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을 닫아걸고 있는 외갓집 정주간, 문은 여전히 삐걱거렸다.
그곳에는 두 할머니와 평생을 같이한 커다란 가마솥이 둘 있다. 이젠 무거운 침묵의 덩어리가 되어버린, 내 어린 날의 추억이 담긴 가마솥 뚜껑을 조심히 열어본다. 빈 솥에서 쇠 부딪는 소리가 둔탁하게 끌려 나오고, 나는 그곳에서 기이한 동거를 했던 내 혈육의 굴절된 인연 타래를 은밀히 풀어낸다. 외할머니의 굴절된 삶이 봄빛에 겨워 아지랑이처럼 산란한다.
외할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던 엄마를 돌보다 화장실 바닥에 넉장거리를 하였다.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갔으나 환자명부에서 외할머니의 이름 하·나·부를 찾을 수 없었다. 병실을 잘 못 찾아간 것도 아닌데 싶어 다시 환자명부를 살펴보는데, ‘이월명 여 106살’이라고 쓰인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병실 안을 가만 들여다보니 그 환자의 자리에 누워있는 사람이 바로 외할머니가 아닌가. 할머니는 겸연쩍게 웃고 있었다. 병실로 들어가 대체 이월명이 누구냐며 나는 자초지종을 물었다.
정작 기가 막힌 것은 외할머니의 대답이었다. ‘이월명이 하나부랑게.’ 도대체 월명이가 누구냐고 묻는데 외할머니는 하, 나. 부가 이 월명이라고만 했다. 조용히 하라는 듯 손가락을 자신의 입에 갖다 대었다. 잠시 후 외할머니는 그 이름이 돌아가신 큰할머니 이름이라고 속삭이듯이 말했다. 몇십 년 전에 돌아가신 큰할머니 이름을 대며 자기라고 우기는 것을 보니, 외할머니도 엄마처럼 치매가 시작된 거 아니냐고 내가 내지르듯 투덜거렸다. 외할머니는 마지못해 오래전에 돌아가신 큰할머니의 사망신고가 아직 되어 있지 않은 까닭이라고 말하였다.
어렸을 적 외가에 가면 이가 다 빠져 입이 합죽했던 큰할머니와 외할머니 두 분이 나를 반겨주었다. 합죽이 할머니는 허리가 완전히 꼬부라져서 꼬부랑 할머니라고 불렸다. 늘 큰할머니인 합죽이 할머니가 먼저 버선발로 내려와 나를 품어 안았고, 외할머니는 그 옆에서 빙긋이 웃고 있었다. 외할머니는 나를 데리고 외할아버지가 머무는 사랑방 툇마루에 오를 때쯤에야 허리춤에 날 끌어다 붙였다.
외할머니가 소실이었다는 것을 정작 알게 된 것은 내가 막 고등학생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그때 친자매처럼 다정히 지내는 두 할머니의 모습은 사실 충격이었다. 그전까지는 큰할머니가 큰 외할머니였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큰할머니는 몸이 불편하여 힘든 일은 거의 하지 못하였고, 앉아서 할 수 있는 일만 조금씩 거들었다. 부엌일이며 밭일, 베 짜는 일, 옷 짓는 일등 잡다한 일거리는 거의 외할머니 몫이었다. 그나마 외할머니가 겨우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은 가마솥에 불을 지피며 풍로를 돌릴 때였을 것이다.
