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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이 Jan 04. 2023

거침없이, 축구 - 열등생의 마음

날씨가 추우니 함께 운동하던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 오늘도 역시 나를 포함해 3명만 출석한 조촐한 훈련이다. 나라도 날씨에 굴복하지 말고 꾸준히 나와서 훈련해야지 마음 속으로 다짐하며 오늘도 파이팅을 외쳤다.


오늘은 지난번 가르쳐주신 헛다리 기술의 실전과 응용을 배웠다. 코치님을 수비수로 두고 헛다리를 한 번 한 후에 슈팅까지 해보는 연습이었다. 이 기술을 반복해서 연습하면 실제로 경기에서도 쓸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에 어서 훈련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역시나 오늘도 휙휙 발을 돌려 코치님을 속이며 강한 슈팅을 날릴 수 있을 것이라는 나의 상상은 여지 없이 무너졌다.


  헛발이 너무 느려, 제이야.

  대각선으로 공을 쳐야 니가 슈팅을 하지.

  좀더 길게 차야 수비수가 못 차지.

  슈팅을 반대 발로 해야지.

  몸도 공쪽으로 가야지.

  

내 차례가 지나갈 때마다 코치님의 원 포인트 레슨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아니, 어떻게 제대로 동작 한 번 하지를 못하는지 답답할 따름이었다. 내가 이러고 있을 때 다른 그녀들은 어땠냐면..


지난번 레슨 때 결석해서 헛다리를 오늘 처음 해본 수희씨는 그야말로 정확히 동작을 소화해서 우리의 롤모델이 되어 주었고, 역시나 지난번 결석한 유림씨는 코치님이 방향을 읽을 수 없게 페이크 동작을 구사하여 칭찬을 연이어 받고 있었다. 그녀의 긴 다리는 살짝만 휙휙 헛다리를 해도 큰 동작으로 보였다. 나만 소화하면 되는 이 상황...


사실 이 상황은 매우 익숙하다. 미라 FC의 화요일 저녁반 모두가 같은 날에 같이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실력 차이는 점점 벌어졌다. 두 팀으로 나누어 선수를 서로 뽑아 간다면 가장 마지막까지 호명되지 않을 선수는 바로 나였다...


운동으로 이렇게 열등생이 될 줄은 몰랐다. 달리기도 꽤 빠른 편이었고(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 마지막 기록 18초) 공에 대한 반응도 빠르다고 생각했었다. 축구 기술을 배우지 않았을 뿐 배우기만 하면 금방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의 키가 158에 여자로서도 단신이고 팔다리가 유독 짧은 유아 체형이라는 사실은 크게 문제라고 인식하지 않았다. 나의 나이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나와 비슷하겠지 생각했었던 것이다.


내가 가볍게 생각했던 이 문제들 슬프게도 축구에 결정적이었다. 나처럼 키가 작은 그녀들은 20대였고 10대의 체력을 갖고 있었다. 나와 나이가 비슷해 체력이 비슷하다고 느낀 그녀들은 키가 월등히 커서 피지컬이 남달랐다. 이 사이에서 내가 살아 남을 수 있으려면 나만의 개인기가 있어야 했다. 40년 인생에 축구공을 처음 차본 내게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같이 배우는데도 뒤쳐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때마다 몸에 힘이 스스륵 빠져 나갔다. 더 속상한 것은 점점 더 코치님의 관심에서 멀어진다는 것이다. 코치님은 내가 조금만 잘 하면 칭찬해 주었고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기 시작했다.


코치님은 수희씨와 유림씨 차례에는 더 많은 것을 원했고 요구했고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으면 다시!다시! 를 외쳤다. 하지만 난 내 차례에 다시!를 들은 적이 없다. 그저, "다음에는 이렇게~ 조금더~" 라는 코치님의 원포인트 레슨만이 이어질 뿐. 코치님은 사실 내가 하는 수많은 잘못 중 하나만을 알려줄 뿐이었다. 왜냐하면 난 한번에 하나씩 고쳐나가야 하는 열등생이기 때문이다.


내가 달라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녀들이 연습하지 않을 때 연습하는 수밖에 없다. 추워서 그녀들이 훈련을 하지 않을 때 나는 꾸준히 하는 수밖에 없다.


수희씨와 유림씨가 오늘 훈련을 생각보다 잘 소화하고 응용까지 해내자 코치님은 신이 나셨다. 1, 2월 열심히 연습하고 전국대회가 나가자고 들떠서 말씀하셨다. 모두가 으쌰으쌰 할 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때도 나는 아마 백업 자원이겠지? 그때 나의 존재를 잊고 있었던 것 같았던 코치님이 말씀하셨다.


  "제이는 아마 대회 나가면 멘탈 완전 나갈 거야."

  코치님의 말씀에 내가 대뜸 대답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저 생각보다 멘탈 강해요."

 

멘탈은 열등생이 더 강한 법. 크고 작은 좌절 속에 단련된 나의 멘탈을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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