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
어느 시인의 시구가 머릿속을 허정 대며 떠나지 않는다.
추위에 이가 다닥거렸다. 마음이 얼어붙어서 인지 땅 위를 딛고 선 발끝에 숭숭 바람이 들어 발가락뼈를 얼릴 정도였다. 골목길 포장마차의 황색 불꽃은 바람결에 꺾이면서도 삶의 쓴잔을 기울이는 사람들의 손끝을 비추고 있다. 영안실 건너편의 포장마차에 장막 같은 어둠이 그 빛 때문에 더욱 짙게 느껴졌다. 뜻밖에 나는 낯선 도시에서 낯선 밤을 하염없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울음주머니 터뜨린 오열을 소리로 다 채우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 찬바람을 길게 들이켜고 있었다. 포장마차는 어느덧 사라지고, 울력 나가는 차림으로 새벽을 줍는 사람들의 앙당그린 등허리가 새벽 달빛을 지고 있었다.
부모보다, 자식보다, 남편보다, 친구보다 술을 사랑했던 30년 지기 내 친구에게 술 한번 제대로 사주지 못했는데 훌훌 떠나가 버렸다. 지난날 나는 술자리에서 얼른 집에 가자고 보채기만 했었다. 그녀는 내가 빨리 집에 가자고 조를 때마다 술맛 떨어지게 한다는 핑계로 나를 먼저 집으로 보내버리기 일쑤였다. 그리고 그녀는 여자들보다 남자 동기들과 호형 호재 하며 훨씬 잘 어울렸다. 하지만 그녀와 많이 가까워지고 그녀가 술을 좋아하게 된 이유를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나도 한 잔씩 함께하는 일이 가끔 생겨났다. 만나면 차 한 잔 하자는 말보다 의례 술 한 잔 하자는 말에 익숙해져 갔고, 술은 그녀의 음울한 마음을 달래줌과 동시에 굽어진 삶을 일순간 펴주는 시원함을 가져다준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난 얼굴이 금방 벌게지고 속이 타들어가서 오래도록 술친구가 돼 줄 수는 없었다.
친구는 꽐꽐 목 넘김이 순조로운 날이면 술이 달디달다는 말을 반주로 깔며 술을 마시는 속도에 가속이 붙었다. 자작은 건강주라고 너스레를 떨며 바쁘게 빈 잔을 채우던 시간만큼은 그녀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내겐 독한 이슬이었지만 그녀에게는 단 이슬이었나 보다. 술이 혈관을 통과하면서 싸한 감성의 물꼬를 터주었을 테고, 그때마다 그녀는 가슴 뭉클한 노래 ‘한 오백 년’과 ‘칠갑산’,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를 기가 막히게 불렀다. 사실, 나는 신입생 환영회에서 그녀가 불러준 그 노래에 반해서 더욱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다. 와 -하는 박수소리와 앙코르를 청하는 함성에 그녀는 다시 일어섰고, 가수보다 더 훌륭한 음색과 성량은 자그만 그녀를 단 순간에 킹카로 만들었다.
걸걸하고 호방한 성격은 조 잔 한 남자들과는 비견이 안 될 정도였지만 팍팍한 현실은 늘 그녀를 외진 바람 속에 있게 했다. 급기야 자기와 걸맞지 않은 사내와 결혼을 하고 말았다. 자격지심에 그랬는지 결혼식에 아무도 초대하지 않았다. 결국 아들을 하나 둔 채 홀로 서게 되었고, 그런 후로 강원도 평창으로 들어가 조그만 환경사업을 하며 십여 년을 혼자 살아왔다. 결혼의 꿈이 깨어지면서 더욱 술과 친해졌던 모양이다. 누구보다 제 심정을 헤아려 주고, 푸념을 그대로 들어주는 독한 술은 말없이 자란자란 눈앞에서 일렁였을 것이고, 그것이 그녀의 유일한 낙이 되었고, 친구였고, 위로였던 것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최근에 걸려온 아침 전화 목소리마저 취기가 느껴져서 내가 쓴소리를 몇 번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소리가 마뜩잖았는지 화를 버럭 내고 한 동안 전화가 뜸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고 나서 졸업증서가 필요하다는 연락이 온 것이 이 주일 전인데, 느닷없이 그 친구 아들로부터 엄마가 혼수상태에 빠져 중환자실에 있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간이 돌덩이가 되어버렸다는 친구는 까만 얼굴로 산소 호흡기에 의지한 채,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그렇게 스무날을 보내다가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하고 허무한 봄밤처럼 세상을 버리고 말았다.