외할머니의 이름은 원래 하.나.비 였는데 남녘에서는 고양이를 나비라고도 부르는 탓에 ‘나부’로 고치게 되었다. 나비란 고운 이름과 달리 외할머니는 열일곱 살에 부모님을 잃고, 네 명의 동생을 돌보며 살았다. 솜씨, 맵시 고운 처녀라서 동네에서 눈여겨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것을 기화로 외할머니의 큰 아버지가 거간꾼처럼 뒷돈을 챙기고 자기 조카를 아무에게나 시집보내버린 것이다. 외할머니는 속도 모르는 남자에게 딸려가 첫 시집을 살게 되었는데, 걸핏하면 경찰이 신랑을 찾아다녔다는 것이었다. 뭔가 미심쩍었던 할머니는 어느 날 남편과 경찰이 나누는 대화를 엿듣게 되었고, 남편이 도둑질하고 다니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무서워서 살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외할머니는 부모도 없는 친정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친정으로 되돌아온 사실은 외할머니에게 씻을 수 없는 허물이 되었다. 그 때문에 상처한 자리라는 중매쟁이의 소리를 듣고 외할아버지와의 혼담을 두 번째 인연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데 막상 두 번째 시집을 가보니 본처가 엄연히 살아 있는 터였으나 다시 돌아갈 수가 없는 처지라 그냥 머물러 살았다는 것이다. 오도 가도 못할 형편에 놓인 할머니는 결혼식은 고사하고, 호적에 이름도 올리지 못한 채 본처인 큰할머니와 기이한 동거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큰할머니는 젊어서 척추를 심하게 다쳐서 젊은 나이에 꼬부랑 할머니가 된 거였고, 그 집안에는 여자의 몫이 필요하여 여자를 구한 것이었다. 물론 큰할머니의 동의하에 후처를 얻은 것이지만 큰할머니도 같은 여자로서 어찌 한의 무게가 없었을까 싶다. 외할머니는 자신이 전생에 지은 죗값이 아직 끝나지 않은 탓에 이러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푸념을 하셨다. 징그러운 인생이 오래도 산다며 한탄하는 외할머니의 갈강갈강 한 목소리에서 분홍 자귀 꽃 냄새가 났다.
한 남자 밑에서 두 여인이 살다가, 죽은 여인의 이름으로 남은 한 여인이 살아가는 소설 같은 인생. 큰할머니는 아들을 둘을 두었고, 내 외할머니는 딸을 둘 낳은 것이었다. 생전 처음 병원 신세를 지게 되시면서 알려진 외할머니의 사연에 나는 가슴이 저며 왔다. 외할머니는 별일 아닌 듯 웃기만 하셨다. 그 뒤로 외할머니는 자신의 거동마저 온전하지 않은 탓에 전남 다시에 있는 원동댁네 암자로 자신의 거처를 옮겼다. 외할머니가 워낙 절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아들네를 두고도 외할머니가 굳이 그곳으로 거처를 정한 까닭이 짐작이 되었다.
외할머니는 멀리 떨어져 계시면서 치매 병든 엄마 때문에 끌탕하였고, 엄마는 복사꽃 진달래꽃 붉디붉은 봄날 외할머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가셨다. 우리는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외할머니께 바로 알리지 못했다. 삼우제를 마치고 나서야 원동댁네 암자로 찾아가 외할머니와 마주한 자리는 서로가 어색했다. 암자 마당에는 복사꽃과 매화꽃이 붉게 터져 나와 있었고, 외할머니는 비녀를 빼내고 참빗으로 하얗게 센 머리칼을 공연히 쓸어내리셨다. 우리는 서로 눈길을 딴 곳에 두고 있었는데,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외할머니였다.
