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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안나 Oct 31. 2017

김밥이 없으면 뭘 먹어요?

"김밥 세 줄만 주세요."

"아... 김밥은 이제 안 파는데요."

"네??? 그럼 뭘 먹어요?"


나야말로 "네?"라고 답하고 싶다. 김밥이 없으면 뭘 먹냐니. 제육쌈밥, 갈비찜, 김치찌개, 시래기 고등어찜, 떡볶이, 라면... 이렇게 많은 메뉴가 있는데 뭘 먹냐니. 그러나 침착해야 한다. 손님에게 상기된 얼굴을 보여서는 안 된다.


"분식 드시려면 떡볶이랑 라면이 있고요, 간단하게 밥 드시려면 된장찌개가 있어요."

"김밥 포장하러 왔는데... 김밥 없이 떡볶이만 먹긴 좀..."

"아이고,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안녕히 계세요."


처음엔 계란값이 폭등해 아주 잠시만 김밥을 안 팔 작정이었다. 그런데 김밥을 안 파니까, 오픈 준비를 하며 허둥대는 시간이 절반으로 줄더라니. 예약 메뉴를 서빙하던 도중에 김밥을 말 일도 없고. 김밥 재료가 상할까 노심초사하며 재료를 먹어보고 또 먹어볼 일도 없고.


우리 가게 소고기김밥은 한 줄에 삼천 원. 재료비로 절반 나가고, 인건비니 전기세니 뺀다고 치면, 한 줄에 오백 원 남으려나. 김밥 스무 줄을 팔아야 겨우 만 원 남는다. 유동 인구가 적은 동네에서 하루 김밥 스무 줄 팔기가 쉬우냐. 글쎄... 결과적으로 김밥 팔아 남는 건 거의 없다고 봐야지.


"김밥 계속 안 팔았으면 좋겠다."

"그치? 일이 반으로 주는 것 같아."

"싸울 일도 줄고..."

"마트로 뛰어갈 일도 줄고..."


가게가 어려울 때 김밥이 나서 준 덕에 이만큼이라도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다양한 국수 옆에서, 떡볶이와 라면 옆에서. 모내기 철엔 논으로, 실치 철엔 회센터로. 불철주야, 동분서주 가게를 위해 일하던 녀석이었다. 몰아닥친 손님들을 보내고 설거지하느라 지치면 김밥 한 줄 말아먹는 게 그렇게 꿀맛이었다. 신세 갚을 일이 있을 땐 김밥을 말아 찾아가 인사하곤 했다. 김밥과의 애틋한 추억을 되새기다 보니,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김밥을 안 팔 수는 없었다. 사람이 의리가 있지.

 

그래도 장사하는 사람이 인정에 휘둘리면 안 되지 싶었다. 김밥전문점이나 분식집이라면 모를까, 김밥 준비하는 시간에 보는 손해를 무시할 수 없었다. 계란값 폭등으로 김밥을 찾는 사람들이 슬쩍 줄었을 때, 기회를 봐서 김밥을 메뉴에서 빼는 거다. 마침 며칠 있으면 해가 넘어가니 새해 새 마음으로 김밥을 안 파는 거다.


나름 자연스럽게 메뉴에서 김밥을 뺐지만, 손님들은 귀신같이 알아챘다. 김밥 찾는 전화를 거절하는 것도, 헐래벌떡 뛰어온 사람의 김밥을 향한 간절한 외침을 모르는 척하는 것도, 김밥이 사라진 걸 이해할 수 없다는 눈초리를 견디는 것도 쉽지 않았다.   


"김밥... 다시... 할까?"


손님들의 원성을 견디지 못한 엄마가 나보다 먼저 백기를 들었다. 화가 나면 아침 아홉 시에도 동네 공무원 아저씨 회사에 전화해 가따부따 따지는 양반이 이럴 때 보면 엄청 여리다. 하지만 여기서 흔들릴 수 없다. 이미 원성은 들을 만큼 들었다. 조금만 더 견디면 된다.


"아니야. 여기서 그만두면 안 돼. 앞으로 계속 휘둘릴 거야?"

"그래도 손님이 찾잖아. 먹고 싶다잖아."

"나도 먹고 싶어. 근데 김밥을 팔면 다른 메뉴에는 상대적으로 신경을 덜 쓸 수밖에 없잖아. 김밥 하나 살리자고 다 말아먹을 순 없어."

"이제 다른 것도 잘할 수 있어."

"나는 다 잘할 수 없어."


매몰차게 말한 게 약간은 후회가 됐지만, 떠나야 할 때를 알고 떠나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다고 했다. 여러 모로 이제는 김밥을 떠나야 했다.  


그렇게 몇 번의 고비를 넘기고서야 우리는 김밥을 잊을 수 있었다. 물론 지금도 김밥을 찾는 손님은 있다. 김밥이 없으면 뭘 먹느냐고 말하는 손님도 있다. 그래도 이제는 침착하게 대응한다. 김밥은 남는 게 없고, 김밥에 신경 쓰다 보면 다른 많은 메뉴들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고. 죄송하다고.


손님들에게 김밥이 없는 것에 사과하고 쿨하게 돌아서지만, 김밥이 사라져서 가장 아쉬운 건 사실 우리 가족이다. 참, 맛있었지, 그 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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