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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me Nov 27. 2022

그를 미행하다

혼 흘림의 서사 1

 

1973년의 그날 이후 한 번도 열리지 않았던 공간.      

 상봉 슈퍼에서 길을 묻자 나이 든 여인이 가파른 계단을 가리켰다. 겨울 햇살을 등지고 층층 계단을 돌아 오르니 허름한 가옥이 절벽처럼 눈앞에 서 있다. 빛바랜 지붕이 안쪽으로 올려다 보인다. 짙은 청색 대문을 열고 오래된 사진첩을 들여다보듯 집 안팎을 조심스럽게 살핀다. 마당에 깔린 징검돌을 딛고 그의 작업실로 들어가는 길목의 중문에는 줄기만 가시처럼 남은 담쟁이가 달라붙어 있다. 

  오후 햇빛이 아직 남아있는데 인적 없는 아틀리에는 늪지처럼 축축하고 어둑하다. 시간마저 멈춘 듯 적막하고 인기척에 놀란 듯 먼지가 유리창 안에서 부유한다. 남겨진 그의 유품은 주인의 손길이 끊긴 자리에서 세월의 궤적을 긋고 있는 듯하다. 작업실 미닫이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거미줄이 문을 따라 옮겨지면서 거미가 움찔거렸다. 잇대어진 작은 창문들이 밀폐된 공기를 흔들면서 그를 보내고 갇혀있던 시간을 울림으로 열고 있다.

  창이 없는 벽 쪽에 거무스름하게 얼룩진 거울이 걸려 있다. 회벽을 타고 흘러내린 빗물 자국이 산화된 눈물 자국처럼 진회색 줄무늬를 길게 만들어내었다. 거울은 뒷벽을 비추면서 동시에 앞에 서있는 나를 비추었다. 줄무늬와 나 사이에 무언가 비쳐 드는 느낌이 든다. 얼른 뒤를 돌아보았지만, 환영은 오간 데 없고 울림이 끝난 공간만이 처음처럼 고요하다. 오래된 거울 속 검은 얼룩 때문에 그리 보인 것이었을까.     

  그가 손수 지었다는 작업실은 꽤 높아 보인다. 시골의 작은 수도원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오래된 물건이 담겨있는 대형 고리짝으로도 보인다. 나 자신이 사물이 되어 커다란 고리짝 안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 든다. 순간 그를 미행하고 있다는 묘연한 의식이 마른침을 삼키게 한다.

  미완성 조각 작품이 아틀리에 여기저기 너부러져 있고, 테라코타를 굽던 그의 가마 옆에는 아직도 물이 마르지 않은 우물이 있다. 33년간이나 물을 퍼 올리지 않았음에도 물길이 바뀌지 않은 것은 차마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그의 영혼 때문은 아닌지. 그가 즐겨 앉던 낡은 의자 옆에 미완의 인물상이 다소곳이 놓여있다. ‘인생은 공(空)과 파멸(破滅)’이라고 단정했던 그의 의식처럼 해 그림자 속에서 묵직한 느낌을 또렷이 전하고 있다.     

  그의 영혼을 쫓아 찬찬히 그 거울 앞으로 다가선다. 잠자던 마음을 헹궈낸 나의 모습이 거뭇한 얼룩 속에 비친다. 나도 그도 아닌 듯한 형상이다. 셀 수 없이 하얘진 머리카락과 거뭇거뭇한 점들이 언제 박혔는지 모르게 빼곡하다. 손으로 얼굴을 만져보고 머리카락을 빗어 넘겨보지만 희끗한 머리칼이 아무래도 낯설다. 희고 단호한 그의 얼굴 윤곽선을 상상하자 거울은 그의 과거와 나의 현재를 뒤섞고 있다. 거울 속 인물이 흘어지 듯 사라지고, 거울은 작업실에 들어찬 그의 손길을 세세히 비춰낸다. 그의 부재를 빛과 공기로 채우고, 꾹꾹 눌러 짜다 내버려 둔 수채화 물감의 부러진 몸통과 안료를 풀어놓았던 접시들이 고적한 공간 안에서 스스로의 그림자를 늘려가고 있다. 

 주르륵 물감이 흘러나올 듯 팽팽한 긴장감이 그곳에 쌓인 먼지를 털어낸다. 어딘가에서 미세하게 물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를 따라가 보니 우물 속에 거울이 또 하나 있다. 물은 잔잔한데 우물 거울 속에서 그가 출렁이고 있다. 환(幻)이다. 이내 그가 낡은 의자에 나와 앉으며 작은 고리짝 옆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 같다. 지난 기억을 고스란히 비춰내는 것은 거울뿐이 아니다. 아직도 진흙이 묻어 있는 그의 등산화와 주름진 검정 신사 구두, 사그 랑이 된 누비이불이 그의 과거를 뼛속처럼 드러내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몇 가지의 단서를 앞세우고 구체적 미행을 시작한다. 그는 화실 안에 여섯 자 깊이의 우물을 파 놓고, 뒤뜰 쪽으로 기다란 문을 내었다. 일본 유학 시절 만나 부부로 살았던 여인 도모. 그녀가 그리울 적마다 불콰해진 얼굴로 눈물을 빠뜨렸을 그를 떠올리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외(倭) 며느리는 끝내 받아 드릴 수 없다는 어머니의 매몰찬 결기를 거역하지 못했던 그가 눈을 감은 채 벽에 기대어 있는 듯하다. 결국, 그는 홀로 귀국하여 어머니의 권유로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였지만 곧 헤어지고 만다. 사람의 외로움이 바람의 파장으로 남아 아틀리에 공간을 떠돌고 있다. 중첩된 상실감을 견디기 위해 돌을 쪼아내면서 스스로의 결핍을 메워갔을 그. 작은 흙방에서 참담함을 토하다가 그는 더 이상 작품을 거두려 하지 않았다. 그의 결락(缺落)은 오히려 침잠된 영혼을 담는 그릇, 마지막 테라코타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갑자기 천장에 매달린 굵은 쇠사슬 두 줄이 눈앞에 와 멎는다. 섬뜩하다. 결국 자기가 지은 작업실의 쇠사슬은 덧 상처를 이기지 못한 그를 세상에서 탈출시켜주는 통로가 되어주었다. 청조(靑鳥)가 되어 날고자 했던 그의 영혼을 서늘하게 날게 한 것이다. 예술가의 자유로움이란 정작 이런 것이어만 했을까. 퇴색된 테라코타의 거푸집이 고리짝 옆에서 그의 분신인양 웅크리고 있다. 부러진 발목과 끊어진 몸통 조각, 팔에서 잘려 나온 석고 조각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작업대 밑에 희뿌옇게 엉켜있다. 그때 의자 옆에 놓인 축음기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거울 속에 비친 그림자에 나직이 말을 건네고 있다. 거울 속 검은 얼룩이 아른거리기 시작한다.     

