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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me Dec 01. 2022

웃은 죄

 너와 악수를 하고 너랑 같이 밥을 먹고 너와 눈을 마주 하고 있자니 느닷없이 그날로 돌아간 듯하다. 서른여덟 해가 너와 나의 곁을 돌아나가고 서로가 걸어온 길은 구불구불 얽혀 풀 수 없는데 미로 찾기를 한다. 서로의 눈빛은 다행히 지쳐 보이지 않았다. 살아 있어 줘서, 제정신으로 서로 알아볼 수 있어서 고맙다는 너의 목소리가 눈시울을 자극한다. 가릉 거리는 고양이 아랫배의 편안한 움직임처럼 적이 아늑함이 느껴진다.

“ ‘웃은 죄’ ~ 즈름길 묻길래 대답했지요. 물 한 모금 달라기에 샘물 떠주고 그러고는 인사하기에 웃고 받었지요. 평양성에 해 안 뜬 대두 난 모르오 . 웃은 죄 밖에 ”

 아득히 먼 그날, 참으로 어쭙잖은 핑계로 김동환 시인의 ‘웃은 죄’를 편지글에 생뚱맞게 붙여 넣고 줄행랑을 쳤다는 장난 끼 넣은 너의 말. 난 짐짓 모른 체하였으나 마음을 흘린 죄 값인지 내 가슴은 메마르고 너의 목소리는 오래도록 까칠하였다. 


 모른 체라는 말은 알면서 시치미를 뗀 말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웃은 행위의 안자락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 시절 행위의 서술이 날실과 씨실로 엮여 청춘의 상황적 고민과 수용을 껴안은 채 문밖의 바람처럼 머뭇거린다. 머뭇거림 안에는 물결치던 감정의 닿음과 꽃 피울 정도의 떨림이 서려있고, 차가운 분별이 무명실처럼 직조되어 있다. 달의 살빛처럼 눈앞에서 어룽거리던 머뭇거림의 질감은 잿물에 삶아내어도 성근 질감이 역력할 듯하다. 단지 맘에 아로새겨진 기간만큼 가늘어져 누에고치처럼 제 몸을 감을 뿐이다. 기억의 집을 몸이라 한다. 몸이 쇠약하여지고 영혼을 담을 수 없을 때까지는 그러할 것 같다.


  며칠 뒤 네가 보내온 오래된 사진 몇 장. 쓸쓸한 빛으로 나를 아련하게 쳐다보다가 내 눈을 화들짝 놀라게 한다. 아뜩해졌던 정신을 다잡고 옛날을 뒤지듯이 몇 번이고 바라다본다. 그 시절의 낯꽃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색이 바라져 흐려진 것인지 흐린 날씨에 찍은 탓인지 우리의 이십 대가 오래된 사진 속에서 흐리게 웃고 있다. 나는 전혀 기억이 없는 곳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나의 모습은 다른 사람이다. 햇빛의 눈부심 때문인지 찡그린 듯 뾰로통한 얼굴로 동생과 셋이 찍은 사진을 보며 웃음을 터트린다. 


 나의 웃은 죄는 아직 네게 기소되지 않았다. 적당히 유예 중인 듯하다. 이 마당에 헛웃음이 명쾌히 나오다니. 다행히 네가 내 앞에 없는 탓에 눈치 없는 내 웃음이 덜 민망하다. 기소유예 중인 웃은 죄의 물적 증거물을 하나, 둘 받아 든 나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사뭇 현장 검증을 받는 기분이다. 그러나 추억 속에 빠져들수록 뭔 일인지 안온해지고 조금은 뻔뻔해지면서 재미가 난다. 이제 와서 뭘 어쩔 것이냐는 배짱이 베짱이 배만큼 나온 탓인가 보다. 기억은 자신의 심리에 따라 비현실적으로 조작될 수 있다는 게 심리학적 분석이다. 하나 합성 기술이 요원했던 시절의 날자가 그대로 새겨진 물적 증거는 요즘 말로 꼼짝 마라이다. 


