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김지우, 나로 말하자면 소위 나이 40대 후반의 조금 특별한 대한민국 아줌마이다. 나에게는 나보다 한 살 더 많은 남편이 있다.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이야기를 한 이유는 내가 아이돌 걸그룹 출신이기 때문이다. 나의 남편은 얼굴이 평범하게 생겼지만 스마트폰 반도체를 제조하는 회사의 전문경영인이다. 서울대 출신으로 평사원부터 전문 경영인 자리로 올랐다. 똑같은 위치의 사람들로 봤을 때에 일찍 전문 경영인이 된 셈이다. 남편이 돈을 잘 벌어서 강남에 아파트에 살고 있고 부유한 삶을 살고 있다.
부유하다고 해서 항상 행복한 것은 아니다. 자산이 많다고 해서 감정이 항상 행복한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돈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다. 걸그룹 시절에 국내외에 콘서트 투어를 다니면서 남편의 자금력에 비하면 부족하긴 하지만 일반인들의 기준에서 봤을 때에 나름 대박 아닌 중박 정도로 연예계에서 벌어놓은 돈이 있고 이 돈을 결혼 후에 남편에게 맡겨서 전성기 시절에 벌었던 수입보다 150퍼센트 정도 더 많은 돈을 얻었다.
돈에 대한 이야기를 왜 했냐면 남편이 있어서 돈이 많아지는 것은 맞지만 나는 내가 가진 원래 돈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자신이 있었다. 나는 돈을 보고 도파민이 터지는 게 아니라 잘생긴 남자의 얼굴을 보면 도파민이 터졌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나를 살게 해 준 것은 연예계 시절에서 친구나 연인으로 만나왔던 꽃미남들의 ‘꽃. 미. 모(?!)’ 때문이었다. 이 점을 언제 가장 많이 느끼냐면 남편과 싸울 때이다. 남편이랑 싸우고 나면 남편이 아무리 사과를 해도 화가 도무지 누그러지지 않았는 데에 TV에 나온 꽃미남 배우의 얼굴을 보면 그 많던 화가 다 사라지고 없어질 정도였다.
사람들이 나를 아무리 욕해도 나는 철저한 외모지상주의자였다. 한편으로는 이런 나 같이 얼굴만 보는 여자와 결혼해 준 남편이 불쌍하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나는 분명히 남편을 좋아하고 아끼고 그가 남편으로서 훌륭하다는 점을 매일매일 깨닫고 있다. 그런데 마음이 공허하다.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잊고 사는 느낌이다. 공부 머리가 아니라 명상을 통해서 매일매일을 생각했었다.
나는 힘겨운 연습생 시절과 화려한 연예계 활동을 보내고 나를 위해서 고생하는 남편을 위해서 가정에 내 중년을 다 바치고 있다. 남들이 들으면 분명히 복에 겨워서 하는 소리라고 할 테지만 십 년 후면 인생의 말년을 맞이할 한 사람이자 여자로서 또 이번 생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면 죽기 직전에 무언가 이 우주가 아니 이 세상과 내가 왜 존재하는지와 왜 내 인생이 공허한지를 깨닫고 죽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어서 최근에는 답답한 생각이 갱년기처럼 나를 괴롭혔다.
나는 지금 집 앞에 있는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 앞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커피와 디저트를 포장 주문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내 뒤로 자동차가 카페의 유리문을 부수면서 강력하게 충돌했다. 그 순간에 누군가가 “지우야! 피해!”라며 나를 밀어내고 차에 대신 부딪혀서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