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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me Dec 01. 2022

꽃 지지 않는 봄

 - 꽃잎 지는 오후였다. 아직도 창문 너머 봄 꿈이 푸르른데

   어머니는 이제 탄생의 환희를 염려하는지   호흡이 가팔라지면서 지독한 산고를 견디고 계셨다  -중략   이제 어머니는 푸른 하늘을 보면서 당신의 당신을 낳고 계셨다 -      


 어머니의 생을 배웅하는 최기종 시인의 시 <임종>이다. 말랑한 땅으로 서 말 여덟 뇌의 피가 눅진하게 스며들고, 동백꽃 빛깔의 사랑이 번져나간다. 내 혈관을 타고 도는 애절한 사랑이 봄을 키운다. 지독한 비애를 다독여 나간 어미의 시간이 나를 살려낸 것이다.   불경의 <부모은중경>에는 세상을 열어준 모든 어머니의 잉태와 출산에 관한 서사가 있다. 어머니는 아이를 낳을 때 서 말 여덟 되의 피를 쏟고, 아이를 키울 때는 여덟 섬 너 말의 젖을 먹인다는 내용이다. 이 때문에 세상의 어머니는 죽어서 뼈가 가벼워지고 뼛속이 검어진다고 한다. 자기 피와 살로 생명을 빚어 자기의 반쪽을 내어놓는 지극한 자비. 어머니에게 자식은 겨울을 건너온 꽃 지지 않는 봄의 탄생이다. 자식에게도 어머니는 평생 지지 않는 꽃의 영토로 존재한다. 소멸할 수 없는 도저한 자식의 땅이며 붉은 눈물로 키워지는 존재의 영토이다.  


 어미와 자식은 마치 르네 마그리트의‘데칼코마니’ 그림처럼 닮음 꼴이다. 캔버스에는 왼편의 남자 어깨너머로 바다와 푸른 하늘에 뜬 흰 구름이 보인다. 오른편에는 커튼을 앞에 둔 남자의 몸 안에 바다와 푸른 하늘의 구름이 데칼코마니를 형성하고 있다. 중산모를 쓴 두 남자의 반신 실루엣은 같지만 사실 완벽한 데칼코마니는 아니다. 대칭된 두 인물의 의식과 무의식을 기묘하게 환치시켜 놓은 느낌이랄까. 남자의 등 뒤에 있는 나는 의식과 무의식의 감정이 리드하는 초현실적 인간관계를 감지한다. 피의 동질성 때문일까. 부모와 자식은 생의 끈을 뗄 수 없는 데칼코마니의 무의식을 지니는 것 같다. 닮은 둘의 존재가 내면까지 닮아 가는 동행은 한 존재가 생을 놓는 시간까지, 절절하게 둘의 서사를 지켜나간다.  


 내 어머니를 세상 밖으로 놓아드릴 때, 나는 내 무릎이 꿇린 까닭을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목젖을 뚫고 나오지 못한 언어가 내 몸을 경직시키고 천근만근으로 눌러 앉히던 날, 밖은 꽃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흙먼지로 사라질 어미를 돌려보내 드리는 날에 술렁이던 봄빛은 내 가슴을 붉게 저미었다. 엄마의 방이 선뜻하여지고 엄마의 눈가에 물기가 하양 돌며 맥박이 느려졌다. 방안의 눅진한 어둠이 안개 빛으로 하얘지면서 엄마의 몸은 싸늘해져 갔다.‘데칼코마니’에서 한 남자 앞의 풍경이 대칭된 남자의 몸 안에 그대로 인화된 것처럼, 엄마의 지난 삶과 채우지 못한 삶이 내게로 옮겨지는 현상을 감각적으로 체험하였다.  


 피를 나눈 존재에 있어 데칼코마니는 한 사람이 사라지는 순간에 다른 한쪽으로 의식이 전이되는가. 엄마의 의식이 사라지면서 엄마에게 잠재된 무의식이 나에게 순간 이동됨을 거부할 수 없었다. 나의 삶이 엄마와 닮아질까 봐 애써 외면했던 시간들이 노을을 버린 하늘처럼 컴컴해진다. 엄마의 감각이 닫히듯 무뎌진 나의 입술이 닫히고 나는 미숙한 슬픔에 오래 머물렀다. 엄마는 이름을 잃고 평생을 살아가고 있던 외할머니의 온당치 않은 삶에 대해 입 열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 어머니를 두고 떠난 것이다.  


 세월의 등껍질만 부풀리고 사신 외할머니는‘자신의 봄’을 잃고도 울지 못하였다. 박복한 어미를 둔 탓이라는 듯 자신의 죄를 책망하셨다. 그건 결코 할머니의 죄가 아닌 것을. 유별히 수심이 많아 보였던 큰딸에 대한 어미의 애도는‘니 어매 자랄 때 말대꾸 한번 없이 얼마나 곱게 자랐는지 몰라야’라는 말 한마디였다. 56세에 치매를 얻어 앓다가 이른 죽음을 맞은 딸의 운명이 자신의 운명과 연관이 있다는 확신이 눈에 가득했다. 젖은 채 빛나던 외할머니의 눈빛에 서린 한은 피할 수 없는 모녀 운명의 데칼코마니였을까? 그 한의 인자가 내게까지 밀려와 닿는다면…. 슬픔에 머무르던 나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상실의 감정은 기억의 볼륨을 높인다. 달걀 속껍질처럼 얇아진 등껍질의 어미 달팽이, 자식의 땅이 되었던 어미가 걸어온 길을 눈여긴다. 느리게 속살을 흘리며 걸어온 오래된 길이다. 거기에서 엄마와 아기 달팽이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살 맞대고 걸어온 길에 흘려진 점액질이 말라 간다. 엄마처럼 참고만 살지 않겠노라 소리친 나의 다짐도 부서진 지 오래다. 살아내면서 길에 흘린 것들의 설움이 어미 달팽이의 기억을 찾아 말랑한 등껍질 안으로 숨어든다.


