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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me Nov 28. 2022

엄마의 방

  황사가 걷히고 하늘이 푸른 속을 드러낸 봄날이었다. 모처럼 햇볕이 길게 든 거실로 엄마를 모시고 나왔다. 앞산 꼭대기에 엄마의 젊은 날들이 펼쳐졌다. 감색 천에 내 이름 석 자가 새겨진 교복과 포플린 원피스가 푸르게 살아났다. 엄마가 만들어주던 원피스의 해바라기 꽃이 동심원을 그리며 꽃잎을 피우기 시작하였다. 그 해바라기 꽃을 거두어 빛을 잃어가는 엄마의 방에 걸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엄마는 쉰여섯에 누구도 예기치 못한 일을 겪었는데 지금 내가 그 나이를 훌쩍 넘겼다. 볕이 잘 들고 대추나무가 넘겨다보이는 창가에는 엄마의 재봉틀이 놓여 있었다. 엄마가 재봉틀에 앉는 날이면 나는 옆에서 재봉 시중을 들곤 하였다. 손가락에 하얗게 묻어나는 초크 가루 감촉이 분가루처럼 매끄러웠다. 엄마는 내 포플린 원피스 양쪽 호주머니에 해바라기 모양의 천을 대 아플리케를 하였다. 손수 지은 옷은 기성복과는 달리 박음질이 고르고 시접 처리가 매끈하였다. 엄마는 그 공을 재봉틀의 노루발에게 돌리곤 하였다. 


  엄마는 막내에게 시집와서 손위 시숙님 네 분을 시부모님처럼 모시며 살았다. 집안에는 늘 군식구가 끊이지 않았다. 엄마가 외가에라도 다니러 가시는 날이면 그 치다꺼리는 내 몫이 되었다. 난 엄마처럼 안 살 거라고 어깃장을 놓기도 하고 심통을 부리기도 하였지만 그때마다 네가 참으라는 윽박을 받았고, 오려 등짝을 몇 차례 얻어맞기도 하였다. 무조건 참으라는 엄마의 외곬 주문은 내 의식에 박음질되어 생활 속에서 이따금 가시로 돋아났다. 


  아버지가 갑자기 췌장암으로 돌아가시고 엄마는 사람들과의 대면을 꺼렸다. 불안증세가 심해져서 혈압이 오르고 신경에 병리적 증세가 나타나서 입원까지 하게 되었다. 5분 간격으로 자리를 옮기는 현상을 보이자, 자녀 외에는 누구의 대면도 허락되지 않았다. 과거와 현재의 기억이 뒤죽박죽 되더니 급기야 손에 쥔 칫솔의 치약을 꿀컥 삼켜버리는 행동마저 보였다. 퇴원 후 사람들과의 소통이 어려워지고 앉고 서는 행동조차 수월치 않아지면서 엄마의 방에는 기저귀 보따리가 쌓여갔다. 기저귀 속의 솜뭉치를 뜯어내어 솜 꽃을 피우는 일은 엄마의 새로운 놀이가 되어갔고, 엄마의 영혼은 혼돈 속으로 꺼져 들었다. 


  엄마를 수발하기 위하여 여동생은 운영하던 미술 학원을 접어야 했다. 동생이 출장 레슨을 가는 날에는 내가 엄마를 찾아가서 돌보기로 하였다. 엄마의 저지레 영역이 점차 넓어지면서 우리는 고약한 제지 방법을 생각해 내었다. 방문 손잡이에 바가지를 씌워 붙여두는가 하면, 내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면 창문을 밖에서 걸어두기도 하였다. 

