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탑방에서 추억의 졸업사진을 발견하였다. 36년 전의 내 모습이 벚꽃처럼 화사하다. 학사모를 쓴 단발머리 아가씨는 노란 프리지어 꽃다발을 들고 엷은 미소를 머금은 채 검정 단화를 신고 있다. 단단히 묶였던 시간이 풀려나면서 때 묻고 거칠어진 연륜이 사진 앞에 고개 숙인다. 여린 야생화 같은 사진 속 여인을 핸드폰에 옮겨 가족 단체 톡 방에 전송했다. 꼭 37년 전 모습이다.
“내가 미인을 얻었었네.” 남편이 과거형으로 답변을 달았다. 지금은 헤어진 그녀이신가 보군요라고 내가 답했다.
“엄마는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으로 넘어가면서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네.”
딸이 연이어 토를 달았다. 엄청난 이란 형용사에 비위가 좀 거슬렸다. 남편은 어디서 주 00 가수 사진을 가져왔느냐며 뒤늦게 딴청을 부렸다. 사진 속 나는 스물여덟 번째의 이른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아니 길고도 짧았던 젊은 날의 쓸쓸했던 겨울을 환송하는 중이었다. 나는 사정으로 대학 입학이 늦어졌고 결혼을 한 이듬해에 졸업을 하게 되었다. 신혼 때 찍은 것이니 자기를 만나 예뻐진 것이라고 남편은 으스대었다.
이십 대의 봄은 여러 고민과 희망이 교차하면서 연분홍색으로 피고 졌다. 파도소리 귀에 담으며 뜨거운 여름에 홀려 가슴이 데이기도 하였다. 깊은 가을 끝자락 노을에 갇힌 붉은 꽃구름에 눈물을 쏟아내며 먹먹하던 기억들은 젊은 시절의 배경이 되었다. 설익어 떨떠름했던 청춘의 겨울은 춥고 어두웠으나 말없이 국화빵을 내밀어 주는 손길이 있어 견딜 만하였다.
결혼 후, 달달한 시간이 내 삶에 기웃거릴 줄 알았다. 계절의 이별은 손님처럼 찾아들었다가 황급히 떠나가며 행복과 거리를 두었다. 밀물과 썰물의 들고 남처럼 반복되면서 염전에서 소금을 만들듯이 인생을 짭짤하게 성숙시켰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른 세상으로 데려가던 날의 슬픔은 인생의 고통을 이겨내는 쓴 맛의 단련이었다. 남겨진 사람들을 더욱 사랑하게 만드는 쓰디쓴 묘약이 되기도 하였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진리는 인생의 고전수업으로 빈틈없이 내 시간에 몰두했다. 그 대가로 나이만큼의 성숙 치를 의미하는 ‘나이 값’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의인처럼 섬겨야 했다. 과단성 없이 어른의 흉내를 내고, 자신의 욕망을 뒤 전에 두고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답습하였다. 날아보려는 생각도 없이 날개를 망토로 여기고 살아가는 미련한 닭이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늘에 기대고 살아가는 ‘앨버트로스’의 자유는 내게 닿지 못할 꿈의 대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 높은 곳으로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신천 옹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철학자의 충고가 가슴에 와 꽂혔다. 꺽지지 못한 성정으로 해야 하는 일에 충일한 것도 아니었으나 배짱 있게 살아내지도 못하였다. 마음은 독배를 들고 미적지근하게 사느라 고달팠다. 혼기가 찼다는 구실에 기대어 도피하듯 결혼을 하고 시집살이를 시작한 나의 30대 시간의 맛은 짜고 매웠다. 결혼하자마자 바로 시작된 시아버지의 병 수발과 첫아이의 임신, 이중 고역은 신혼의 시간을 통째로 먹어 치웠다. 맹수에게 집어삼킴을 당한 토끼 신세 같았던 것이다.
