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산책: 수필
내 사랑 울보
박꽃처럼 살결이 뽀얗고 고운 아이.
헌데 지 엄마를 닮아서인지,
처음부터 끝까지 우악스럽게 울어댄다.
특히 낯선 사람만 보면 그때부터가 시작
이다. 닭똥꼬 같은 작은 입술을 삐죽이며,
울 기회를 놓칠세라 눈을 찡그린다.
한번 울기 시작하면
대낮부터 노을 질 때까지,
때로는 졸음이 쏟아질 때까지
꾸벅꾸벅 졸며 운다.
나중에 가만히 보면, 눈물 한 방울 없다.
기가 막혀 말문이 막힌다.
아무도 그 울음을 말릴 수 없다.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눈깔사탕,
그것도 한 보따리를 할아버지가 사다 줘도
소용이 없다. 울보는 운다.
그래서 울보에 대한 연구는 꽤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아직도 논리적으로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이웃들 말은 이렇다.
스스로 나약함을 느낄 때 운다.
엄마가 눈앞에서 사라질 때 운다.
작은 은혜에도 감동해서 운다.
불쌍한 마음이 솟을 때 운다.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이 뽀뽀하면 운다.
울보는 분명 감정이 풍부한 아이다.
할아버지가 “뚝!” 해도 더 서럽게 운다.
그러다 울다 울다 지쳐서는
뿌루퉁한 얼굴로 꾸벅꾸벅 졸다가,
감미로운 음악처럼 스르르 잠이 든다.
그런데 자다가도 어깨를 들썩이며
울먹이는 표정을 지을 땐
차마 눈 뜨고 보기 안쓰러울 만큼 가엾다.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다.
아마 이 울보는 꿈속에서도 울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솔직히 말하자면,
가끔 귀찮기도 하다. 얘 엄마야, 애 데리고
너희 집으로 좀 가거라…’
속으로 그렇게 생각도 해본다.
눈물을 쉽게 보여선 안 된다는 말도
배우며 자라야 할 텐데.
하지만 오늘 이 이야기를 쓰며 깨닫는다.
그 울음 너머에 숨은 작고 진실한 감정들.
그 모든 것을 품은 울보의 존재가 요즘
따라 더 애틋하게 가슴에 파고든다.
그래서 ‘쪼다 할아버지’의 가슴 한편은
조용히, 까맣게 타들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정막강산(寂寞江山) 속에 스스로를 가둔다
.
손주의 울음소리조차 바람결에 스쳐가는
기억이 되어, 가슴속 사랑마저 노을빛처럼
천천히 저물어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