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똥
반쯤 입 벌린 서랍 가득
돌돌 말린 영수증
낙엽으로 반쯤 가린
노루똥처럼 쌓여 있다
무얼 먹고 그 흔적
한 곳에 모아 소복이 두었나
목젖 너머로 더운밥을 함께 넘기고
초록 꿈을 키우며 간절한 정 나누고
조잘대던 일상의 낯선 공간에서
네모난 식탁에서 즐거웠던 일
켜켜로 쌓인 시간의 속삭임
나의 섬으로 쌓아 올린 삶
저 서랍 안에서
붉은 동백꽃 무리처럼 뜨겁다
「노루똥」은 낙동강이 4대 강 개발을 하기 전에 야생초 탐사를 하며 산이며 강을 누비던 시절에 쓴 시이다 함께 금정산길을 걷던 중 풀숲 가운데서 소복이 쌓인 똥더미를 발견했다. 함께 간 옥 시인에게 물었더니 노루똥이나 고라니 똥일 거라 했다 처음 본 똥이 검은 구슬처럼 새까맣걸 보니 볼일 본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그러고 집으로 돌아왔다. 무심코 연, 화장대 서랍 속에 차곡차곡 쌓아둔 영수증을 보며 산에서 본 노루똥이 자연스레 연상되었다. 결국 살면서 생긴 결과물이라는 일시적인 공통점에서 시의 상상력은 시작되었다. 무엇을 취하고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몸속에서 어떤 반응을 일으키고 몸 밖으로 내놓은 결과물이라는 공통점.
전혀 공통점이 없는 이질적인 것들 사이에서 공통점을 발견함으로써 노루똥도 영수증이 되고 영수증도 노루똥이 되어 서로 오가는 감정을 찾아냄으로써 서로를 낯설게 하는 방법이 바로 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