 졸업 사진도 아닌데 ‘향원정’ 앞에서 정장 차림으로 둘이 나란히 붙어 찍은 사진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단 둘이 나들이 간 기억은 결코 없는데 이 무슨 일인가 싶어 곧바로 물었다. 38년 전 그 해 늦가을 무렵 내가 바람을 넣어서 각별하게 지내던 동기들과 즉흥적으로 경복궁에 놀러 가서 찍은 사진이란다. 정말 기억이 안 나냐는 허탈한 너의 말. 그 사실을 기억해 내기 전에는 무진기행을 하듯 하얀 기억으로 안갯속을 표랑 했다. 나의 건망증과 기억 상실의 경계쯤 어디에 서 있는 것 같은 망막함이 밀려왔다. 사진만 보면 영락없이 신혼부부 같은 느낌이었으니 머릿속은 허해지고  웃음꽃이 팝콘처럼 터진다. 멍한 침묵이 반복하여 흐르고 난 후

‘세상에! 하늘이시여! 이 아름다운 고문을 어찌한단 말입니까.’ 

 외마디의 회한이 목울대를 건조하게 밀어 올렸다. 쇳덩이 같이 무겁게 맘을 짓눌렀던 세월을 치워내고 터져 나온  문장을 너에게 전했다. 어렴풋이 기억이 소생하였다. 이 말을 이제라도 들으려고 제가 이 사진을 여적 갖고 있었나 봐요 라고 안도하는, 그러나 애연함 깃든 너의 말이 가슴에 뜨겁게 내린다. 그런 후 가슴속에서 나는 긴 한숨을 길어 올린다.      


 회한은 죄인에게만 깃드는 감정 줄기가 아니다. 소중한 것을 바라보지 못하고 서툴게 살아온 날들, 신성한 시간의 남용과 분별을 오용한 징벌적 슬픔 같은 뭐 그런 감정도 회한에 속한다. 수 십 년 전 산수유 꽃 닮은 만남과 헤어짐 사이에 어설프게 피어났던 희망의 어긋남이 가져다준 슬픈 것들. 되돌릴 수 없는 인연의 부재. 내 것이기도 했던 의도된 시간의 정지. 오래된 그리움의 징표로 귀결되어 내 앞에서 정색하고 있는 빛바랜 사진 몇 장. 그 앞에 고개 숙인 나의 슬픈 귀결이 그 당시의 애틋함을 현상한다. 헛웃음과 회한이란 감정으로 내 가슴속 암실에서 아프지만 따습게 인화되고 있다. 

 인간과 관련된 어떤 일도 사소한 것은 없다. 가벼이 웃은 죄가 사랑의 씨앗이 되고 안 되고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의 마음 안에서 오래도록 피고 지는 감성의 풀꽃으로 자랄 수 있다는 사실에  의미가 있다. 제 갈 길로 돌아든 삶 속에 방치되었던 ‘웃은 죄’의 유의미한 반란은 당분간 여진을 동반할 것 같다. 심지 않아도 늘 들에 피어나는 야생 꽃처럼 툭툭 피어나서.


 원래 ‘웃은 죄’의 시적 공간은 우물터였다. 웃음이라는 행위는 시대적 억압 속에 감춰진 설렘이나 쑥스러움을 밀어내고 살며시 마음을 드러내는 행동적 비언어로 묘사된다. 물 한 모금의 요구에 부끄럽게 응하는 여자의 수용적 마음이다. 사랑의 은밀함이나 그리움의 내밀함은 시 한 줄로도 품을 수 있다. 내 흐려진 사진으로 웃은 죄의 유죄 입증이 가능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 사진에 인화된 회한이 사라진 말을 다 기억해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월이 덮은 ‘웃은 죄’의 혐의는 다분히 인정되나, 아쉽게도 온전한 과거인지라 나로서는 아퀴를 지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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