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높아 보여서일까, 겨울 밤하늘은 시리도록 푸르게 느껴진다. 흘러가는 구름이 여러 모양으로 변하면서 기억의 끄나풀을 풀어 준다. 묵향이 날듯 한 어둠 속 하늘은 겨울 추억의 배경이 되고, 언뜻 물동이이고 가는 여인의 모습이 엄마처럼 보이다가 스르르 달 물결로 사라진다.
내가 어릴 적 엄마는 이런 밤 백열등 아래서 손바느질을 자주 했다. 구멍 난 양말이나 닳아 해진 버선 뒤꿈치에 알전구를 몽글게 대었다. 미세한 필라멘트의 흔들림이 드러나던 알전구는 사실 촉이 나간 것이었다. 하지만 이리저리 양말 뒤축을 매만지는 엄마의 손길 안에서는 여간 매끄러워 조심스럽게 다뤄졌다. 덧댄 부분이 두툼해지지 않도록 천을 몽글게 펴주고, 발모 양대로 깁을 수 있게 도와주었던 알전구는 바느질 도구로 딱 이었다. 언뜻 황소바람이 문풍지를 두드릴 때면 엄마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뒤따랐다.
“밖에 누구 왔소?...... 아무도 아닌 감네.”
선잠을 자는 내게 들려오던 소리. 엄마의 혼잣말은 몇 번인가 들려오다가 구멍 난 양말 속으로 숨어버리곤 하였다. 다음날 아침이면 주섬주섬 짝 맞춰진 양말들은 도톰해진 발뒤꿈치를 서로 맞대고 우리를 기다렸다.
손끝이 야물고 고왔던 엄마는 말씨와 음식 솜씨까지 좋았다. 그중에서도 바느질 솜씨는 으뜸이었다. 어느 해 설날 새벽에 일어나 내가 마주한 광경은 실로 잊히지 않는다. 아버지가 실제로 벽에 붙어 서있는 것처럼 모직 두루마기 두 벌이 나란히 걸려 있는 것이 아닌가. 설 이틀 전까지만 해도 시침된 채 구석에 박혀있어서 옷의 모양이 전혀 나지 않았는데 제모 양이 번쩍 갖춰지다니 마술처럼 이상한 일이었다.
엄마는 무슨 일이든지 말을 앞세우지 않고 일을 차근히 해결하는 편이었다. 그에 반해 성미 급한 아버지는 느린 엄마의 행동을 늘 마땅치 않아했다. 아버지는 막내이기도 했지만 할머니를 일찍 여읜 탓인지 잔정을 많이 그리워했다. 어린애처럼 뭐든지 자랑하기를 좋아했다. 이번에도 엄마에게 기대했던 설빔의 두루마기를 제 때 못 입을까 봐 내심 걱정했던 모양이었다. 설이 코앞인데 마당에서 이쁜이 비누로 솥단지와 냄비를 닦고 있는 엄마가 마뜩잖은지 그 옆을 공연히 왔다 갔다 하시더니 내게 간접적으로 지청구를 늘어놓았다.
“니그 엄마는 어째 저리 느린가 몰라야 평생 그릇만 닦다 판나겠다 판나. 모래가 설인데 난 폴새(벌써) 포기했다 포기했어 ”.
뭘 포기했다고는 하지 않으셨으나 아버지의 소리는 설빔 입기를 간절히 원한다는 재촉의 표현이었다. 엄마는 아무런 대꾸 없이 그날 밤부터 이틀 밤을 꼬박 새워 결국 두루마기를 완성한 것이었다. 소리 없이 두 벌을 짓느라고 늦었던 것을 식구들은 아무도 몰랐었다. 한 벌은 큰아버지 거라고 말하는 엄마의 두 눈은 새벽 빛살이 벌겋듯 충혈되어 있었다.
옷을 짓기 위해서 늘어놓았던 바느질 도구들은 엄마의 일부였다. 혼수품 일호인 부라더 미싱은 이사할 때마다 볕이 제일 잘 들어오는 곳에 놓였다. 자질구레한 바느질 꾸러미와 돌돌 말린 필목과 작은 헝겊 뭉치들은 장롱 구석에 박혀 있다가, 엄마의 긴 겨울밤 친구가 되었다. 바느질 도구들이 방바닥에 널브러져 있다고 아버지가 성을 낸 일도 있었고, 잡동사니나 되듯이 거치적거려 우리들 발길에 차인 적도 많았다. 하지만 그것들은 엄마의 손끝에서 천이 마름질될 때마다,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역할을 같이 한 것이란 것을 뒤늦게 알았다.
엄마는 동짓달 중순이 가까워지면서부터 설빔 준비를 하셨다. 밀가루 포대 종이에다 우리들 몸 치수대로 본을 그린 후, 천을 마름질해 두면 기본 준비는 끝이 난다. 깊은 밤 불빛에 눈이 시려 깨어보면 엄마는 윗목에서 한 결로 그리고 자르고 시치면서 소리 안 나는 일을 자분거리고 있었다. 엄마의 엉덩이 밑에 손을 디밀고 엄마가 옆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나는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엄마의 온기 때문인지 그곳은 늘 따뜻했다.
앞마당에 있는 대추나무와 목련 가지 사이로 흰 눈이 소곤거리듯 포슬포슬 내리는 날, 엄마의 바느질 모습은 바깥 풍경과 잘 어울렸다. 그때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며 옷을 짓고 구멍 난 양말을 기웠을까? 넉넉한 살림도 아니면서 동기간의 군식구들은 다 불러들여 사셨으니 부부지간에 어찌 다툴 일이 없었을까 만은, 엄마는 그다지 티를 내지 않았다. 가끔 아버지의 언성이 높아지고 문 여닫는 소리가 밤을 울리기는 했지만, 그럴 때마다 엄마는 산처럼 우두커니 천정만 바라볼 뿐이었다.
한 해 두 해 껴입은 세월 옷의 무게 탓인지 점점 어깨가 무거워진다. 내가 걸친 옷이 얼마나 해져 있는지, 정말 내게 맞는 옷을 입고 살아온 것인지. 내 안의 나에게 되묻고 싶어지는 계절이다. 삶의 구멍이 메울 수 없는 크기로 커져만 갈 때, 말없이 글썽였을 엄마의 눈물은 다 어디로 갔을까. 헌 양말의 구멍을 한 올씩 감쳐낼 때마다 세월 깁듯 축축한 삶의 구멍을 함께 기웠을 겨울밤이다. 지문이 닳아지도록 식솔들의 옷가지를 매만지던 엄마의 손길은 지금 없지만, 겨울밤 내 곁에서 세월과 어긋해져 가는 나를 품어 안는다. 그 온기가 날마다 또 다른 아침을 데려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