  반 벌거숭이 차림으로 욕실을 오가며 엄마의 방을 치우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잠금장치를 해둔 방문이 맞바람에 냅다 닫히면서 덜컥 둘이 방에 갇히고 말았다. 멀쩡한 나도 안에서는 문을 열 방법이 없었다. 엄마의 저지레를 줄이려고 쳐둔 덫에 내가 제대로 걸려든 것이다. 방에 갇힌 반라의 두 여자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서로 바라보며 실성한 사람처럼 웃다가 울다가 한나절을 보냈다. 엄마는 혼자 있을 때보다 즐거운지 천진하게 웃었고 나는 속으로 많이 울었다. 참으로 어이없는 현실에 갇힌 나의 모습이 엄마에게서 보였다. 엄마는 아이가 되었고 아이는 엄마가 되어 있는 것이었다. 엄마는 나와 같이 갇히면서 불안이 사라졌다. 미안한 생각에 나의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몹쓸 병에 8년간 시달리다가 뇌출혈로 자리에 누우면서 엄마의 저지레는 끝이 났다. 방문 손잡이에 붙여졌던 바가지가 떼어졌다. 엄마의 방에는 솜꽃이 다시는 피어나지 않았다. 엄마의 살 거죽은 하루가 다르게 겨울나무의 등걸처럼 말라갔고, 점점 목각인형을 닮아갔다. 


  이듬해 봄꽃이 툭툭 터지던 날, 엄마의 방이 선뜩하여지고 나와 눈을 맞추던 엄마의 눈가에 물기가 하양 돌았다. 창가로 스며든 노을빛이 방안의 눅진한 어둠을 희석하며 엄마 주위를 싸느랗게 안았다. 엄마가 평상시와 다르게 눈동자를 좌우로 움직여 보이더니 맥박이 느려지고 힘겹게 눈을 내리뜨셨다. 상류를 거슬러 올라 기진하여 죽고 마는 연어의 핏빛 귀향을 보는 듯했다. 이를 어찌하면 좋은가. 엄마의 생이 여기서 멈추려나 보다. 내게 배태된 위선이 어미의 보시로 살라지는 순간을 맞는 듯하였다. 심장이 터질 듯한 슬픔이 나를 혼절시키려 들었다. 나는 무릎을 꿇고 엄마의 손을 놓지 못하였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엄마가 세상을 떠나셨다는 전화가 왔다. 장롱 서랍에 오래 보관되어 있던 미농지를 꺼내었다. 누레진 종이에 인주 빛 만다라 문양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재봉틀이 사라진 방에서도, 그늘진 엄마의 인생길에서도 한 여인의 청춘을 간직해준 증표처럼 보였다. 

  ‘네가 참아라.’ 내게 가시로 돋아나던 엄마의 주문이 당신의 삶 속에서는 얼마나 쉬웠는지 물을 길이 없다. 다만 무던히 참고 살아온 대가가 고통의 화살로 당겨진 생애의 끄트머리. 빛마저 휘어 달아나는 방에 갇히면서 얼마나 많이 외롭고 처량하였는가 하는 목맴만 짙게 남겨졌다. 벗어낼 수 없는 인간의 굴레가 있음을 목도한 것이다. 굴레를 벗도록 엄마의 어깨에 날개를 달아준 이 누구인가. 

  ‘갇힌 공간에서의 해방을 도모해준 자와 뼈가 바수어지도록 덩실덩실 춤을 추소서, 거추장스러운 현세의 옷을 벗어낸 알몸으로  환생의 문을 두드리소서.’ 나도 모르게 위선 같은 주문을 외고 말았다.


  염장이가 그 미농지 종이로 엄마의 꽃신을 삼았다. 해바라기처럼 환하게 웃던 엄마의 얼굴에 분홍색 분이 발라졌다. 엄마의 방으로 돌아가기 위한 채비는 이렇게 끝이 났다. 목 기러기 같은 엄마의 버섯 발목을 마지막으로 안아보았다. 곧 작은 꽃배가 되어 사후의 강을 건너가리라.


  진달래 만발한 세지 문중 산에 황토 봉분이 하나 더 생겨났다. 내 손을 잡고 놓지 못하던 엄마가 이 세상을 놓은 흔적이다. 흙이 마르고 풀이 돋아나면 엄마의 방은 견실해질 것이다. 입방 의식을 마치고 선산을 내려올 때 향기로운 바람이 산중에 불었다. 엄마의 방이 넓어지고 산중 뜰에 봄꽃이 슬프도록 만발한 탓이다. 엄마의 흙방이 견실해지면 해바라기 꽃을 걸지 않아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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