어느덧 시난고난 세월 고개를 넘어오면서 예순세 번의 봄을 맞이하였고, 그만큼의 여름을 흘려보냈다. 같은 숫자만큼의 사계절을 맞이하고 보내면서 심장이 쪼여들던 시간들과 친숙하게 이별할 줄도 알게 되었다. 서리꽃 어룽지던 수십 번의 겨울은 무채색의 칼바람과 폭설을 동반하며 견인할 수 없는 아픔들을 눈길에 묻었다. 속은 바람 든 무처럼 구멍 나고 쪼그라들어갔다. 친정집의 파산은 내 몸과 마음을 제대로 겨냥한 독화살이 되었다. 그로 인해 숨죽이고 살던 결혼 생활은 서릿발 선 땅으로 꺼져 들었다. 도사려진 채 나목의 표피처럼 굳어진 감정들은 갈라진 수피 속으로 갈마들 듯 마음 안으로 숨었다. 겨울은 동토의 계절답게 생에 성에를 두르며 일생을 차갑고도 거칠게 윤회한 것이라 생각하였다.
계절은 약속이나 한 듯이 손님처럼 찾아와 내 시간의 영토에 세월 꽃을 피웠다. 세월의 뜰에 뿌리내려 굽질리던 시간들은 여러 계절을 돌아오는 동안 달고 쓰고 짜고 맵게 인생의 탑을 쌓았다. 생을 놓는 순간까지 살아갈 만큼의 현재 진행형으로 인생은 누구의 시간이든 고유한 향과 맛을 지닌다. 구질구질한 인생 쓰레기통에 와락 버리고픈 날들 속에서도 수많았건만, 기쁨과 슬픔이 뒤섞여 새큼하게 발효된다. 야산에 피어난 꽃 이름만큼의 애틋한 사랑과, 이별이 켜켜로 누 질러 발효된 시간의 맛은 술 빚는 방법대로 농익는 농주처럼 다양하다. 저들만의 빛깔로 꽃 피어나 야릇한 맛과 향을 품기 때문이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아픔이 키운 상처와 기쁨이 피워낸 세월의 맛은 오미자처럼 시고 달고 짜고 쓰고 맵다. 시난고난 옹이 진 연륜이 인생의 맛을 굳혀가기 때문이다. 한 때 눈물이 된 슬픔도 다시 꽃을 피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사람처럼, 제 땅을 가 다루는 솜씨에 따라 아픔도 때론 쓸모 있는 땅으로 뒤바꿈 된다. 그 땅에 시간의 맛이 잘 발효되려면 기쁨과 슬픔의 달고 쓴 맛을 적당히 누지를 누름돌이 필요하겠지.
나이를 헛먹었구나! 하는 탄식을 종종 한다. 나이만큼의 품격 있는 분별을 못할 때 스스로를 질책하는 말이 나온다. 그 말에는 잘 살아오지 못한 인생의 회오가 느껴지기도 하나, 역으로는 남은 인생을 맛있게 살고 싶다는 욕망이 기저에 깔린 말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젊은 시절, 세상에서 가장 슬픈 단어가 ‘나이’였다고 술회한다. 80세에 다다른 어느 백발의 노배우는 80이란 나이는 너무 멋진 나이라고 무대에서 당당히 말한다. 자신의 결기에 따라 나이는 허물어져 가는 성터로 남거나 기름진 옥토로 가꿔지므로 가꿔온 영토지기의 결과물이다. 한 번뿐인 인생 가차 없이 흘러가버리지만 인생이 우려낸 시간의 맛을 한정하는 것은 삶에 대한 나태가 아닐까. 맛깔나게 살려는 추구는 남은 삶에 대한 예의라 생각한다. 등 떠밀려 살아온 인생에 대한 예우가 각별히 필요한 시간이다. 누군가는 철학을 꿈꾸고 누군가는 쾌락을 꿈꾸는 멋진 세상이 아닌가.
나의 사진 속 배경이 시나브로 햇무리 지어 꽃밭으로 변해간다. 맛있는 인생 한 무더기 꽃으로 피어나길 소원한다. 사는 동안 견인되지 못한 사랑을 묻어버린 아픔도 내 시간의 영토에서 무명의 풀씨로 거듭나길 바란다. 싱그러운 풀꽃 피워내는지 그 꽃밭에 색 바람이 든다. 행복과 불행이 교차되는 세월을 낚으며 인생을 우려낸 삶의 시간이 차려낸, 차반에 맛 들이고 싶어 진다.
맛있게 인생을 굽기 위해 시간을 뒤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