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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me Nov 27. 2022

햇볕 담기

  

 “애야, 넌 어둡지도 않니? 커튼 좀 치워라, 집에 볕이 들어 훤해야 복이 온다는데   창문을 꽉 막아놔서야 원......”

  집안이 어두워서 답답하다는 시어머니의 말씀은 죄송스럽지만 나는  노랫소리로 듣는다. 시끌벅적한 시장 통에서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우리 집은 시장 통에서 40여년을 버텨온 건물이라 세월만큼 낡았다. 더군다나 북향이라 해드는 시간도 짧아서 건물 삼면에 넓은 창을 내었다. 왁자한 바깥소리와 겨울 외풍을 차단할 목적으로 두툼한 방음커튼까지 달아놓고 산다. 문제는 여름철이다. 상가들이 밀집한 곳이라 가게마다 내뿜는 에어컨 열기로 골목이 후끈 달아오른다. 그 열기 때문에 지열도 높아져서 문을 열지 않고는 여름을 지낼 수가 없다. 

 2층에 사는 우리는 앞집 건물과 깍꿍 할 정도로 가까워서 건너편 2,3층 사무실 사람들과 뻘쭉한 눈 맞춤이 자주 일어난다. 욕실에서 나올 때 각별히 옷매무새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민망한 일이 벌어지니 어쩌겠는가. 어머니의 복 타령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망측한 일을 피하기 위해서 여름에는 창가에 모시 발이라도 내 걸어야한다.

  어느새 빛 꼬리가 방을 빠져 나갈 태세다. 3층에 기거하시는 시어머니의 발자국 소리가 계단을 타고 내려온다. 나는 얼른 커튼을 한 쪽으로 몰아두고, 방에서 빠져나간 햇빛을 쫓아 옥상으로 빨래 널러 갈 채비를 한다. 정갈한 식구들 덕에 아기몸통 만한 빨래 통을 두 손으로 보듬고 비좁은 계단을 오를라치면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럴  때마다 제발 이사 좀 갔으면 하는 바람이 굴뚝같지만, 남편은 요지부동이다.

  5층 옥상에 오르는 일이 번거로우나 일단 오르고 나면 환한 하늘이 손에 잡힐 듯하여 속은 후련해진다. 속살까지 파고드는 바람 맛이 기분을 좋게 한다. 바람에 몸을 맡기고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노라면 아예 나 자신을 널고 싶은 충동이 인다. 복닥거리며 살아가는 일상 속에 박혀든 곤궁한 생각들을 햇볕과 바람에 싹 날려 버리고 싶어서이다. 바람에 몸이 빨려든 날은 마음마저 빨아진 느낌이다.

  빨랫줄을 널찍이 자치한 이불 홑청이 바다처럼 출렁이며 춤춘다. 옷이 날개라면 옥상은 너울너울 식구들의 새로운 날개 짓을 응원하는 공간이 된다. 키가 크길 소원하는 아들의 청바지를 쭉쭉 잡아당겨 아빠의 옷 옆에 나란히 널어놓는다. 다리가 한층 길어진 아들의 청바지와 남편의 두툼한 스키복이 보초를 서듯 빨랫줄에 붙들려서 외줄을 탄다.

   늘어선 빨래가 마치 식구들의 허물 같다. 큰소리치던 남편의 옷이 허수아비처럼 꼼짝없이 빨랫줄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난다. 아가리가 큰 집게로 더 꼼짝 못하게 단단히 집어 놓는다. 호주머니마다 바람과 햇볕이 잘 들락거리도록 안을 뒤집어 빼놓고, 모자가 달린 남편의 스키복 머리통 주물럭거려 본다. 남편의 뒤통수인양 모자를 손바닥으로 탁탁 쳐보기도 한다. 남편의 머리통을 쥐락펴락하면서 맘대로 허물하는 손맛이 꽤 괜찮다. 바람이 나를 보듬고, 나는 식구들의 허물을 보듬으며 햇빛과 바람의 에너지를 충전시키는 중이다.

   언제나처럼 옆집 방앗간에서 곡물 볶는 냄새가 구수하게 풍겨온다. 때마침 제주 갈치가 눈을 끔뻑끔뻑하고 있다는 뜨내기 생선 장수의 외침이 들려온다. 그 입담에 이끌려 골목으로 나가본다. 외침과 달리 생선들이 오후 햇볕에 늘어져 자고 있다. 사모님 기다리다 지쳐 이제 막 잠들었다는 생선장수의 넉살이 듣기 싫지는 않다. 신선도를 가늠키 위해 손가락으로 녀석들을 꾹 눌러보았더니 그런대로 탱탱하다. 자는 놈 살살 누르라는 넉살좋은 생선장수의 구릿빛 얼굴도 목소리도 건강하다. 생선수레에 누워있던 통통한 은 갈치 두 마리가 비닐에 담겨 내게로 왔다. 

   서둘러 빨래를 걷어야 할 시간이 가까워져 옥상에 있는 허물들에게 불려간다. 후줄근하던 옷에 볕이 드나들며 바람구멍을 내었는지 옷의 결이 성글성글하다. 햇볕을 받아먹은 허물들이 짱짱하게 부피가 늘어나 있다. 잘 마른 것들을 끌어안고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오는데, 허수아비 같던 남편의 스키복 팔이 부풀려진 채 내 코끝을 탁 친다. 남편의 기가 되살아난 것이다. 

  빨래 통을 방안에 와르르 쏟아 부으니 옥상에서 담겨온 햇볕이 안방에 뿌려진다. 길어진 아들의 청바지 안에서도 햇살이 슬렁슬렁 기어 나온다. 수건에서는 햇볕 냄새가 정말로 많이 난다. 까슬까슬 해진 수건의 촉감이 방에서 말린 것과는 판이하게 뽀송하다. 남편과 딸아이는 햇볕 냄새를 유달리 좋아한다. 빨래를 개켜놓는데 딸애가 수건을 한 장 집어가며 한 말씀을 날린다. 

 “맞아, 이 냄새, 바로 이게  엄마 냄새지~.”

 ‘언제는 앞치마에서 엄마 냄새가 난다더니만...... .’

  가스렌지 위에서 갈치를 조리는 냄비가 보글거리며 뚜껑을 딸막거린다. 방에 가득했던 햇볕 냄새를 갈치가 먹어치우는 소리다. 금새 방안에 갈치조림 냄새가 방안에 진동한다. 햇볕 담기는 이렇게 나의 일상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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