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보이는 한옥마을 이야기

부시와 오지창을 아시나요

by 작가 앨리스

지난 토요일, 서울 도심 속 조선의 향기를 간직한 남산골 한옥마을을 탐방한 경험은 특별했습니다.

이번엔 아이들과 사진만 찍고 돌아왔던 지난 방문과는 달랐습니다.

서울시 관광 해설사 이순*님과 함께 직접 설명을 들으며 걷는 역사 산책이었죠.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실감 났습니다.

필동, 청학이 노닐던 곳

남산골 한옥마을이 자리한 필동은 조선시대에도 계곡과 맑은 물줄기가 흐르던 경승지였다고 해요.

여름엔 양반들이 피서를 즐기며 노닐던 곳이었고, 특히 청학(靑鶴)이 자주 보였다고 해서 청학동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 풍광이 너무도 아름다워 ‘신선이 사는 곳’으로 여겨졌다고 하니, 오늘의 한옥마을이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그 시대의 기운을 그대로 품고 있는 셈입니다.

KakaoTalk_20250729_055051994_03.jpg 다행다복길 by 글친구

입구의 문에는 “다행다복"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습니다. 푸른 뱀의 해(靑巳年)를 맞아 복이 가득하길 바라는 인사말이었죠. 제 이름과 딱 어울려서 살짝 웃음이 났습니다.

저는 다은(多恩)이라고 합니다.

“다행다복"를 전달하는 다은이!


다섯 채의 고택, 그 속에 담긴 이야기

해설사님을 따라 남산골의 다섯 채 한옥을 돌아보며, 건물 하나하나가 얼마나 깊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

새삼 놀랐습니다. 그저 옛집이 아닌, 조선의 삶과 철학이 녹아 있는 곳이었어요.


해풍 부원군 윤택영 댁 재실

‘元’ 자 형태의 구조로, 제사 공간이 가장 중심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윤택영은 왕실과 외척 관계로 이 집을 지었지만, 결국 재정난으로 파산했다는 후일담이 전해졌죠. 형 윤덕영이 첫째임에도, 둘째인 윤택영의 집에 재실을 지은 이유도 왕이 이 집을 찾을 때 조상에게 예를 갖추기 위해서였다고 하니, 권력과 의례가 얼마나 밀접했는지 엿보입니다.


관훈동 민씨 가옥

안채, 사랑채, 별당 채가 분리된 전통 상류층의 공간 구조를 보여주는 집으로, 여성과 남성의 공간 구분, 손님 응대 방식 등이 배어 있었습니다.


오위장 김춘영 가옥

무관의 집답게 군더더기 없이 실용적이고 단정했습니다. ㄷ자형 안채와 ㅡ자형 사랑채가 연결된 구조가 인상 깊었죠.


도편수 이승업 가옥

경복궁 중건에 참여한 도편수가 지은 집. 중건 공사 후 남은 자재를 활용했다고 하는데요, 다른 한옥보다 화려하고 부엌이나 음식 저장 공간인 곳간에까지 정성이 깃들어 있었던 점이 독특했습니다. 기술자이자 장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느껴졌습니다.

해설사 이순*님의 열정적인 모습


옥인동 가옥

비교적 소박한 도시형 한옥으로, 일상적인 서민 삶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공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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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와 오지창 by 글친구

부시와 오지창 — 디테일 속에 깃든 조상의 지혜

그날 가장 흥미로웠던 건 정자 천장을 올려다보다 발견한 그물망이었습니다. 해설사님은 이것이 바로 부시라고 알려주셨죠.

부시는 새가 처마에 둥지를 트거나, 뱀이 지붕을 타고 올라오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처음엔 명주실처럼 고운 비단실을 여러 겹 꼬아 만들었는데, 곰팡이에 약해지자 나중엔 구리로 바꾸어 튼튼하게 만들었다고 해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자연과 공존하면서도 집을 지키는 지혜가 담긴 것이었죠.

그리고 처마 끝을 보라고 하셨습니다. 뾰족뾰족 박혀 있는 작은 창살들이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오지창입니다. 부시를 설치할 수 없는 구조나 공간 — 예를 들어 서까래 아래의 틈이나 회랑, 지붕이 낮은 건물 등 —에는 오지창을 박아 해충과 짐승의 접근을 막았다고 해요.


이런 디테일 하나하나에서 선조들의 실용성과 섬세함에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한옥,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철학이다

오늘 해설사님과 함께한 한옥마을 투어는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조선의 삶과 정신을 한 겹 한 겹 벗겨보는 역사 탐험이었습니다. 그냥 보면 지나치기 쉬운 부시 하나, 오지창 하나에도 이야기가 담겨 있었고, 해설을 들으니 건물들이 살아 숨 쉬는 듯 느껴졌습니다.

해가 질 무렵, 남산골에 퍼진 붉은 석양이 얼마나 운치 있었는지요. 신선도 놀라고, 청학도 춤췄을 그 풍경 속에서, 조상들이 남긴 지혜를 하나하나 알아가는 시간은 기억에 남을 최고의 역사 탐방이었습니다.


다음엔 친구들과 함께 와서, 오늘 들은 이야기를 제가 직접 들려주는 해설사처럼 설명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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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보인다. 그리고, 알게 된 만큼 사랑하게 된다.

오늘은 그런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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