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러닝코스를 소개합니다
여행을 좋아하지만, 국내 여행에서 종종 한계를 느낀 적이 있다. 한국인이라면 한 번쯤 방문할 법한 관광지는 거의 다 가보았고, 긴 줄을 기다려 먹는 유명 먹거리들도 이제는 흥미를 잃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는 조금이라도 늦으면 여행지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 제한적이다. 숙박은 물론이고, 인기 관광지도 예약이 꽉 차 있어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
그러나, 산을 찾기 시작하면서 모든 지역이 새롭게 다가왔다. 뒤돌아보면 내가 원했던 것은 단순히 먹고 구경하는 것이 전부였기에 여행이 지루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산을 접하고 나서는, 꼭 유명한 곳이 아니어도 여행의 설렘을 느낄 수 있었다. 소풍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전날 밤이면 기대감에 설레며 잠들었다.
러닝을 시작한 이후로는 익숙한 여행지도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가까운 서울에서도 한강을 따라 달릴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웠고, 바닷가에 가면 파도 소리를 들으며 달릴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꼭 멋진 명소가 아니어도, 러닝을 하다 보면 지도에서만 보던 골목들을 내 두 발로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모든 장소가 새롭게 다가온다.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나면서 여행 가방도 자연스레 무거워지지만, 그만큼 즐거움도 함께 커진다. 이제는 러닝의 매력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아침 공기를 가르며 달릴 때 느끼는 상쾌함과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을, 소풍을 가는 듯한 설렘을 함께 나누고 싶다.
3월 31일 양양에서
겨울바람이 남아 있는 이른 봄, 가족들과 함께 강원도 양양을 찾았다. 이번 가족 여행에는 새로운 손님도 있었다. 사촌오빠네 가족이 함께해 귀여운 조카도 함께였다. 7살 조카의 웃음소리 덕분에 차 안의 공기가 복작복작해 더욱 분위기가 들떠있었다.
여행 첫날밤에는 시장에 들러 오징어순대와 다양한 음식을 사 먹었다. 그래서 아침 일찍 달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몸이 조금 무거워진 느낌이 썩 좋지 않아 차가운 공기를 맡으며 바다 옆을 달리고 싶었다. 잠들기 전 운동복을 머리맡에 두고 설레는 마음으로 잠들었다.
가족들과 떠나는 여행의 최고 장점은 편안함이다. 간혹 의견 차이로 잠깐의 불편함이 있더라도, 모두가 아침 일찍 일어나기에 이른 아침 러닝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오늘은 사촌오빠도 함께 뛰기로 해서 오빠와 준비를 마치고 길을 나섰다.
해가 떠오르고 있었지만 아침 공기는 차가웠다. 간단히 준비운동을 마치고 바다 옆 산책로를 뛰자 마음이 따뜻해졌다. 옆 차도에서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 소리는 파도 소리에 묻혔다. 한참을 달리다 속초 시내로 접어들었고, 큰 꽃게 모양 동상을 반환점 삼아 다시 바다로 돌아왔다.
바다 근처로 오니 저 멀리 조카의 모습이 보였다. 나를 따라와 옆에서 뛰는 모습이 기특하게 느껴졌다. 시합을 하자며 열심히 달리는 꼬마의 도전에 두 손을 들고 포기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작은 발로도 열심히 발을 굴리는 어린아이의 해맑음이 참 이뻤다.
아직 하루가 시작되기 전의 아침이지만, 가족들과 함께한 아침 러닝 덕에 마음이 상쾌했다. 어제 많이 먹었던 저녁밥도 소화가 다 된 것 같다. 다 같이 갑자기 배가 고프다고 배를 부여잡으며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도 잊을 수 없는 가족여행이 될 것 같다.
8월 11일 시드니에서
갑작스레 호주 여행을 계획하게 됐다. 친구들과 시간이 맞아 한 달 전부터 준비를 했고, 그 계획 중 하나는 아침 조깅이었다. 한국이 여름이라면, 호주는 겨울이다. 하지만 한국의 겨울처럼 춥지 않고 가을 같은 겨울이어서 러닝 하기에 더 좋았다.
