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 흘림의 서사 2
현대시와 수필문학과의 만남... (텍스트 조병화의 ‘의자’)
그의 아틀리에 대문에 포스터가 붙어 있다. 눈을 감고 입술을 굳게 다문 *K 작가의 테라코타 ‘自塑像(자소상)’이다. 두상의 질감은 달의 거죽처럼 거칠고 주검처럼 암울하다. 도드라진 거푸집 이음새로 인하여 K 작가의 얼굴이 열십자로 갈라져 보인다. 두상에 드러난 거푸집 흔적에는 세상 밖으로 서둘러 달아난 그의 결기가 묶여있다. 이마에서 턱까지 곧게 내려친 직선과 코끝에서 교차한 횡선은, 피할 수 없는 작가의 운명과 유예할 수 없는 숙명의 올가미가 아니었을까 싶다. 아틀리에의 뜰 안으로 그가 즐겨 듣던 음악이 흐르고, 홀연히 세상을 떠났던 K가 하얀 스크린에 되살아난 출렁인다.
아틀리에 옆에 붙어있던 살림집이 4칸짜리 말끔한 작업실로 바뀌었다. 원래의 교창交窓을 그대로 살려 내었고 대청은 널찍해졌다. 누마루를 달아내고 작가가 거주할 ‘아티스트 레지던스’ 작업공간으로 거듭난 것이다. 대청마루에서 노래하는 소리꾼의 판소리가 뜰 안에 넘쳐난다. 심 봉사 눈뜨는 대목이 다가오자. 소리꾼은 매화꽃이 화려한 부채를 펴 들고, 성주를 맞이할 듯 버선발로 선걸음 치면서 목청을 높인다. K 작가의 혼령을 만난 듯이 뱃소리를 힘껏 토해낸다. 구경꾼의 추임새는 하나 없고 고수의 북소리만 뜰채를 울리고 있다. 어두웠던 아틀리에로 봄빛이 산란하고, 취재하는 방송국 기자들의 발걸음이 소리 없이 분주하다. 생전에 그가 제일 좋아했다는 해바라기 꽃이 한 아름 작업실 항아리에 꽂혀있다. K 작가를 기리는 사람들이 한 송이씩 해바라기 꽃을 바쳐 들고 묵묵하다. 그가 앉았던 의자 위에 해바라기 꽃빛이 샛노랗게 물들고 있다.
봄바람이 소리꾼의 치맛자락을 들쳐대며 살랑거린다. 직박구리와 박새도 판소리에 취했는지 지붕 위를 떠나지 않고 요란하게 지저 댄다. 소리꾼의 어깨가 들썩여지고 목줄이 굵어지는 것을 보니 심 봉사가 곧 눈을 뜰 모양이다. ‘아이고 아버지!~~’ 소리꾼이 사설을 내지른다. 세상과 단절한 채 35년간 닫혀있던 아틀리에가 새롭게 열리는 날, 심청이의 간절한 구원이 함께 터져 나온다. 소리꾼은 사람들을 향해 ‘얼씨구!’ 추임새를 넣어 달라 시늉을 한다. 소리꾼은 추임새 없이 노래하기는 난생처음이라고 푸념을 한다. 관객은 혼나가며 노래 듣기 처음이라며 응수를 하다가 판소리는 끝이 난다. 흥이 없는 게 아니라, 경이로운 순간을 맞이하는 엄숙함 때문이었으리라.
물기에 젖은 듯 습한 아틀리에는 작은 성소처럼 느껴진다. 속이 횅한 테라코타가 먼지에 싸인 채, 진열장과 작업대 위에서 정지되었던 시간을 세고 있다. 아틀리에 입구에는 걸개그림이 휘장처럼 내걸렸다. 그림 속에서 K는 말의 두상을 다듬고 있으며, 빈 의자와 완성된 그의 작품들이 전경이 되어 남은 공간을 채웠다. 포스터의 ‘자소상’이 그 걸개그림을 지긋이 바라본다. 격자무늬 횡창으로 은은하게 빛이 새어든다. 작업실에 남겨진 미완의 유작들이 여리게 그 빛을 물고 있다.
