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억보다 귀한 마음

마음의 산책: 수필

by 하태수 시 수필


30억보다 귀한 마음


자네, 지금 3만 원만 좀 빌려줘.”

“형님, 지갑에 지금 돈이 없네요.”

“그럼 읍내 농협까지 차로 좀 다녀

오게.”“저도 잔돈밖에 없습니다.”

형님은 30억 원가량의 재산을 가진

분이다. 그런 분이 이렇게 말씀하실

줄은 몰랐다. 며칠이 지나, 형님의

부탁도 잊힐 즈음, 노인정에서 또

다른 형님이 부르신다.


“이봐, 아우야!”

“네, 형님.”

“자네 지갑에 지금 딱 5만 원만 없나?

여기 노인정이야.”“죄송합니다.

저도 지금 돈이 없습니다.”내가 사는

이 시골 마을은 가구 수가 채 30호도

되지 않는다.


수박, 고추, 마늘, 감자, 고구마, 양파

같은 작물을 하우스에서 재배하고,

소, 돼지, 염소도 함께 키운다. 농번기

에는 아침부터 농협에 들러 허리에

전대를 차고 하루 수백만 원을 현금

으로 찾아 나와, 저녁이면 품삯으로

일꾼들에게 나눠주는 모습이 흔하다

.
그래서 “시골이라도 돈 만지는 맛은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웃 형님 내외도 그런 분들 중 하나

였다. 나는 그 부부가 늘 돈방석 위에

서 사는 줄 알았다. 그런데 가까이에

서 지켜보니, 현실은 정반대였다.


수확철이 지나고 겨울이 되면, 야반

도주하는 이웃이 생기고, 농약을 마시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려온다.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정색하고

형님께 말씀드렸다. “형님, 임야도 좀

파시고, 밭이나 논도 일부 정리하시죠.

병원 에도 꼭 가보시고요. 요즘 형수님

얼굴이 많이 수척해지셨어요.”


하지만 형님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아

셨다. 해가 바뀌고, 또 한 해가 지났다.

결국 형수님이 먼저 세상을 떠나셨

고, 형님은 홀로 남아 이 집 저 집을

기웃거리다, 노인정에 자리를 잡은

셨다. 그곳에서 막걸리 한 사발 얻어

마시고, 노래방 기계 앞에 서서

‘울고 넘는 박달재’나 ‘나그네 설움’

을 부르시다가, 그대로 잠들곤 하셨다.

그러다 어느 날, 형님도 조용히 세상

을 떠나셨다. 그 많은 토지며 임야며,

손가락 하나 까딱 않고도 매달 수백만 원

씩 나올 수 있었건만, 형님은 끝내 10원

짜리 하나 방바닥에 놓고 구경도 못 해본

채 간경화를 앓다가, 간암으로 눈을

감으셨다

.

장례식장에 모인 형님의 자식들은 서로

자신들이 부모를 잘 모셨다며, 마을 사람들

에게 도장 좀 찍어달라고 돌아다녔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며

눈시울만 적셨다. 그때 문득, 택배로 매

계절마다 작물을 이 자식 저자식들 에게

보내주시던 형님 내외분의 모습이

떠올랐다.


거칠어진 손등, 깊게 팬 주름, 그리고 그

안에 스며든 세월의 무게. 마당 한편

똥거름냄새 가득한 곳에서 상추 몇 포

기, 배추 몇 포기를 골라내던 그 손길.
두 분은 다 썩어가는 작물로 끼니를

때우시면서도, 최상품 농작물만큼은

따로 골라 이 자식. 저자식 들 위해 먹을

라고 정성껏 포장해 택배로 부치셨다.


나는 그때 찍어두었던 사진 한 장을

휴대폰에서 꺼내 자식들에게 보여

주었다. 허름한 옷차림으로 박스를

들고 선 부모님의 모습. 그걸 본 아들

하나가 “아저씨…” 하며 대청마루

기둥을 붙들고 소리 없이 울기 시작

했다.


"그 울음은 누구를 향한 것이었을까."

"후회였을까, " "부끄러움이었을까."
내 눈시울도 함께 뜨거워졌다.

형님은 돈 많은 노인이 아니었다.

자신은 풀 한 줌으로 자기 삶을 허기로

달래면서도, 자식들 입에 좋은 것 하나라

도 더 넣어주려 손마디마디 갈라지도록

일하시던 순한 시골 농부였다

.
그가 남긴 30억보다 더 귀한 것은,

바로 그 삶 전체에 담긴 애끓는 사랑

과 묵묵한 희생과 헌신이었다.

지금도 마을 노인정 구석엔 형님이

늘 누우시던 낡은 돗자리 하나가

남아 있다. 그 자리에 앉으면,

“울고 넘는 박달재” 멜로디가 귓가에

흐르고, 막걸리 한 사발 놓고 허허 웃던

형님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그 따뜻했던 웃음이, 오늘따라

유난히 더욱더 그립다.

===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