마치 전지훈련을 떠나는 기분이었다. 8월의 한국은 무더위가 절정이었고, 밝은 낮에 달리기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서늘한 온도와 가벼운 바람을 생각하니 마음이 설렜다. 첫 코스는 숙소 근처 하이드파크를 지나 보태닉가든과 오페라하우스를 도는 것이었다.
추운 계절에는 달리는 사람이 줄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침 일찍 뛰는 사람이 참 많았다. 나뿐인가? 싶었던 순간도 공원에 접어드니 달리는 사람이 참 많았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달리며 그들이 선택한 신발과 달리는 자세를 구경하는 것도 좋았다. 나와 다른 점을 발견하는 것도 꽤나 재밌었다. 눈으로 열심히 러너들을 좇으니 어느덧 오페라 하우스에 도착하였고, 오페라 하우스를 중심으로 그 주위를 한 바퀴 뛰어보았다.
교과서에서 보던 그 오페라하우스를 끼고 뛴다는 것이 잘 실감 나지 않았다. 이른 아침이라 관광객도 없었고, 저 멀리 하버브리지까지 여유 있게 볼 수 있었다. 다시 러닝이라는 취미가 참 좋아졌다. 단순히 관광이 아닌 두 다리로 달리며 둘러본 이 주위가 좋았다. 오페라 하우스 옆으로 뜨거운 해가 떠오르고 있었고, 내가 구르는 발걸음 소리가 음악 리듬처럼 들렸다.
러닝을 마치고 숙소 근처에 커피가 아주 맛있는 집을 들러 따뜻한 라떼를 시켰다. 땀이 식어 차가운 몸을 따뜻한 라떼가 녹여주었다. 집 근처에 이런 맛있는 라떼가 있다면 매일 뛸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곧 잠에서 일어날 친구를 위해 커피를 사 가는 길이 마치 선물을 한가득 든 듯했다.
이 즐거움을 맛보니 이후에도 계속 아침마다 뛸 수밖에 없었다. 센티니얼 공원까지 뛰어갔다 오는 길에 마신 아이스커피와 하버브리지 아래에서 바라본 루나파크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달리는 내게 enjoy! 라며 인사해 주는 현지인들의 따스함 덕분에 이 도시, 시드니가 더욱 좋아졌다. 차가운 공기가 마냥 달게만 느껴진다.
8월 18일 군산에서
8월의 크리스마스, 초원사진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알고 있을 장소이다. 작은 도시지만 여행객이 끊이지 않는 군산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1박 2일의 여행인 만큼, 맛있는 음식이 빠질 수 없었다. 아주 매운 짜장면부터 곱창까지 맛있는 음식으로 즐거움을 차곡차곡 채웠다.
그리고 다음날의 러닝을 준비하였다. 군산은 새만금마라톤으로도 유명한 러너들의 도시였다. 비록 숙소에서 새만금방조제까지는 거리가 있어 못 가지만, 군산에서 뛰기 좋다는 은파호수공원으로 계획을 세웠다. 평소 등산을 같이하던 친구와 내일은 아침 일찍 조깅을 하러 가기로 했다.
무더운 더위를 맛보며 돌아다닌 탓인지 잠이 일찍 쏟아졌다. 그 덕에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뛸 준비를 할 수 있었다. 햇빛을 막아줄 자외선차단제를 꼼꼼히 바르며 친구와 함께 숙소를 나섰다. 공원에 도착하니 해가 조금씩 떠오르고 있었고, 무리 지어 달리는 사람들도 보였다.
친구와 나도 간단히 몸을 풀고 달리기 시작하였다. 여름호수는 금방 습해지기 쉬워, 빠르게 뛰지 않아도 땀이 배어 나왔다. 길이 잘 닦여있는 공원이라 뛰기 편했지만, 가끔 나무 데크에서 나는 소리와 흙길의 감촉이 묘한 정겨움을 더해주었다. 호수 위로 반사되는 아침 햇살도 아름다웠다. 친구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달리니 마음이 평온해졌다.
도시의 달리는 무리들과 달리 이곳에서의 사람들은 단 한 명의 러너를 위해 수신호로 길을 비켜주었고, 힘을 내라는 응원도 보태주었다. 작은 도시에서 느낄 수 있는 정겨움이 발걸음마다 함께했다. 오래된 영화처럼 이 도시는 아직도 낭만이 가득한 듯하였다. 그래서 내게는 오늘 달린 이 거리가 8월의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