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힘들어도 삶을 버틴 이유.
내 모든 기억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떤 것은 선명하고 어떠한 것은 불투명해졌다. 나는 가슴이 아픈 기억을 지우려고 할 때에 하는 일이 있다. 사진이나 일기 또는 주소록부터 삭제하는 것이다. 년도와 사람에 관련된 정보를 지우고 시간이 지나다 보면 마치 내가 가지고 있었던 기억이 진짜 내 기억이 맞았었는지 아니면 단순한 내 상상인지 모를 정도로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지금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내가 가지고 있는 공황 장애와 사회 불안 증세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은 9살 때였다. 가족들끼리 모여있는데 외할아버지께서 출근을 하시는 중이었다. 나는 왕따를 당하는 게 너무 버거우니 전학을 보내달라고 했고 외할아버지께서는 그곳에서 견디지 못하면 다른 곳에서도 똑같은 일이 생겼을 때에 견디지 못해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거니까 오늘도 등교를 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자마자 나에게 불안이 엄습했다. 숨이 안 쉬어졌고 말 그대로 기절했다. 기절하면 어떻게 되냐면 방송이 재생되고 있는 데에 리모컨으로 강제로 끈 것처럼 화면이 뚝하고 어두워진다. 그리고 옆으로 넘어지는데 신체가 먼저 떨어지는 순서대로 땅에 부딪히는 게 고통으로 전달이 된다. 하지만 그 어떠한 의지가 있어도 일어나지 못한다. 외할아버지가 내 볼을 손바닥으로 치면서 내 이름을 여러 차례 부르셨다.
그러고 나서 다시 몸에 전원이 들어왔고 서서히 앞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게 공황 장애에 대한 내 인생 첫 기억이다. 가장 오래된 기억이다. 그때 그 자리에 있던 모든 가족들은 내가 기절한 걸 보고 놀랐지만... 나를 포함해서 모두가 그게 공황 장애 때문인지는 몰랐다. 내가 삶을 되돌아보니까 그게 장애 때문이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나는 이 기억을 여러 번 회상했지만 최근에 있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바로 나에게는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만, 나쁜 기억들, 공황 장애만이 있는 게 아니라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과 좋은 기억들 그리고 물려받은 의지가 있었다는 것이다. 가족들과 친척들이 없었다면 버티지 못하고 학교에서 도망쳤을 것이고 전학만 가다가 다른 누군가에게 또 괴롭힘을 당하면 도망쳐서 인생의 초반부가 끝났을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 동생, 친할아버지, 친할머니, 고모, 고모부, 친척 누나, 친척 동생,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큰 외삼촌, 큰 외숙모, 작은 외삼촌, 작은 외숙모, 사촌 동생들, 제수씨들까지 초등학교 왕따 시절과 중학교 빵셔틀 시절 때를 견디게 해 준 소중한 존재들이고 평탄한 고등학교 생활과 대학교 생활 그리고 회사 생활에서 만난 친구들과 선후배들 그리고 선생님들과 교수님들 그리고 지인들과 회사 동료들 마지막으로 군대 동료들, 내가 그들을 만나기도 전에 가지고 있었던 울분과 억울함의 여독을 풀어주고 나에게 좋은 추억들을 많이 만들어줬기 때문에 그 추억들이 하나하나의 버팀목이 되어서 지금까지 이 긴 삶을 지탱하며 살 수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참, 몇 번을 말해도 부족하지만 미안하고 감사하다. 나는 진정으로 그들의 자랑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