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키재기
그만한
양심만 있어도
세상은 따뜻하다
도토리키에도
가려지는 진실 앞에서
‘도토리키’
작다고 말하지 말자
그만큼이라도
깨끗할 수 있다면
세상은 살만하다
이 시를 쓰게 된 이유는 참 간단하다
명색이 내놓으라 하는 사회적으로 큰 어른에 해당되는 노시인이 모임에서 어떤 잘못된 일을 바로 잡은 대신 잘못된 그 일을 일방적인자기 합리화로 사태를 무마시키기 위해 무언의 압력을 쏟아낸 말 가운데 '도토리키재기'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이 쏟아낸 일련의 문장과 말들을 빛의 속도로 분석하면서 그 사람의 평소 진실에 관한 심리를 읽어내렸다. 그 사람은 사과는 커녕 진실과 거짓의 차이는 '도토리키재기'이고 그 사람에게서 잘못은 덮어버리면 그만이며 진실이라는 존재는 외면과 왜곡을 통해 언제나 뒤바뀌어도 탈바꿈을 해도 무방한 가벼운 존재라는 의미로 다가왔으며 대부분 그 자리에 함께 하는 사람들도 일언반구 없이 그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평소 진심인지 거짓인지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인지 사회적 명성탓인지 나이탓인지 주변 시인들에게 칭송에 둘러싸여 무엇이 참인지 거짓인지 모를 입에 달고 다니는 존경에 길들여져 있는 존재이기에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다. 생각컨데 존경심은 커녕 그냥 누구에게든 보스 대접을 기대하는 자질군의 성품을 두루 다 잘 갖추었다 나이로 보면 확실히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만한 나이에 자기 나이만큼 인격의 값을 하고 살아왔을까
그런 그 사람에게 단 한번도 존경심이나 부러움을 가진 적은 없었다. 지금도 여전히 없다. 명성에 걸맞은 단 한편의 시도 인품도 말도 갖추지 못한 그 사람의 존재에 어떤 비중을 둘 이유나 가치는 1도 없었다.
이제 그는 아득바득 정치적으로 탁월하던 그 수명이 다 하고 이빨 빠진 채 토굴 속에 앉은 지금의 그에게 작은 희망도 실망도 감정도 못 느낀다 하지만 그가 던진 ''도토리키재기'라는 말의 칼날은 자신이 보여준 인품은 물론 단숨에 뼈 속에서 영혼의 밑바닥까지 온 생을 다 훑게 만들어 버렸다. 아주 순식간에 그 말이 나의 뇌리에 확 꽂혔다
'이현령 비현령' ' 아시타비(我是他非) '내로불남' '내말이 곧 법이다'에 이르는 그의 날 선 독선을 보면서 불현듯 떠오르는 느낌들을 쓴 시이다 이 우주의 존재를 생각한다면 잘 났고 못났으면 또 얼마나 못났을까 자신이야말로 수많은 현인들 앞에서 키작은 도토리에 해당된다는 것을 정말 모른다는 말일까 진실되지 못한 가면은 언제가 벗기 마련인데 대놓고 가면을 벗는다는 의미는 무엇인지 너무 잘 알 것 같았다
우리 전통 풍습 가운데 시집가는 새색시가 함지박에 엿을 한아름 담아 예단음식으로 가져 가곤 했다. 그런데 이 엿에는 새색시가 가져 간 엿을 먹고 맘에 안들더라도 달게 입을 닫아 달라는 달달한 무언의 압력이 담겨있다 누구든 존경을 받으려면 그만한 일을 하거나 자격을 갖추어야 하고 자랑을 하려거든 항상 나눌 것을 준비해야 하고 진실을 말하려거든 자신부터 진실해야 한다 달리 말하면 진실하지 못하니 진실을 덮기에 급급한 건 아닐까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도토리키에도 가려진 세상에 존재하는 최소한 내가 아는 진실들이 쏙 쏙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