삼 년 전, 오래도록 유예되었던 공간, 인적 없는 이곳에서 그의 의자를 처음 보았다. 축음기 옆에 있던 그의 의자에는 두껍게 먼지가 앉아 있었다. 손수 지었다는 작업실에서 스스로 목을 맬 수밖에 없었던 죽음의 단서를 찾기 위해 의자를 조심스럽게 만져보았다. 그리고 지금도 쇠사슬이 매달려 있는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손길에 섬뜩함이 느껴진다. 무언가가 내 손을 꽉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음산함에 눌려서 얼른 의자에서 손을 떼었다.
그의 작품 못지않게 그의 체취가 고스란한 의자에 다시 눈길이 간다. 의자는 존재하는 것과 존재했던 것과의 교감을 끌어 앉은 채 개인적 서사를 완성해 가고 있었다. K 작가 완성된 작품의 두상들을 바라볼 때 그를 응원하고, 흙 묻는 그의 팔과 어깨를 받아준 것도 그 의자였을 것이라 상상한다. 그가 리어카에 작품을 싣고 언덕길을 내려갈 때, 의자는 그가 없는 동안 작업실을 지키며 그를 염려했으리라. 허탈함에 젖어 돌아온 그를 위해서 많은 시간 침묵했을 그의 의자가 성자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이 바친 꽃이 쌓여서 환영처럼 의자 위에 노란 해가 떴다. 오래도록 아틀리에에 해가 들었다. 잠겼던 문이 모두 열리고 그를 가두었던 골방에도 노란빛이 뛰어들었다. 아직도 그의 독백 소리가 흙벽 속에 숨어 있는 듯하다. 기자들의 취재열기가 후끈하다. 작업실에 있는 우물가로 사람들이 해바라기 꽃잎처럼 붙어 선다. 작업실 서까래에 매달린 굵은 쇠사슬이 진열대를 떠받친 채 중층 바닥을 위험스레 붙들고 있다. 기자들의 숨소리와 함께 찰칵찰칵 카메라 렌즈 속으로 쇠사슬이 끌어당겨진다. 환청이었을까, 음악이 흐르는데 K 작가가 매달렸던 들보에서 철컥 숨 끊기는 소리가 들린다. 우물 안을 들여다보던 사람들이 이내 시든 꽃잎처럼 흩어진다.
‘지금 어디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
K 작가가 빚은 테라코타는 뜨거운 불길 속에서 더욱 단단해진다. 속을 비워낸 흉상과 두상들은 새롭게 탄생되어 그의 분신이 되어 간다. 그것들은 굳어진 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K 작가를 따라 동선동 고갯길을 내려갔다. 전시장에서 팔리기도 하지만, 팔리지 않은 것들은 아틀리에로 돌아와 의자와 함께 그를 지켜준다. 그러나 K 작가는 세상을 탈출하는 마지막 순간에, 이승을 버리듯 의자를 걷어차 내었다. 끝까지 그를 지켜내지 못한 이유로 의자는 형벌처럼 지금까지 그를 기다려야 했나 보다. 의자 위에 쌓인 해바라기 꽃잎들이 차차 기운을 잃어가겠지만 의자는 빛으로 찾아든 오늘처럼 날마다 그의 아침을 맞아 주리라.
의자의 독백이 들린다.
‘먼 옛날 어느 분이 내게 물려주듯이
지금 어디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
의자 위에 쌓인 노란 해바라기가 다시 그의 그림자가 되어가고 있다.
<참고>
* K 작가 권진규 아틀리에는 현 서울시 문화재이며, '내셔널 트러스트(N.T)'의 시민 문화유산 3호로 지정된 곳이다. 내셔날 트러스트에서 2008년 5월부터 “아티스트 인 레지던 스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1973년 5월 4일 동선동 아틀리에에서 스스로 목숨을 거둔 권진규 조각가는 20세기 테라코타의 거장으로 평가되고 있다.
*테라코타란 구운 점토라는 뜻이고, 양질의 점토를 구워 만든 塑像(조상)과 그릇을 말한다.
죽은 자를 달래기 위한 明器로 영혼의 그림자를 담는 그릇이란 이미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