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by 김지숙 작가의 집


오늘



황혼이 눈꺼풀 위에 서 있다 눈에 담은 일. 손등에 쏟은 꿈. 풀잎마다 섬세한 인연을 엮는다. 노을이 짙을수록 개 짖는 소리를 커지고 어둠을 몰려와 그 소리를 삼킨다 모두 어디로 갔나 고개를 돌리면 다시 눈뜨는 일상

어깨에 손을 얹은 하루는 언제나 제 그리운 곳에만 밀려든다

온갖 것이 담겨 있던 집 계절이 지난 꽃들이 핀 정원의 사과나무 아래 일요일 오후가 어스렁거리고 쓰다 던진 장갑은 허공을 채우며 부드럽게 부서진다 흙을 밟는다 느리게 걷는 발걸음이 가벼워 바람이 따라 나서고 지나가는 사람의 눈에 집안이 훤히 보이는 낮은 담장을 걷어낸다 노을은 등 떠밀려 기억을 부른다

꼭 잡은 나무의 손. 마주 바라보는 산과 산의 눈빛. 언제나 동행한 시간의 발걸음. 문득 올려본 푸른 하늘의 가슴. 과일을 깎는 오른손과 그 손을 지켜보는 왼손. 잠을 순식간에 내동댕이친 물속의 꿈. 견디기 어려운 햇살 아래서 춤을 추던 때. 어느 결에 사라진 친지들. 푸른 천으로 뒤덮인 풀밭의 이름을 물었던 기억.

사라지고 곧 다시 돌아오는 오똑한 오늘




아침마다 나는 '오늘'이라는 시간 연금을 받는다

교사로 퇴직한 지인이 자고 일어나면 통장에 돈이 꽂힌다고 자랑을 했다 써도 써도 화수분처럼 쌓인다 죽을 때까지 받는다는 등 연금 자랑을 들으며 아무 생각 없이 해 대는 일견 그 화수분이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화수분의 혜택에 해당되지 않은 사람들이라 그 말을 하는 지인이 순간 참 생각이 없구나 라는 마음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많은 사람들은 돈에 고통을 받고 살아간다 그런게 어쩌면 저렇게 철없는 소리를 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 저생각으로 살면서 그에게 배운 아이들은 대체 무엇을 배웠을까 저 말끝에 담긴 연금 자랑이 아마도 저 사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자랑은 아니었을까 라는 등등의 짧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들도 잠시 우리는 모두 '오늘'이라는 시간연금을 받는다 어떤 사람은 '오늘'이라는 귀중한 시간들을 돈으로 환산하여 연금이 들어오는 순간으로 기억하고 또 어떤 사람은 아픈 사람과 함께 하며 오늘도 살아남아 이 세상을 하루 더 함께 살 수 있다는 기쁨으로 맞는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계속 이어가는 건강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오늘이라는 소중한 날을 선물 받고 살면서 당연하다 여겼다 하지만 이 오늘이 건강한 시간들이 화수분처럼 자꾸만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이가 들면서 깨닫는다 태어나면서부터 죽는 날까지 누구나가 공평하게 받는 이 오늘이라는 이 건강한 연금은 누구도 받는다고 자랑하지 않는다 당연하다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오늘은 어떻게 잘 보내느냐에 고민하는 정도에 따라서 스스로 그 가치가 점점 달라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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