천하에 그런 망할 병이 어디 있느냐며 할머니는 볼멘소리로 이른 나이에 치매에 걸린 엄마의 병을 뒤늦게 나무랐다. 자신의 죄를 책망하듯이 눈시울을 붉혔다. “니들 어미 클 때 어른한테 말대답 한번 않고 얼메나 곱게 자랐는디.” 딸자식의 죽음 앞에서 자신이 살아온 동안의 말 못 할 체증을, 같은 크기의 한으로 환치시키는 소리로 들렸다. 엄마의 위패는 엄마가 어릴 적 외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다니던 절 관음사에 모셔졌다. 절 마당에서 엄마 초상 치를 때 입었던 소복과 엄마의 소지품을 태웠다. 스님은 사람 모형의 짚동가리 몸뚱이에 광목 한 필을 휘감아 불사르기도 하였다. 외할머니보다 먼저 가신 엄마의 가슴에 한이 남아있다면, 그것이 외할머니의 인생과 연관이 있었다면 그마저 살라지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그 한의 인자가 내게까지 밀려와 있다면 그것도 분향처럼 날아오르길 속으로 바랐다. 차마 떠나지 못하는 엄마의 넋이 훠이훠이 날아가길 소원하였다. 선뜻 발 떼지 못하는 엄마의 혼과 옷자락이 어느새 재가 되었고, 미처 타지 못한 하얀 고무신만 짝으로 남았다. 엄마는 늘 수심이 깊었던 것 같다. 외할머니의 고단한 삶이 엄마의 몹쓸 병을 키웠을까. 이러저러한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잡생각이 타다 남은 고무신에 담기면서 고무신은 꺼무레한 목선의 환영으로 변해갔다. 그 안으로 검붉은 탁류가 차올랐다. 흰 고무신이 마저 타기 시작하는데, 매캐한 연기가 나를 쿨룩거리게 하였다. 보이지 않게 혹은 당연하게 여자를 멸시하는 인습이 형벌처럼 느껴졌다. 순간 나는 그 연기에 묻혀 숨죽여 울고 있었다.
꼬부랑 큰 할머니도, 서둘러 돌아가신 엄마도 모두 연민의 대상일 뿐이다. 존재의 허울마저 잃고, 천형인 양 받들어온 외할머니의 삶은 오지 않을 봄을 기다리는 얼어붙은 겨울이었을지 모른다. 어언 70여 년을 자식 낳고 살아온 그 자리에 이름 석 자 올리지 못하고, 짊어진 세월의 등껍질만 부풀리며 한을 키워온 한 노인의 굽은 등을 누구라서 펴 줄 것인가. 백수를 내다보는 외할머니의 등이 거북바위 같아 보였다. 큰 딸마저 먼저 떠나보내는 어미의 회한 서린 몸짓, 외할머니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거북이가 움직이듯 천천히 굽은 몸을 움직거린다. “날이 참 좋다, 이런 날 떠난 착한 니그 어메, 여그 보다 더 좋은 데로 갔겄다.” 외할머니의 관절을 결박했던 소리가 부서질 듯이 풀려 나왔다.
백수(白壽) 세월 동안 묶여 있던 설움의 소리가 흘러나오는 듯 들렸다. 세월을 닫아걸고 외할머니처럼 늙어가는 외갓집 정주간, 그곳에는 두 할머니와 평생을 같이한 가마솥 두 개 기이한 동거의 흔적이다. 빈 시렁에 올라탄 끄름과 함께 가마솥은 여전히 부뚜막에 붙어 있는 것이다. 외할머니의 손 거스름이 묻어나던 풍로 앞에서 이러저러 시름을 살라낸 흔적을 드려다 본다. 타버린 불꽃처럼 서글픈 사연이 재가 되어 부지깽이 사이를 떠돌 뿐 지금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빈 시렁에 올라탄 끄름과 함께 가마솥은 변함없이 부뚜막을 지킨다. 크고 작은 가마솥을 보노라니 두 할머니의 기이한 동행을 보는 것만 같다. 할머니의 손 거스름이 묻어날 것 같은 풍로에서 시름의 흔적을 더듬는다. 다 날아가지 못한 재가 부지깽이 사이를 떠돌 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가해자의 부재 속에서 세월이 무심히 지나가고 있다.
시간의 균형을 잃고 죽어서도 버젓이 살아 있는 사람과 그 사람의 이름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일그러진 존재들을 아름답게 부화시킬 수는 없을까. 죽은 듯이 살아온 날들이 까맣게 그슬려 가마솥 밑 둥의 더께가 되었다. 한없이 채우고, 퍼주고, 비우며 생을 바친 외할머니의 가마솥. 거기에 대고 잃어버린 이름 하. 나. 부를 정주간이 쩡쩡 울리도록 불러 보고 싶다.
하나부....... 쇳소리가 멈추고, 뚜껑이 열린다. 균형 잃은 인생이 멈추고 가마솥 안에서 나비 한 쌍이 나풀나풀 날아오른다. 가마솥을 벗어난 나비는 잃어버린 봄을 찾을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