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앞에 섰다. 바람 부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눈이 얼얼해지더니 파란 풍경 위에 구름이 내려앉듯 시야가 오래도록 뿌옇다. 알 수 없는 감정에 오라졌던 기억이 흐려지고, 하늘과 바다가 맞닿더니 경계가 사라진다. 얼보이는 눈앞의 파랑이 선명해진다.
가을을 흠모한 하늘이 묘지 위에 푸르다. 바닷가에서 파랑에 몰두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광릉의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가 푸른 ‘난새(상상의 새)’는 구름과 숨바꼭질하며 낮달과 어울린다. 광릉 숲의 나무들이 마음껏 가을을 환대하고 있다. 싸늘한 달빛 아래 숨져간 초희의 설운 삶이 터를 잡은 곳. 서러운 눈물 그대로 별이 된 그녀의 사람들, 환대받지 못한 그들을 하나둘 불러낸다.
스물일곱 해를 살다가 하늘로 오른 초희가 낮달로 나왔다. 비취 옥빛 하늘나라에서 애끓던 눈물 거두고 슬픔 없을 곳에서 소요하라 염원하던 동생 허균의 통곡이 잠든 곳. 꽃다웠던 그녀의 오래된 슬픔이 묘지 위에 울타리를 친다. 오른쪽 옆에 껴안기 듯 나란한 두 아해의 무덤이 애처롭다.
난설헌 초희는 시집간 지 삼 년 만에 친정아버지의 객사 소식을 접한다. 스승 같았던 아비를 잃은 다음 해에 어린 딸을 떠나보내고 이듬해 20살에 아들 희윤이 마저 돌림병으로 잃어야 했다. 나지막한 쌍무덤 위에 그녀의 피눈물이 엉겅퀴로 피어났던가. 뼈만 남은 꽃자리에 늦가을 서리꽃이 피었다. 겨울이 오면 눈꽃 시리게 피어날, 그녀가 묻힌 땅을 내가 밟고 서 있다.
‘슬프고 슬픈 광릉 땅이여! 두 무덤이 마주 섰구나, 어린것들 밤마다 서로 어울려 놀고 있겠지’ 이 글에는 자식 잃고 눈물로 쓴 어미의 마음이 새겨 있다. 초희의 죽음과 아해의 죽음을 애도하던 곡비 소리가 광릉 땅에 꺼져 들 때 초목마저 눈 못 뜨고 아파했을 터다. 희윤이를 보내고 난 7년 뒤 초희마저 두 아해의 무덤 윗자리에 누웠다. 강렬한 비애가 내 가슴을 훑고 지나간다. 조선의 여자로 태어난 게 죄였던가. 묵객이 된 것이 죄 이런가. 15살에 김성립의 아내가 되었지만 남편은 과거 공부를 핑계로 밖으로 돌고 공방으로 지새우는 날이 많았다. 그런 밤에 글을 읽고 님 그리는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삭였다. 혹독한 시가 살이와 가시에 눌린 듯 고통스러웠던 열 두 해를 부여안고 ‘달이 뜬 밤 찬 서리에 붉게 졌다.’ 초희는 안동 김 씨 문중 땅에 묻혔으나 그녀의 바람이었는지 의연하게 홀로 묻혔다. 남편 김성립은 초희의 무덤 위쪽에 재혼한 부인과 함께 묻혀 있다. 그녀의 봉분을 쓸어본다. 달빛이 키운 풀들이 잔잔하다.
달로 향하는 발길, 달빛은 길을 열어 그녀를 달 궁에 들였나 보다. 달은 초희와 그녀의 아해를 하염없이 품으며 수많은 날을 빌어 왔으리라.
달 궁에서의 삶을 이미 예견했던가. 어린 시절인 8살 때 광안 전 백옥루 상량문을 썼다. 초희는 자신의 상상대로 걱정 없이 달 궁에서 빛으로 내려와 광릉 땅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이슬 속을 노닐고 있으리.
