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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 엔지니어 Jun 24. 2021

단 한 번의 해외여행

여행, 어머니

국내 항공사에  박봉을 받고 다니면서 멈추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항공사에 입사한 후에 수습 기간을 마치고 시작한 해외 배낭여행이다. 백만 원 조금 넘는 월급을 받아 일부 저축하고 남은 돈으로 시간이 나는 대로 해외로 배낭을 하나 메고 무조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회사에서 스트레스가 쌓여도 일단 배낭여행으로 전 세계를 누비며 그날만 생각하며 보고 경험을 하다 보면 모든 스트레스를 날리고 충전하고 돌아와 다시 업무에 집중할 수가 있었다.


배낭여행은 결혼하고 나서도 계속되었다.  혼자가 아닌 아내를 동반하고 돌이 갓 지난 아들도 데리고 해외 배낭여행을 떠났다. 그렇게 보고 배운 것들이 내게 새로운 세상을 보았고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러던 어느 해였다. 당시에 어머니는 인천의 월미도에서 식당 일을 하고 계셨다. 우린 부자가 아니고 가진 것이 없었다.


나도 적은 월급으로 생활하고 있었기에 어머니를 도와드릴 여유가 없어서 매우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를 찾아뵙는데 어머니의 모습이 무척 야위셨고 어딘지 모르게 몸이 안 좋아 보이셨다.


“어머니 어디 안 좋으세요? 어디 아픈 신 거예요?”


“의사가 위염이라고 하는데 약을 먹는 데도 소화가 잘 안 된다.”


내가 갑자기 여태껏 어머니를 위해 해 드린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에 아내와 앉아서 상의했다. 어머니와 장모님을 모시고 사이판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게 어떻겠냐고?


그런데 내게는 가진 돈이 정말 없었다. 내게는 8년을 열심히 저축한 주택 부금 통장이 전부였다. 이 통장을 해약하고 그 돈으로 어머니, 장모님 두 분을 모시고 사이판으로 가족 여행을 가자고 했더니 아내는 흔쾌히 허락을 해주었다.


그다음 날 어머니를 모시고 시장에 들러 여행에 필요한 어머니 옷, 모자와 운동화 한 켤레를 사드렸다.

며칠 후에 준비하고 어머니와 장모님을 모시고 한 살 먹은 큰아들, 그리고 아내와 함께 사이판으로 날아갔다. 사이판에 도착하고 몸이 안 좋으신 어머니를 위해 첫날은 무리하지 않으려고 호텔에서 쉬고 여행사 가이드를 불러 하루에 한 곳씩 만을 돌아보는 것으로 일정을 만들어 여행을 시작했다.


어머니와 장모님은 정말 좋아하셨다. 사이판 원주민과 함께 사진도 찍고 맛있는 해산물도 사드렸다.


현지인이 코코넛이 어머니 증세에 좋다고 해서 현지인에게 부탁해서 생 코코넛 10개를 직접 따서 가지고 간 가방에 넣고, 가방을 하나 더 사서 40개의 코코넛을 까고 주스를 페트병에 담아 한국으로 돌아왔다.

공항에 가방을 갖고 들어오다가 세관에 가방이 걸려 사정 얘기를 하자 무사히 통과를 시켜 주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온 후에 한 달 만에 어머니께서 몸이 더 안 좋아지셔서 자리에 누우셨다.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서 갔더니 췌장암 말기로 3개월의 시한부 통보를 받고 바로 암 병원에 입원하셨다. 그리고 한 달을 조금 더 사신 후에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단 한 번의 해외여행이 내가 어머니께 해드린 전부였다. 그리고 너무도 죄스러워 3년을 꿈속에서 울다 깼다. 지금은 다 해드릴 수가 있는데 이제는 내 곁에 안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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