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전, 검은 리본과 노란 리본이 상여 끈처럼 엮여 덕수궁 돌담길을 휘감았다. 티베트 산정에 나부끼는 오색 풍마처럼 펄럭이는 줄 안쪽으로 경건하게 늘어선 사람들...
돌 담벼락에 빼곡히 채워진 글을 읽어가며 분향 순서를 기다렸다. ‘대통령 할아버지 사탕 드세요’라고 쓴 아이의 글귀에 붙여진 검은 사탕은 연서처럼 달았다. 죄인이 자살하니 성자가 되는 이상한 나라라고 괴이한 말을 서슴없이 내놓는 모 노교수의 논평은 타락에 가까웠다. 객관성을 잃은 언론사의 뻔뻔함까지 더 했다.
아침마다 어머님의 기도 소리와 독경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는 님이 억지로 떠났다. 슬픔을 가누지 못한 사람들로 거리는 인산인해가 되었다. 당신 말씀대로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그냥 바람에 실리는 대로 살라는 어미들의 당부가 이미 모든 어미의 기도가 된 사회. 하지만 200여 곳의 분향소에서 회한에 찬 사람들은 풍등을 띄우며 ‘상록수’를 불렀다. 따스한 봄밤에 띄운 풍등은 도시에 달처럼 두둥실 떠올랐다. 마치 호국 정령들의 혼 불을 보는 듯하였다.
우리의 바람은 ‘행복’이라 생각한 사람. 국민에게 많은 빚을 졌다고 말한 분이 허공에 몸을 맡겨 떠난 지 오래다. 어떤 어려움도 마다하지 않던 님이 너무 힘들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토로할 때 귀 기울이지 않던 우리가 님께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고 말았다. 님의 힘겨운 선택은 우리의 심장을 멎게 하였다. 우리들은 거리로 나와 하늘이 노래진 마음으로 노란 풍선을 들었다. 당신이 접어 날리던 그 모습대로 님이 가시는 길에 노란 종이비행기를 접어 푸른 새벽길을 배웅하였다. 님의 귀한 말씀과 님에 대한 추억은 사람의 손아귀에서 꾹꾹 눌러쓴 글 꽃으로 피어나 방명록에, 길에, 가로수에, 지하철 보도에 나붙어 길을 묻는 사람들에게 말의 길을 열어 주었다. 그것은 죽은 사회가 아니라는 반증이자, 소리 없는 통곡이었다. 국화꽃이 그를 위로하듯 제단마다 국화 향기 진동하였다.
거리에서 싱싱한 청춘들이 서서 죽어간 초유의 사태, 이태원 참사 제단에는 이름 밝혀진 158명의 영정 하나 없이 국화꽃만 그득했다. 대통령은 날마다 출근하여 국화꽃을 디밀었다. 보다 못한 유족의 어머니가 대통령이 보낸 조화 바구니를 걷어차는 일이 생겼다. 그것은 짓밟히다 못해 서서 짓눌려 죽어간 혼령의 울화였다. 진정한 애도는 애도 기간을 정하는 데 있지 않았다. 그들이 유가족을 존중했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언론은 안전한 권력의 편에서 고뇌하지 않는다. 국민을 갖고 노는 장난감으로 안다. 국민은 맘대로 조종당하는 로봇이 아니다. 국민만 고뇌하고 참회하고 국민만 국민의 편이다. 국민만 늘 외롭다.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 것, 다만 나의 자리를 상처에서 비켜서서 다시 마련하는 일”이라는 어느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다만 영혼들에게 새 자리를 내드리기 위해 힘써야 한다.
