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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안나 Oct 25. 2017

화장실 좀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화장실 가고 싶어."

"얼른 가."

"나 없을 때 전화 오면 어떻게 해?"

"내가 받을게, 얼른 가."


나는 화장실을 자주 간다. 컨디션이 안 좋거나 긴장을 하면 더욱 자주 간다. 어릴 때부터 내가 화장실만 가면 화장실 밖에서는 중요한 일이 터졌다. 내가 없으면 안 되는 일, 내가 있어야 하는 일이 터졌다. 이런 것도 머피의 법칙이라고 하나. (요즘 사람들도 머피의 법칙이라는 말을 쓰나?)


급하게 화장실로 들어갔다. 어김없이 화장실 밖에서는 전화벨이 울린다. 아... 조금만 더 참을 것을.


"네... 네? 네..."

"어디래?"

"갈비찜 3인분 해달래."


주방에서 점심 준비를 하던 엄마가 전화를 받으려면 상황이 조금 복잡하다. 전화벨이 울리면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야 하고, 장갑을 벗고 나면 전화는 이미 스마트폰으로 돌아가고 만다. 그럼 다시 스마트폰을 찾아야 하고 전화를 받고 나면, 엄마의 정신은 이미 반쯤 나가 있다.


그런데 그 신기한 전화라는 것이 꼭 내가 없을 때만 온다. 화장실에 갔을 때, 마트에 심부름을 갔을 때, 집에 뭘 좀 가지러 갔을 때. 엄마가 전화받기 번거로운 것도 번거로운 것이지만, 손님들은 저마다의 특성이 있다. 반찬을 많이 먹는 손님, 진미채를 유독 좋아하는 손님, 메인 메뉴를 많이 줘야 하는 손님, 안쪽 자리로 세팅해줘야 하는 손님, 예약 시간보다 십여 분 일찍 오는 손님. 귀가 밝은 편인 나는, 전화 너머의 목소리로 어떤 손님인지 대충 가늠을 한다. 그 손님의 식성이나 행동 패턴 정도를 기억해내면서. 이 작업은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매우 중요하다. 손님이 누구인지 알고 테이블 세팅을 하는 것과 아닌 것 사이에는 퀄리티의 차이가 있다. 손님을 두 말하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은 내가 편하고 손님이 편한 길이니까.


"손님들은 왜 꼭 내가 없을 때 전화를 할까?"

"그러게. 어디서 보고 있는 것마냥."

"불안해서 화장실도 못 가겠어, 진짜."

"그래도 화장실은 가야지. 병 생긴다."


안 그래도 화장실에 자주 가는 딸이 화장실을 참다 병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엄마는 걱정이 많다. 나는 내가 화장실에 갔는데 전화가 오면 어쩌나, 걱정이 많고.


그래도 이미 지나간 일이니, 예약 사항을 포스트잇에 적어 붙여두고 오픈 준비를 한다. 홀 바닥을 닦고, 테이블을 닦고, 물통에 물을 채운다. 반찬을 체크하고 예약 테이블 세팅을 시작한다. 오늘 예약은 여기까지구나, 더 이상 전화가 오지 않네. 그쯤 되면 화장실이 한 번 더 가고 싶다. 지금 갈까, 조금 더 기다릴까. 엄마가 많이 바쁜 것 같은데 조금만 더 참아볼까.


어영부영 참고 참다 엄마에게 화장실에 가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참 신기하지.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잠그자마자 전화가 또 온다. 허허, 변기에 앉아야 할지 밖으로 나가야 할지 정말 모르겠을 때, 엄마가 전화를 받는다. 손님이 아마도 나를 찾는 모양이다. 화장실 벽 너머로 "잠깐 나갔어요"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정말 놀라운 것이 하나 더 있다. 이 법칙이 나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는. 희한하게 엄마가 스마트폰을 두고 가게 밖으로 나가면 엄마 스마트폰이 울린다. 제일 바쁜 시간에 핫라인으로 연락이 온다는 것은, 당사자가 전화를 받아야만 한다는 의미. 엄마의 초초 단골들의 전화를 엄마는 받지 못하는 이상한 상황이다.


"어디 갔다 왔대?"

"중앙마트."

"목욕탕 아줌마가 동태탕 여섯 개 해달래. 삼십 분 있다 온대."

"왜 꼭 나 없을 때 전화한다니."

"그러게."


나는 직감한다. 엄마와 내가 닮은 구석은 한 군데도 없지만 나는 분명 엄마 딸이다. 정말 희한한 순간에 내가 엄마를 닮았음을 느낀다. 중요한 순간에 중요한 볼 일로 자리에 없는 것. 이것은 우리의 모녀 사이를 끈끈하게 감싸고 있다. 그래서 늘 조금 괴롭지만, 늘 조금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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