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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 엔지니어 Jan 29. 2022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해외 출장, 항공엔지니어, 캄보디아

 

또 한 번의 장기 출장을 기회가 찾아왔다. 6월의  어느 날 매니저가 나를 사무실로 불렀다.


"미스터 김! 프놈펜 좀 다녀와. 이번에 새로운 비행 편을 열었는데. 이 주 정도만 있으면 될 거야"


" 알았어. 언제 가는 거야?"


그리고 삼 일 후에  아내와 막내아들과 함께 프놈펜행 항공기에 올랐다.

아내와 아들의 티켓은 내 개인 비용으로 비즈니스석을 샀다. 일 인당 35만 원을 지불하고 취항한 지 얼마 안 돼서 빈자리가 많았다. 가족도 대기 없이 바로 옆자리에 함께 배정을 받고 편안하게 출발했다. 8시간을 날아서 미얀마의 양곤에 한 시간 반 머물다가  한 시간 반을 프놈펜에 도착했다.

항공기에서 내리자마자 지상 직원이 바로 우리 가족을 안내하고 입국을 마쳤다. 즉시 공항 출입증을 발급 받아서 내가 방금 타고 온 항공기를 핸들링하는 동안 가족은 공항 라운지에서 쉬고 있었다.


항공기가 출발하고 공항 직원에게 연락처를 받았다. "미스터 김! 여긴 일주일에 세 편의 비행 편이 격일마다 있어. 내일은 쉬고 모레 오후 7시에 공항 사무실로 오면 돼. "


'이게 웬 횡재야!'


현지 직원이 나를 위해 개인택시를 예약해줘서 프놈펜에 머무는 동안 언제든지 기사를 부르면 왔다. 공항에서 10분 거리에 새로 지어진 최신 호텔에 머물며 쉬는 날에는 프놈펜 주위를 구경하고 가족이 머무는 10일간 프놈펜 주변과 시엔립에 있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 앙코르 와트를 6시간 거리를 택시를 타고 다녀왔다.


막내는 매일 프놈펜에 미슐랭에 알려진 맛집을 검색해 미식 체험을 즐겼다. 물가가 엄청 저렴하여 고급 레스토랑 음식도 3만 원 이하로 모두 가능하기에 가족 모두 행복하게 지내다 두바이로 돌아갔다.


나는 혼자 남아서 남은 일주일을 지내며 학생 시절에 영화에서 본 슬픈 역사의 현장인 '킬링필드'를 다녀왔다.


크메르 루주 정권 (캄푸 체아 공산당)에 의해 캄보디아 내전 (1970-1975)이 끝난 직후인 1975 년부터 1979년까지 캄보디아의 통치 동안 이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대량 살해되고 매장되어있었다. 공산 정권이 지식인, 안경을 쓴 사람, 외국인, 가족 심지어 복수할까 봐 갓난아기까지 나무에 내려쳐 살해하고 그 지역에 묻혀 있었다. 너무도 처참하고 슬픈 현장을 직접 확인하고 보니 내 택시 운전자도 그때 돌아가신 희생자의 아들이었다.


지금도 캄보디아는 슬픈 역사를 안고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두바이로 돌아가기로 한 예정일 하루 전에 프놈펜 매니저가 불렀다.

"미스터 김! 계획이 변경되어 이 주간 더 엔지니어가 필요한데, 미스터 김 만 괜찮다면, 두바이에 미스터 김을 이 주간 더 있게 해달라고 요청을 할게."

"오케이."

'이건 또 웬 행운'


"그런데 두바이에서 받아온 체재비가 내일이면 마지막인데?"

그렇게 프놈펜에서 현지에서 이 주간의 체재비를  다시 받고 이 주간 너무도 여유로운 프놈펜의 휴가 같은 파견 생활을 마치고 두바이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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