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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me Nov 30. 2022

뼈, 그것 참

 하르르 피어 구르는 꽃잎 파리, 하염없이 피고 지는 벚꽃나무의 입술들. 벚나무는 입술도 많다. 분홍 입술로 바람에 겨워 흔들리다가 새를 불러 노래하고 해님에게 넉살을 부린다. 겨우내 가둬 둔 이야기들 꽃잎으로 휘날리며 소리 없이 아우성친다. 


 하루가 저물고 내일이 몸 불리는 밤.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외로움을 키워 둘이 걷자는 성량 좋은 가수의 설레는 목소리가 꽃바람과 손잡는 봄밤이다. 산속에 혹은 길가에 피어난 꽃송이들의 애절한 떼 창에 가슴이 울렁인다. 아직 꽃샘추위에 몸 사리지만 추위는 곧 무력하게 항복할 것이다. 꽃 핌은 추위를 보내고 보드라운 살결로 속삭이는 사랑의 증거이다. 입술을 열듯 오므려진 잎을 펼치어 피었다 지고 마는 수줍음이 절색이다. 아름다운 사랑의 연대를 위해 분홍 살빛을 지닌 너는 눈부시게 봄을 열고 홀연히 떠나가는 각시님이다. 마음 한 자락 푸른 살갗에 수없이 비비고 떠나는 얄궂은 여인이다. 마치 사랑이 생명의 뼈를 남기기 위한 순결한 과정인 것처럼 어여쁘다.    

  

 ‘꽃에도 뼈가 있다’는 시구를 읽으며 꽃과 뼈를 상관 이미지로 차용한 것이 신선하다 생각했다. 꽃줄기가 마른 것을 뼈의 이미지로 환치시킨 것이다. 물기 머금은 줄기가 물 올리기를 멈추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뼈가 되는 것이다. 뼈는 척추동물 존재의 자존심이다. 어느 부위든 뼈가 부러지면 일상은 멈추게 된다. 충격에 부스러지고 마는 꽃잎일지라도 잎맥을 따라 잠자리 날개처럼 얇게 뼈를 만드는 일은, 존재의 자존심을 내보이는 것이리. 그것은 뼈 빠지게 일하고 뼈아프게 살아낸 날들이 자신을 화석화시키는 일이다. 


  기를 쓰며 속 살 피워내며 수줍게 향기 날리던 날, 넌 아름다운 신부처럼 피어났다. 며칠 뒤 땅에 입술 떨어뜨려 고스란히 쓰레기로 남은 너의 아침을 쓸다가 뼈아프게 보낸 내 사랑을 좇는 아침이다. 나는 차마 버리지 못하고 너를 피어낸 나무 곁에 도로 묻는다. 며칠 뒤 너를 쓸어낸 그 자리에 너의 붉은 꽃받침이 뼈 되어 수북이 쌓였다. 나를 떠나간 사랑처럼 쓸쓸한 아침. 그거 참. 뭉텅 속살이 떨어진 뒤의 네 뼈가 또 다른 꽃으로 보인다. 살살 쓸어내려다 나무 곁에 도로 뉘었다. 너의 사랑은 끝나지 않은 랩소디처럼 내 곁을 맴돈다. 내 사랑은 이미 뼈도 삭았을 만큼 죽은 지 오래인데.


  기를 쓰고 살았다. 아픔만큼 가시가 돋았다면 인간 고슴도치이거나, 가시면류관을 쓴 그분일 만도 하다. 비웃음을 당할 일이지만 그땐 사랑이 뭔지도 몰랐다. 지나고 보니 사랑이었다. 결혼은‘뭐가 뭔지도 모를 때 하는 거라’는 말을 따른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겠지. 하지만 그것 또한 뼈를 가진 내 운명 내 존재의 미숙한 열망이었을 것이다. 철없던 열망 또한 뼈 마디마디 차여든 신음을 다독이며 나를 쓰러뜨리지 않은 몸속 기둥이었을 것이다.  


  며칠 전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라는 제목의 오디오 에세이를 들었다. 작가는 더 이상 열심히 살지 않기로 결심하면서 욱한 마음에 퇴사를 한다. 팬티 차림의 자유롭고 매우 시원한 모습으로 득도하듯 지낸다.‘포기하면 편해집니다’란 일러스트에 의식의 뼈가 비쳐 보였다. 웃픈 현실을 위트 있게 쓴 하완 작가의 뼈를 들여다보는 듯했다. 이 책의 첫 문장은‘나는 어디로, 괴테가 그랬다.‘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작가는 특별한 계획 없이 자의 반 타의 반 사표를 던졌는데 곧바로 사표가 수리되자, 자신의 퇴사가 괴테 때문이라고 위트 있게 변명한다. 그는 제대로 가기 위해 뼈를 지키기 위해 멈춤을 선택한 것이다. 열심히 살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 것은 자신도 알 수 없는 자신을 위한 실험이라고 강조한다. 인생 매뉴얼대로 열심히 살아온 마흔둘 남자의 뼈아픈 고백이다. 뼈가 녹기 전에 뼈를 세우려는 옳은 결기다. 작가는 전적으로 자신의 인생이니 무모한 선택에 대한 대의적 걱정은 당찮다고 덧붙인다. 


  기를 쓰고 산 내 시간이 부끄러워진다. 나는 괴테를 이런 식으로 내 삶에 끌

여들이지 않았다. 존재의 뼈를 튼튼히 하기 위해 산 것이 아니라 부질없는 욕망을 위해 헛발질만 한 것 같다. 쉬 다리가 아프다. 내 가슴에 떨어진 돌을 치우기에 급급했다. 쉼 없이 그라운 드을 달리기만 하여 지친 느낌이다. 

 꽃잎도 피고 지는 결미에 뼈가 되는 길을 택한다. 그것은 운명이다. 밤이 보내온 아침을 쓸어내며 하르르 피어나 내 맘을 설레게 한 너를 기억하며 기쁘다. 고맙다. 늦게나마 못다 한 내 사랑의 뼈, 그것의 실체를 알게 되어서. 

꽃잎아 흩날려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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