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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안나 May 16. 2017

너도나도 맛 평가단


요즘, 음식 관련 프로그램이 참 많다. 텔레비전만 켜면 나온다. 음식 만들기, 연예인 냉장고 들여다보기, 맛집 탐방, 양심 음식점 찾기……. 먹는 걸 누구보다 즐기는 나로서는 음식 관련 프로그램을 누구보다 환영한다.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즐기기에 좋고, 운이 좋으면 괜찮은 맛집을 건지거나, 맛있게 먹는 팁을 건지기도 한다.

밥집을 열고 보니 음식 관련 프로그램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음식 관련 프로그램을 즐기는 건 나만이 아니었다. 우리 가게를 찾는 모든 손님이 평가단이다. 맵다, 짜다, 달다 같은 말은 하지도 않는다. 어디서들 공부했는지 가게 아웃테리어까지 평가한다. 가게 앞이 너무 썰렁하니 사진 들어간 메뉴를 창에 크게 붙이라는 둥, 여기에 뭘 더 넣으면 맛이 좋아진다는 둥, 옆 동네 어느 집에 같은 메뉴가 있는데 거기 가서 먹어보라는 둥. 열정이 넘치는 어느 손님은 자신이 하루 내 캔 바지락을 양동이채 들고 와 칼국수에 이걸 넣으면 맛이 좋다며 부엌으로의 진입을 시도하기도 했다.


미라이짱처럼 그저 맛있게 먹기만 하는 손님 구합니다.


이쯤은 양반이다. 조금 친하다 싶은 손님들은 우리 가게가 걱정돼 아무것도 못하겠는지 온갖 메뉴를 추천하고 나선다. 돼지국밥, 감자탕, 김밥 전문점, 콩나물국밥, 곱창전골, 냉면. 이 지역에 있는 맛집 이름도 등장한다. 손님들 말대로라면, 일주일에 한 번씩 메뉴를 바꿔도 시원찮다. 이런 분들은 대부분 엄마와 매일 얼굴 맞대며 이십여 년을 함께 지내온 동네 분들이다. 내가 사고 치며 꼴통같이 구는 것도 다 지켜본 분들이다. 그들이 떠올리는 엄마는 장사를 하던 사람이 아니다. 엄마는, 잘나가던 때는 부족함 없이 돈 쓰며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읍내를 돌아다니던 사람이었다. 귀한 식재료를 구하면 음식을 만들어 여기저기 퍼주고 다니던 사람이었다. 큰 변화 없는 시골 동네에 엄마의 장사 소식은 엄청난 논란거리일 수밖에 없다. 대개는 논란거리보다 걱정거리라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으이구, 이래서 장사 되겠어?”
“밖에서 보면 문 연지도 모르겠어.”
“놀기 뭐하니까 장사하나 봐.”

개업 후 한 달. 있는 멘탈, 없는 멘탈 탈탈 털리고 나니, 남은 건 바닥을 친 자존감뿐이다. 제부는 열심히 구직활동을 한 끝에 자기 자리를 찾아 떠났고, 남편이 직장생활을 시작한 동생은 어린 조카를 돌보느라 오랜 시간 가게를 봐줄 수 없게 되었다. 팥빙수도 개업 날 이후 메뉴판에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요리 잘하는 엄마도 이제 없다. 정신없이 어딘가로 끌려가듯 한 달을 보내고, 손님들의 말을 생각한다. 말 없는 모녀가 겁먹은 송아지 같은 눈으로 밥집을 지키고 있으니 손님들이 이런저런 말을 던지기에는 최고다. 그렇게만 생각하고 넘기기엔 많은 숙제가 남았다. 밥집을 계속할 생각이라면 이대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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