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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아빠

무서웠지만 지금은 이빨빠진 호랑이가 되어버린....

아빠는 35년동안 교직에 몸담고 계셨다.

과목은 체육...

어릴때 부터 보았던 아빠의 모습은 굉장히 계획적이고 루틴이 확실하셨다.

아침에 일어나면 집 안밖을 깨끗하게 청소하시고

우리방으로 들어와 창문을 활짝 열어 젖힌다.

그 시간이 바로 우리의 기상 시간이다.

우리 형제들은 아침 먹기 전 방청소를 해야 학교에 갈 수 있었고

우리가 청소하는 사이 아빠는 국민체조 음악을 틀고 체조를 하신다.

시간이 흘러 국민체조가 청소년체조로 바뀌기는 했으나

정년퇴직 할 때 까지 아빠의 루틴은 바뀌지 않으셨다.

(아빠의 별명은 6시 5분전 이었다)


워낙 말씀이 없으셨고 표현을 안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내가 어린 시절에는 아빠가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인지 살면서 한 번도 나의 생각이나 고민을 아빠에게 이야기 해본적이 없다.

하고 싶지도 않았고 해봐야 안들어 줄것이 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나에게는 그저 아빠가 불필요 하다고 생각했었다.

아니 나는 그냥 아빠를 싫어했다.


그렇다고 해서 아빠가 부모로서의 노력을 안하셨던건 아니었다.

학교갈때 항상 태워다 주셨고, 심지어는 아르바이트할때도 태워주시고 끝날때 기다리셨다가 또 태우러 오셨다. 나는 아빠가 그렇게 하는것이 어떠한 노력이나 수고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 하지 못했고 당연하게 아빠는 원래 그런가보다 생각했었다.

지금 내가 아이들 학원이나 직장 픽업을 하다보면 문득문득 이게 보통일이 아니구나 생각하며 그 시절의 아빠를 가끔씩 떠올리기도 한다.

아빠는 그 많은 일들을 어떻게 다 하셨을까?


병을 진단받고 나는 나보다는 충격받을 부모님을 걱정했었다.

지금도 그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추석명절을 시댁에서 보내고 친정집에 갔을때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었다.

엄마는 눈물을 훔치며 오열했고, 아빠는 무덤덤했다.

자식이 죽는다는데 어떻게 그렇게 담담할수가 있지?

나는 그런 아빠를 참을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아빠가 엄마처럼 충격을 받고 오열을 했더라면 만족했을까?)


태어난 순간 부터 나의 삶을 결정한건 늘 아빠였다.

나는 그저 아빠가 원하는 것을 따르는 삶을 선택했으며 내인생의 주체가 내가 아닌거 같다라는 생각을 꾸준히 하며 살아왔다(나는 결혼도 아빠가 원하는 사람과 했음을 밝힌다)

아빠는 그렇게 딸의 인생이 엇나가지 않고 아빠의 생각대로 가주기를 바라셨던것 같다.

그런데 아빠가 의도치 않았던 일이 일어난것이다.


딸이 불치병을 진단 받았고 원인도 치료방법도 모른다!

이미 폐의 40%는 망가졌으며 계속 진행중이다!

둘째는 이제 겨우 돌을 지났다!

할 수 있는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을 무기력하게 기다리는일 뿐!


그 때 나는 아빠를 많이 원망했다.

내 인생이 이렇게 망가진건 아빠에게 팔할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 했었다.

그래서 나는 이미 그순간을 대비하며 폭발하기로 마음 먹었었음을 이제서야 고백한다.

나에게 일어난 난데없는 상황에 대해 분노를 쏟아낼 돌파구가 필요했을까?

그 날 아빠에게 퍼부었던 모진말들.....눈물...


지금도 나는 그 순간을 많이 후회한다.


결국 아빠는 내가 병원에 입원하기 전날 엄마와 함께 우리집에 오셔서

내가 명확하게 짚어낸 지나간 일들에 대해 사과 하셨다.


그런데 정말 나는 아빠에게 사과를 받고 싶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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