- 만송이 백만 송이 희고 노란 장미와 국화꽃에 에워 싸인 님이 밀짚모자를 쓰고 아직도 웃고 계시네요. 지금도 같은 마음이시라 그러겠지요. 주름살진 얼굴로 막걸리 한 잔 권할 것 같아 제가 먼저 잔 올립니다. 신기하게도 님이 떠나자 외로운 사람들이 들먹들먹 살아났었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사람들은 둥지에 깃들지 못한 새처럼 덕수궁을 둥지 삼아 떠돌며 대한문 앞에 모여서 제 부모를 보내듯 촛불을 바라보았죠. 굵은 눈물자국처럼 촛농이 바닥으로 흘러넘쳐 하얀 길을 이루던 때. 님이 사랑하던 가난한 사람들이 봄 깊은 날 은행잎 쌓인 거리처럼 온통 노란 거리를 만들었습니다. 높이 들어 올려진 만장도, 촛불도, 풍선도 모두 바람에 흔들리며 어디로 가는지 모를 각자의 운명을 쫓으며 거기 있었습니다. -
이 세상에서는 입이 있다고 다 말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글을 쓸 수 있다고 다 온전한 생각을 써내는 것은 더욱 아니다. 달고 맛난 것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양지를 따라 해바라기 한다. 님은 어느 변론가보다 어떤 문학인보다 투철하신 인간 상록수였다. 농군으로 돌아가 살겠다는 희망마저 빼앗은 사람들의 처분대로 살 수밖에 없는 것 또한 우리의 운명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고 많은 빛 천지 세상에 왜 우린 또 촛불을 들어야 하는가. 촛불의 의미는 자신을 태워 어둠을 밝히는 것이다. 자유와 정의는 외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실천하고 행동하여 얻는 민주주의 농사의 존엄한 결과물이다. 오래전에도 우리는 숨죽여 꺼이꺼이 눈물만 뿌렸다. 이태원 1번 출구도 눈물꽃으로 어룽져 젖은 꽃밭이 되었다. 그때는 만장을 높이 들어 님의 이름을 불렀지만, 정녕 이번에는 사람들은 입도 못 열고 눈물만 헤였다. 님을 그렇게 보낼 수 없었다고 발을 떼지 않으니까, 만장이 대신 걸어가겠다고 훠이훠이 길을 내던 날처럼 눈물만 흘렸다.
- 경복궁에서 영결식을 마치고 노제를 위해 서울 광장으로 들어오시는 님은 한사코 웃으시더이다. 노란 풍선 혼맞이 소리에 춤추더이다. 금빛 향로를 태운 흰 상여에서 봄날에 펄 펄 눈꽃이 뿌려지더이다. “미친 민주주의 기관차에서 뛰어내린 붉은 꽃잎”이라 명한 A시인은 애초부터 당신이 이길 수 없었노라며 목을 놓았습니다. 붉은 꽃잎의 낙화는 흰 꽃잎들과 오월의 신록에 쌓여 저희에게 슬픔을 접으라 외치고 외치더이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영원히 당신을 기억하겠다고 소리 높여 함께 외치고 노래 불렀습니다. 비록 우리는 황량이 탄식했지만, 당신은 영원히 웃으소서. 당신은 부디 행복하소서. 가벼워진 만큼 길이 평안하소서. 그리고 우리를 다시 밝혀주소서.
바보들이 잘 사는 세상을 위하여 헤아릴 수 없는 노고를 바치고도, 헤아릴 수 없는 외로움에 시달려야 하는 세상은 여전히 살만한 세상이 아닌 가 봅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습니다. 경계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유혹에 부림을 당하지 않아야 합니다. 40년 전 흘려 바친 피처럼 저 흩날리는 꽃잎이 되기를 주저치 않는 마음을 향해 마음속 만장을 높이 치켜올려야 합니다.
절규하는 사람들의 손에 들린 노란 풍선은 기적처럼 당신이 살아오실 길에 미리 피어난 꽃이었습니다. 완결 짓지 못한 희망의 이름이 되어버린 당신이오나 그 이름을 우리가 언제 또 소리 높여 부를 수 있겠습니까. 민초의 설움과 통한의 눈물을 만장이 거두며 님을 따르지만 만장은 설움에 갇혀 걷지를 못하고 서럽게 펄럭였습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망부석처럼 길바닥에 붙어 서서 펄럭였습니다.
길 없는 길을 내는 만장 사이로 님 실은 검은 꽃차가 풍뎅이처럼 보였다가 이내 사람에 휩싸여 길에 묻혀버렸습니다. 노제(路祭)의 현장은 사람이 노란 씨앗이 되어 느리게 느리게 피어나는 거대한 해바라기로 모자이크 되어버렸습니다. 이천 여개의 검붉고 흰 만장은 황하를 가르는 거대한 돛배처럼 보였습니다. 사는 게 억울하고 분해서 목숨 끊는 사람 없는 세상을 꿈꾼 대가가, 비명도 없이 허공을 가르는 혹독한 일이 되고 만 것처럼 지금, 우리는 또다시 기로에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뜨겁게 울어 주던 님의 마음을 허술하게 기억한 대가인가 봅니다.
‘생사 일여’ 삶과 죽음은 자연의 한 조각이라며 영겁의 그늘로 사라진 님의 독백처럼 거대한 담론이 다시 존엄하게 되살아나길 기대합니다.
다시 푸르른 날이 오리라 오리라 목 터지게 노래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