 말이 없는 당신, 오랜만입니다.

 당신은 조센징이어서 나는 니혼징이어서 

 봄날의 꽃잎처럼 허망하게 

 바다를 사이에 두고 우린 인연의 줄을 놓아야 했습니다. 

 나도 내 아버지를 미워할 수 없었고 

 당신도 당신 어머니를 원망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당신이 떠난 후 찾아온 겨울은 춥고 힘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남편도 당신의 예술성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내년에는 당신을 만났던 무사시노 미술대학에서 

 당신을 위한 전시회를 함께 계획하고 있으니까요. 

 당신의 빈자리를 채우면서

 제가 오래도록 당신 일을 당신처럼 거들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당신이 먼저 세상을 떠났기에 가능한 일인지 모릅니다.

 이제 저의 걸음이 시원치 않습니다.

 가뭇없이 당신 생각이 나면 괜스레 당신과 함께였던 그 언덕길을 걷고 싶어 집니다. 

 무서리 내린 뒤라서 밖은 추워지고 곧 눈이 내리겠지요.

 한두 자쯤 하얗게 눈이 쌓이면 

 어둠별로 떨고 있을 당신을 위해

 오타루 마을에서처럼 눈꽃 등을 달고 싶습니다. 

 그런데 올겨울 추위를 제가 잘 견디어낼지 걱정입니다.

 그래도 당신 기다려 보아요.

 서리꽃 피는 당신의 작업실 창가로 눈발이 날리는지

 그때 저는 눈꽃 등에 불을 켜놓을 테니까요.     

  아! 그녀일까? 거울에 서린 영혼을 깨우듯 가벼운 바람이 적요한 아틀리에 뒷문을 두드린다. 미망인의 역할을 하고 있는 도모 상의 옷자락 끌리는 소리인지 미완의 인물상을 스치며 문 사이로 가벼운 바람이 인다. 여전히 작업실은 고요하다. 미완의 돌덩이들이 널브러져 있는 곳으로 다가가 본다. 인물 조각상 하나가 실눈을 하고 살아있는 듯 엷은 미소를 띤 채 다소곳하다. 콧날이 높지 않아 편안한 느낌이다. 가만히 먼지를 털어내고 햇살이 드는 쪽으로 앉혀 놓는다. 조각상은 정지된 시간 속에 남았다. 돌과 진흙 덩이는 작가의 손길을 타면서 대상의 내면을 드러내고, 작가는 자기의 영혼을 빼내어 작품 속 대상에 가두곤 한다. 그러나 주인 잃은 미완의 작품들은 남은 누군가에 의하여 새로이 상상되고 상상인의 열망으로 새롭게 존재한다. 

  한 사내가 예술의 혼을 불태운 곳에서 불꽃처럼 목숨을 놓아버린 이유를 이제 편안한 마음으로 물어도 될까. 미완의 사랑을 붙들고 인생마저 미완성으로 밀어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느냐고 넌지시 물어보지만, 거울은 대답이 없다. 외롭게 버티어낸 담벼락의 흙만 소리 없이 부서져 내릴 뿐이다. -凡人에게는 침을. 천재에게는 감사를, 바보에게는 존경을-      

  낙서처럼 적힌 그의 육필이 점점이 지워져 획을 잇지 못하고 있다. 그의 선택은 결국 바보가 되는 것이었을까. 지금 우리가 그에게 존경의 갈채를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계단이 삐거덕거리며 흔들려서 잠시 작업실을 내려다본다. 미완의 인물상과 다시 눈이 마주친다. 그는 인물상의 남은 볕 그림자를 뉘이며 얼룩진 거울 속으로 사라져 간다. 아! 오늘 내가 그를 미행한 것이 아니라 나를 미행한 것은 오히려 그였었나 보다. 아무리 둘러봐도 그가 보이지 않는다.      

  <참고> 

작품 속 그는 <테라코타의 거장 권진규> 조각가이다. 그는 자신의 아틀리에에서 예술혼을 불사르다 1973년 “靑鳥”가 되어 날아가 버렸다. 2009년 겨울 오후, 성북구 동선동 아틀리에서 그의 오래된 거울을 들여다보다가 그를 미행하게 되었다. 그 이야기를 수필로 엮은 것이고, 그의 친여동생이 신 권 00 여사의 검증을 거친 후 발표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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