   내가 산다는 것은 누군가의 피로 살아가는 것 같다. 산고를 견디지 못하고 아이와 함께 숨져간 젊은 어미 같았던 오래 전의 봄. 꽃잎 지는 오후에 떠나간 어미처럼 잃어버린 봄을 꽃피우려다 쓰러져간 사람들. 빙하 같던 겨울을 깨뜨리려던 청춘의 피 흘림과 절망이 떠오른다. 상실감으로 절망하던 기억의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온다. 나에게 조국은 잃어버린 어미와 같은 형상적 이미지를 품는다. 40년 전, 누군가의 귀한 영토였을 청춘들이 어미 앞에서 꽃잎처럼 숨져갔다. 그들의 정의와 순수는 몰염치한 사람들의 욕망에 무릎이 꺾였다. 힘 있는 자들의 삼엄한 연대로 젊음은 연기로 산화되었다. 청춘들의 선한 욕망은 섣부른 외침이 되고 만 시절 아픔이었다. 빼앗긴 봄은 쉽게 돌아오지 못하였고 그들이 떠난 언덕은 쉬 푸르러지지 않았다. 더 혹독한 겨울을 맞이해야 하였다.  


 어머니는 개인의 모국이고 그 시절 조국은 청춘들의 숭고한 모국이었다. 세상의 봄과 조우하며 봄의 영토를 세우고자 피 흘리고 떠나간 영혼들. 커진 기억의 소리가 자취를 감추려는지 멀어진다. 그대들이 꿈꾼 세상을 위해 정의와 공전한 불굴의 시간이 녹슬지 않길 꿈꾼다. 기다림 같은 것으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젊은 그대들. 봄 꿈 푸르던 그들의 피가 우리를 살게 하였다는 것을 뼛속 깊이 느끼며 두 손을 맞잡아본다. 절절한 꿈이 엎어진 곳에서 가슴 뜨겁던 사람들이 숨져갈 때, 나는 관절이 마비된 듯 눈이 먼 듯 아무 짓도 못 하였다. 그런 저녁 어두운 방에서 목구멍으로 밥을 넘기던 때의 비겁함은 지금도 나를 변방으로 내몬다. 어머니를 보내던 날처럼 잿빛 회오로 떠돌며 비굴하게 다시 내 안에 해자를 들인다.  


 슬픔의 정서는 그리움의 정서와 닿아 있다. 꺾인 무릎을 다시 세울 힘을 빼앗기도 하지만, 뜨거운 눈물로 꽃 지지 않는 봄을 피워내는 수액이 되기도 한다. 마냥 서글프지만 않고 희망의 마중물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잃어버린 청춘의 목숨 값으로 세상의 행태가 더디게라도 변모하고 있지 않은가. 태초부터 산울림 속에 살던 새가 숨차게 날다가 더 이상 날아오르지 못할 때, 죽은 새의 영혼은 썩어져서 소리 없이 다른 생명을 키운다. 살아지는 대로 살다가 미련 없이 삶의 더께를 벗어내는 사람의 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어머니가 가고 어머니의 어머니가 가고 내가 가고 내 자식이 가야 하는 길. 가차 없던 시절에 매몰된 사랑이 일으켜져 남은 자들의 삶을 출렁이게 한다. 마치 검푸른 바다가 어두운 밤, 섬을 지켜내듯이 숨져간 청춘들의 넋이 부조리한 세상의 어둠을 지워내고 있는 까닭이리라.   


 바다가 하늘과 닿듯 그대로 받아 안은 반영을 하늘바다라고 착각하는 지평선. 나도 나의 모국과 청춘들의 모국이 닿아있다는 내 착각을 믿고 싶다. 모국이란 말은 언제 어디서 들어도 가슴이 뜨겁다. 옳은 것을 위해 무릅썼던 고뇌와 어머니의 애절한 비애도 맞닿아 있다. 내 존재가 어미의 간절한 욕망이었고, 나 또한 꽃 지지 않는 봄을 잉태하고 출산하고 다시 뚜벅뚜벅 걸어가야 할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삶에는 알 수 없는 일과 알 수 있는 일이 있다. 알 수 있는 일은 지나가면 알게 되는 것이고, 알 수 없는 일은 시간을 들여 알아 가면 되는 것이다”  어느 영화의 대사이다.   꽃 지지 않는 봄, 깨어 있는 존재의 귀함과 순리가 일깨워지는 말이다. 선한 욕망은 꽃 지지 않는 봄의 정령으로 시대의 지독한 산고를 벗어내었다. 느리게라도 우리를 꽃 지지 않는 봄의 영토에 데려다 주리라 믿는다. 서러워할 시간도 없이 몸뚱이 하나로 힘껏 살아가는 존재들. 내 안의 해자에 그들의 그림자가 깃든다. 애처로운 이들을 위하여 나도 이제 나의 나를 낳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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