“노을 위의 은빛 창문에서 구만리 희미한 세상을 내려다보고, 바닷가 문에서 삼천 년 상전벽해를 웃으며 보고 싶다. 손으로 하늘의 해와 별을 돌리고 몸소 구천의 바람과 이슬 속을 노닐고 싶다.”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에 나오는 구절을 나태주 님이 번역한 부분이다. 달 속에 있다는 전설적인 궁궐 광한전의 백옥루가 그녀의 새 거처가 되었으리. 파란 ‘난새’를 타고 구름 속을 날아 백옥루에 앉아 먹을 갈고 그림을 그리며 시를 쓰는 그녀를 그려본다. 손으로 해와 별을 돌리고 있을 초희를.
‘노을 위의 은빛 창문’은 달의 창문이었을까. 구만리 먼 곳에서 손으로 해와 달을 돌린다는 아이의 상상! 이 얼마나 우주적인가. 묘지 위에 뿌려지는 별빛은 이미 아이들의 눈빛과 그녀의 눈빛이다. 조카 희윤에 대한 허봉의 애달픔이 묘비명 언저리에 뒤엉켜 있다. 어린 조카의 이름을 부르는 허봉의 목소리가 비파소리로 감겨들고, 남매의 흐느낌이 파르르 현에 실린다. 희윤의 음성이 작은 무덤 언저리에서 구슬픈 단조를 띠는데 하늘엔 낮달이 형형하다.
어린 자식을 잃은 난설헌은 시 ‘곡자哭子’를 썼다. 두 자식을 연이어 잃은 어미의 통곡과 굴곡진 삶에 저항하는 심정을 아로새겼다. ‘배 안에 또 아이가 있으나 장성할 날이 있을 것인가 염려하며 피눈물 머금고 노랫소리 삼킨다’고 초희는 읊조린다. 예견대로 태중의 셋째 아이마저 지켜내지 못한 탓인지 자신마저 세상을 놓아버린다. 한 서린 피눈물은 그녀를 베는 칼이 되었다. 그녀를 잃은 지 몇백 년이 지났어도 스물일곱 송이 부용꽃이 된 그녀는 잊히지 않을 영원한 어미의 원형질이 된 것이다.
내가 난설헌이 잠든 곳에 이끌린 것은 허균이 쓴 <훼벽사 毁壁辭>를 접하고 그녀에 대한 뒤늦은 애도 때문이다. 훼벽사에는 성정이 현숙하고 문장이 뛰어난 제 누이의 죽음을 접한 황망함과 창자가 뒤틀릴 정도의 아픔이 현현하다. 죽은 누이가 상제의 뜰에서 자유롭길 바라는 허균의 바람이 눈발처럼 날린다. 자기 작품을 다 불태워 없애라는 그녀의 유언이 있었음에도, 허균은 누이의 글을 기억해 내고 찾아서 목판본으로 ‘난설헌 집’을 만들었다. 죽은 사유는 정확하지 않으나 글에 대한 유언을 남겼다는 것은 사실로 전해진다.
오직 살아있는 나만이 슬픔 안고서 / 唯生者兮懷悲높은 하늘 바라보며 창자 뒤틀린다오 / 睇九霄兮回腸돌아가 소요하소서 / 歸來兮逍遙상제 뜰 안은 노닐 만하오이다 / 帝之庭兮可以相羊 ”
(허난설헌 추모 시) 교산 허균 - 훼벽사(毁璧辭) 中 일부
난설헌의 성정은 솔직함과 당당함이었다. 유학으로 무장한 사림파가 장악하던 미욱한 시대의 자유로운 혜안자로, 억압의 시대에 몇백 년을 관통하여 이상을 실현한 이상주의자로 부족함이 없었다. 초희는 혼례 후 처가살이가 일반적이던 때 시댁에서 사는 ‘친영제親迎制’에 순응한다. 시어머니의 학대로 인한 혹독한 시집살이에서도 남편의 냉대에서 오는 부부 갈등, 남녀 사랑의 감정 표현에는 적잖이 자유로웠다. 그녀는 8살 무렵부터 두보의 시를 섭렵하는 등 습독으로 얻은 해박한 정신세계를 지닌다. 그 정서는 현존의 명제와도 부합하니 그 예지적 선견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난설헌의 자아 형성은 학문을 중시한 집안의 영향이었다. 아버지 허엽은 대학자인 서거정의 수제자였고, 오빠 허성과 허봉, 동생 허균도 조선의 문필가였다. 난설헌은 일찍이 가족과 오빠 친구인 서자 출신 이달에게 학문을 익혔다. 천재적 상상력으로 사물을 은유하고 내면의 정서를 시와 산문으로 경이롭게 표현하였다. 자신이 꿈꾼 이상 세계를 글로 이뤄낸 것이다.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을 쓸 수 있었던 것도 어려서부터 두보의 시를 읽고, 『태평광기太平廣記』 와 같은 책을 즐겨 읽어서 신선에 대한 이해가 깊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조선 시대는 여성이 학문을 해서는 안 되는 분위기였고, 삼종지도를 내세우고 여성에 대한 봉건적 예속이 강화되던 시대였다. 하지만 개방적인 사고를 지닌 아버지의 남녀 차별 없는 가르침이 난설헌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었을 터이다. 그러나 시집간 지 3년 만에 갑자기 부친 허엽의 죽음을 맞았고, 그 뒤로 감당할 수 없는 불행한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그것이 초희(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린 이유가 되었으리라.
