검산을 한번 해보게 되는데, 사실 이 본질은 돈이 많으면 된다가 아닌가? 틀렸다. ‘남’들보다 많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대단히 많아야 한다는 점, 또한, 대대손손 이어나가는 어떤 유복하고 부유함만이 대대로 이어나가는 아비투스를 지키면서, 자손번성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범한 중산층의 가족은 대를 이어서 결혼하고, 또 자식을 낳고, 서로 행복을 다짐하며 사는 게 어렵다는 결론이 된다.
조금이라도 여유가 발생하게 되는 가문은, 이 조선땅에서 부동산으로 이미 많은 부를 창출하면서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평인들은 그렇지 않게 대를 이어가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을까. 도저히 방법은 없는 것일까
나는 이것에 대해서 너무나 많은 고민을 해왔고, 이 본질의 원인에는 인플레이션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물가가 전반적으로 지속해서 상승하는 현상을 말하는 인플레이션은, 경제성장에는 도움이 되지만, 개인이 이 인플레이션을 손쉽게 극복하는 방법 자체는 존재하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 시장의 S&P500만큼 성장하려면 내 월급이 연간 15% 씩 올라야 되고, 그러려면 이직을 선택하게 되는데 이직을 하면서 발생하는 내 인맥이나, 지속가능성에 대한 트레이드오프를 하는 이직이라면, 위험할 수밖에 없다. 물가 인상률은 5%이지만, 실제 내 연봉이 5% 이상 오르는 것조차도 기대를 해야 되는 마당이라면 15% 는 꿈도 꿀 수 없다는 것이다.
알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 후배들에게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보여줄 수 없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개탄스럽고, 앞으로의 미래가 어둡다는 것에 대한 것을 제시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발버둥 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죽을 수가 없었으면,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 어떻게 고개를 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나는 지금 포기하려면 너무 멀리 와버린 상태이기 때문에 , 수십 수백일을 이 고민만 하는데 모든 역량을 쏟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업이라는 것에 도전한다는 것은, 일확천금을 노리는 것도 아닌데, 실패의 리스크가 너무 크다. 어떻게 하는지도 솔직히 모르겠고, 성공했다는 사람들은, 항상 대단한 실패를 딛고 일어난 채 우연한 힌트가 큰 성공을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하 200층에서 날 꺼낸 부진이 형은 나의 스승이 되었다.
“너 , 한 가지는 명심하자. 지금 네가 했던 사고는 모두 반대로 하는 거야.”
-. 그게 어떤.. 말이에요?
“쉽게 말해, 그동안 넌 반대로 하는 것이었다고. 왜 주식이라는 게 오르는데 사? 오르면 팔아야지. 오르기만 하면 사도 되겠지 근데.. 그게 매일 오르던? 상식적으로… 그렇지 않아?”
…?
그랬다. 나는 상식도 없는 녀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