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아프냐? 중년이다.
그런 날이 있다. 몸에 힘이 지독하게 안 들어가는 날!
육아 휴직을 즐기고 있는 친구가 멀리서 커피 한잔 하자고 집 앞으로 행차를 했다. 누군가 나를 위해 시간을 투자한다는 건 설렘을 동반한 것이라 언제나 나를 들뜨게 한다. 이럴 때는 조심을 해야 되는데 역시나 우려했던 사고가 꽈당~ 몸보다 마음이 앞선, 땅바닥에 누가 있나 싶은, 밑에서 나의 다리를 살포시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친구를 보자마자 나무가 쓰러지는 듯, 나의 허락도 없이 몸뚱이가 앞으로 천천히 넘어갔다. 한동안 누웠다가 친구의 도움으로 바닥에 앉을 수 있었다. 갑자기 웃음과 땀이 함께, 약간의 눈물도 그것들과 함께 흘렀다. 그런 말이 있던데, 넘어져야 일어나는 법을 배운다고, 역시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는 것인가. 이런 신발, 이러다 죽겠어요.
욕심을 내지 말고, 책임질 일을 만들지 말고, 물 흐르듯이 살자가 삶의 모토였던, 그랬던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 생기고, 남에게(특히 가족과 친구에게) 짐이 되는 순간을 피하기 위해 엄청난 책임감이 생겼다. 이 일을 어찌해야 될지, 누군가에게 해결책을 묻는다면, “답이 없어요! 털형~” 아마도 이런 대답이 나올 것이다. 우짜~우짜~ 웃자고~
생각의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 순간 어김없이 찾아오는 고독이란 놈이 반가운 지금이다. 사실 쉽지 않은 현실을 매일, 매 순간 아무렇지 않게 버티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아니 조금도 아무렇지 않다고 하는 게 정확한 심정이다. 어쩌면 불편할 수 있는(재미없는, 쓸모도 없고) 이야기를 한 번은 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즐거운 마음으로 그동안의 증상을 시간순으로 기억을 더듬어 간략하게 적어 보겠다.
처음 몸의 이상을 감지한 건 2020년 늦가을로 기억한다. 그전부터 좋지 않은 몸 상태와 마음으로 천천히 나빠진 건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사고가 아닌 이상은 특정 시점부터 갑자기 건강은 악화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털형은, 왜 찾아온 건가? 왜 지금인가? 원인은 무엇일까? 회복이 가능할까?... 깊은 수렁에 빠져 있었다. 아마도 다들 그렇게지만 초기에는 나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다. 가끔 오른손 검지가 자유 의지를 갖고 움찔움찔, 그렇게 독자적인 행동을 했을 뿐이었다. 나에게서 독립을 하려는 귀여운 손가락 반란군 정도로 생각했다. (이렇게 쉽게 정권이 바뀔지는 몰랐다.)
며칠 지켜보다 동네 정형외과를 간 결과는 손목 터널 증후군이 의심된다, 의사의 말씀. 워낙 키보드, 마우스를 많이 사용하는 직업이라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했다. 운이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닌 털형, 손목 보호대를 착용하고 최대한 오른손 사용을 자제했지만, 안타깝게도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다. 가볍게 볼 반란군이 아니었다.
그렇게 2021년을 맞이한 털형은 팀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일주일 2~3회, 점심시간, 물리치료를 시작했다. 좋아지길 바라면서 도수 치료까지 병행한 두 달이었다. 여전히 오른손의 반란은 진압되지 않았고 무언가 큰 위험을 감지한 털형은 큰 병원에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이때도 몰랐다. 이렇게 긴 싸움이 될지는, 이길 수 있다는 확신도 없고.
이런 경우 대학 병원이 처음으로 보내는 곳은 신경외과이다. 아니 명확히는 동네 병원에서 그렇게 소견서를 작성해 준다. 목 디스크로 인한 신경의 문제가 가장 일반적이고 반란을 진압하기 수월한 케이스. 하지만 그렇게 운이 좋은 편이 아닌 털형이라고 말~했~지~. 신경과로 trans~, 조금 놀랐지만 이때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곧 진압될 것이라고, 잘해야 경미한 뇌출혈일 것이라고. 또다시 mri 통에 들어간 나는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다. 살짝 공황이 있는 공항 가는 것을 좋아하는 털형은 통에 들어가는 것이 떨리고 무섭다. 눈을 감고 좋은 풍경을 생각, 또 생각해도 시간은 빠르게 흐르진 않는다. 어렵게 찍고 나온 결과는 뇌출혈 문제가 아니라는 의사의 말씀에 더 복잡해진 털형!!
원인을 알 수 없는... 오른팔에서 멈출지... 온몸으로 갈지... 운이 좋아 돌아올지...
이후, 다른 곳에도 경련이 찾아왔고 좌절도 찾아왔고 회사도 휴직했다. 아름다운 친구분들 덕분에 정신을 차리고(병원 예약부터 여행까지, 하소연은 덤), 몇 군데 대학 병원을 더 찾아갔지만 반란은 진압되지 않았다. 이때가 2021년 12월, 끝을 알 수 없는 아픈 중년의 삶이 시작되었다. (좋은 의미의 영포티가 되려 했는데, 역시 알 수 없는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