병세를 알고도 어쩌지 못하는 마음을 숨긴 채 목숨을 긋고 있었던 것을 모르고 걸려온 전화에 야단을 하고, 허접한 내 심정만 늘어놓았었다. 왜 나를 이 집에 들여놓고 속앓이 시키느냐며 내 사설을 얹었다. 나도 잘 참다가 애먼 짓을 터트린 것이었다. 친구가 울었고, 힘든 친구에게 괜한 말을 한 것이 속상해서 나도 울었다. 그녀가 나를 중매한 죄로 듣기 싫은 소리를 들어야 했던 것이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절체절명의 순간에 내가 친구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허망한 마음의 웅덩이만 넓히는 게 인생이란 것을 한숨으로 토하는 일뿐이었다. 친구는 입춘 지난 눈보라에 가뭇없이 날아갔다. 몇 날 몇 겹의 어둠을 뚫고 세상을 빠져나갈 때, 살고 싶지 않다는 한마디의 원성도 덜어내지 않던 친구를 보내며 나는 섧게 떨었다. 낯선 도시에 별을 띄운 하늘이 이젠 그 친구의 하늘일 것 같아 울먹이며 목 줄기를 세우지도 못 했다. 성난 불길에 밀어 넣어진 친구는 붉은 글씨의 ‘통제구역’ 안에 철커덕 갇혔다. 화구에 빗장 거는 소리가 ‘철그렁’하고 철문을 세차게 흔들더니 작동 램프에 불이 벌겋게 켜졌다. 그 철문은 문밖에 황량하게 서있는 나와, 망연히 세상 밖으로 떠나가는 문안의 그녀를 철저히 단절하고 있었다. 철문은 차디찬 세상의 껍질 같았다. 삶과 죽음은 그 문 하나로 극명히 통제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갇힌 쪽이 오히려 나란 생각이 허우룩한 가슴 안으로 꾹꾹 차올라 왔다.
어린 자식 떼어 놓고 살면서 흘린 눈물이 술과 함께 잔을 채웠을 시간을 내가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강한 성격 탓에 아들 녀석 한 번 따뜻하게 품어주지도 못했을 친구를 대신해서 그의 아들 성환이를 꼭 끌어안았다. 들먹이지도 못하고 뼛 속으로 우는 그 녀석 어깨를 꼭 감싸 안아 주었다.
사는 게 죄라더니 죄인들의 아랫도리를 사정없이 후려치며 망자를 거둬가는 바람이 산중에서 포효했다. 펄펄 삼월 눈이 내렸다. 삼월 눈은 봄 새싹을 키워내는 수액이 된다지만 세차게 퍼붓는 저 눈은 외로운 아들을 키워낼 엄마의 눈물이 나 될 런지. 성환이가 엄마의 영정 앞에 술 한 잔 따르겠다며 그렇게 원수 같다던 술병을 정중히 챙겨 들고 눈발 날리는 언덕을 올라갔다. 목 놓아 울 수도 없었던 원망과 연민을 술잔에 퀄퀄 부어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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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허튼 푸념 듣기 싫어 굽이진 산길로 영영 숨어버린 너를 위해 술보다 못한 내가 이제야 비워둔 술잔을 내민다. 네가 즐기던 술이라도 부어줄까 싶어서. 그곳에서는 취하지도 아프지도 않을 테니 말이다. 네가 쓸쓸히 버티어낸 시간이 너를 놓아준 것처럼 이제 나도 박정하게 너를 놓으련다. 네 살갗이 타드는 동안에 무정하게 나는 밥을 먹고, 흩뿌리는 눈발에 허허로운 시선을 묻으며 쓰게 웃기도 했다.
친구야! 너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술과 사랑에 빠진 널 더러 그놈의 술 때문에 먼 길 떠났다고들 한다만 나는 안다. 그나마 너를 살게 한 것은 그놈의 술이었다는 것을.
그래~ 차라리 우리가 그 모진 인생에게 술 한 잔 사는 일이 오히려 쉽다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