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어미마음

by 김지숙 작가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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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어미 마음



갈구재골 들머리에 앉은

박씨 문중 제실 앞마당에서

푸른 잎 부들부들 흔들며,

노란 꽃대를 올린 민들레 몇 포기 데려왔다.


겉절이 할 양으로 뿌리를 자르고

깨끗이 씻어 양푼에 담았다.

이른 아침, 노란 민들레 꽃대 하나

양푼이 한가운데 거뜬히 솟아 있다.


밑동 잘리고, 잔뿌리도 없는 줄 전들 모르랴마는

쓰러진 모든 푸른 잎들이 온 힘을 다해

제일 튼실한 노란 꽃대 하나 일으켜 세웠다


죽어서도 새끼는 살리고픈

양푼이 속에 나란히 누운 어미의 마음들



한때는 경남 일대의 산야를 누비고 다녔다 산에는 멧돼지가 많아 주로 들판과 야산에서 야생초를 만나러 다녔다 혼자 다니다가 들개를 만나 혼줄이 난 이후, 혼자는 절대로 낯선 길을 나서지 않고 주로 두세명 혹은 대여섯이 무리 지어 다니곤 했다

그런데 장단점이 있다. 무리를 지어 다니면 마을 사람들이 많이 경계의 눈빛을 보낸다 자기 마을 주변을 지나다니는 것 자체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하지만 혼자 혹은 여자 둘이서 다니면 대체로 모두가 친절하다 그래서 서로 맘에 맞는 언니뻘되는 수필가이자 시인이랑 별 탈 없이 오랜 세월 함께 다닐 수 있었던 기분 좋은 나날들 중 하루였다

갈구재골은 나이 많은 사람들이 살았고 이미 그 사람들이 떠난 곳이다 솔직히 사람이 산다는 느낌이 없이 잘 지은 제실만 덩그러니 남아있고 주변 집들과 과수원도 사람의 손길은 거의 느껴지지 않은 채 물동이들이 내동댕이 쳐져 있다. 이곳저곳에 나무에서 떨어진 과일들이 썩어 있고 그나마 손 닿지 않는 가지 끝에 달린 열매들도 벌레 숭숭 먹은 채 간당간당 매달려 있었다


주변의 집들은 마치 오래 묵어 곧 쓸어질 듯하고, 지붕 위에 기어 다니는 풀들이 제 세상 만난 듯 각자 자기의 길을 내고 있었다 참 쓸쓸한 동네였다 찬찬히 돌아보니 마을 사람들은 산에서 내려오는 작은 계곡물 한줄기에 의존하여 농사를 짓고 밥을 해 먹고 살아가는 듯 보였다 수도가 없으니 밭 가운데 뚜껑이 닫힌 해묵은 작은 우물 하나로 식수를 해결한 듯 보였다

물이 없으면 살아가기 쉽지 않은데 그나마 계곡의 물이 말라 들어 있으니 사람들이 떠나간 것일까 요즈음 젊은 사람들은 보기 힘든 곳이 시골 이라더니 정말 그런가 보다

이곳에는 사람들이 떠나고 없어 정말 조용했다 몇 시간을 누비고 걸어도 사람 하나 만나지 못했다. 담장 안으로 보이는 주인 없는 집 마당에는 꽃들이 만발했다 백일홍 채송화 과꽃 민들레 꽃향유 방아풀 여러 꽃들이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며 서로 뒤엉겨 외로움을 달래고 씨를 뿌려 생을 연명하고 있었다.

위의 시는 '밀양 박 씨 문중 재실' 현판이 달린 집의 마당 주변을 둘러보다가 맞붙은 야산에 민들레가 무더기로 탐스럽게 피어있기에 한번 먹을 만큼 뿌리는 남겨두고 윗부분만 잘라서 왔다 너무 잘 자랐고 그렇게 위세 당당한 초록잎을 달고 있는 민들레는 처음 봤다

꽤 먼 곳이라 집으로 돌아오니 너무 시간이 늦어 민들레는 깨끗이 씻어 양푼에 그냥 담아 두었고 다음 날 아침 민들레 겉절이를 할 생각이었다 겉절이를 하려고 들여다보니 누워 있는 푸른 잎들 사이로 굵고 싱싱한 꽃대 하나가 제대로 살아 있는 듯 똑바로 서 있었다 순간 뿌리가 있나 착각할 정도로 땅에 심긴 듯 꽃을 피우고 있었다 잎들을 땅인양 여기고 살아낸 것이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컵에 물을 받아 꽃대들을 모두 꽂았다 꽤 여러 날을 창가에서 꽃을 피우더니 씨앗을 품고 허옇게 변했다 민들레의 생명력이 참 대단했다 물만 먹이고 햇빛을 보였을 뿐인데 꽃을 피우고 씨를 품는다 민들레씨들을 땅으로 돌려보냈다 이곳저곳으로 날아다니며 땅에 정착하는 모습을 봤다 민들레 어미의 그 마음을 내가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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