문장에 능한 탓으로 그녀와 유사한 삶을 산 그 시대의 여인은 여럿 있었다. 허균이 학산 초담에서 이옥봉의 시를 칭송하였다. 그녀는 서녀로 태어나 소실로 살다가 시를 지었다는 것을 빌미로 남편에게 버림받고 차디찬 물속에 몸을 던진다. 기록에 전하지 않는 수많은 여인의 가련한 죽음이 조선 시대상이었다. 지금도 여성의 앞선 생각이나 정의로운 행동은 남녀를 떠나 권위적인 세력에게 그리 환영받지 못할 때가 많다. 부박한 세상에 맞서 자기 생각을 떳떳이 밝히고 행동하는 일이 여전히 용기가 되고 혁명이 되는 시대라니, 부적한 시대가 언제나 사라질까. 달 지고 우는 꽃은 지금도 보이지 않게 수없이 피고 지는데.
‘향기로운 난초가 꽃을 피웠는데 그만 시들고 말았습니다. 향기는 여전하지만 이미 생명을
잃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 향기도 난초와 함께 사라져 갈 것입니다.’
자신을 난초에 비유하며 자기 죽음을 암시한 시구이다. 난초 시와 더불어 ‘몽유 광상산’에
도 ‘연꽃 스물일곱 떨기 늘어져 달밤 찬 서리에 붉게 지네’라고 자신의 죽음을 암시하였다.
‘곡자’ 시비가 묘 앞에 굳게 세워져 있다. 시비에 기대어 하늘을 본다. 가을 햇살이 따습다.
신선 세계에 사는 그녀가 낮달로 보인 하루다. 광한전 백옥루의 상량식에 초대받았다고 상상하면서 글을 썼다는 아이를 영접한다. 구름 수레를 타고 궁을 넘나드는 그녀, 새처럼 날아오른 그녀를 연모한다. 문인이나 묵객이 죽은 뒤에 상제의 초대로 간다는 천상 누각 ‘백옥루’가 그녀가 실제 글로 써서 꿈꾸던 이상향이 아니던가.
붉은 저고리를 입고 아버지인 듯한 선비의 손을 잡고 고개를 한껏 젖혀 날아가는 새를 바라보는 초희의 ‘앙간비금도’ 그림 속 소녀가 또렷해진다. 고서를 즐겨 읽으며 자유롭길 갈망하던 그녀가 불행했던 삶을 허물고 여신이 되었다. ‘푸른 이무기가 안개를 불어 구슬 나무 궁전을 지었다’는 달 궁 속 백옥루를 초희는 자유로이 소요하리라.
그녀를 만나러 달마중 간다. 해가 지고 시려진 하늘 속, 달 창에 등 밝혀지듯 백옥루에 달빛이 들어차리. 내 눈빛까지 바꿔버리던 파랑 바다와 파랑 하늘이 그날처럼 섞이어 어둠을 받든다. 어둠이 둥근달을 에워싸니 묵객 그림자 어른거린다. 섬섬한 그녀가 깊은 밤 달 꽃으로 피어나고 있다. 삶을 태워야 피는 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