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유나 「아그배나무 여자」

by 김지숙 작가의 집

첫아기 밴 후 그 여자의 배는 한번도 홀쭉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여자의 뱃속에는 올챙이들이 가득 헤엄쳤고

젖통은 퉁퉁 불어서 저절로 짧은 나뭇잎 사이로 나온 것이 색스럽다.

⌜중략⌟

아그배 아그배 데굴데굴 아기 밴 배를 움켜쥐고

산아제한 한다고 절벽에서 낙산하여 그렇게 영원히 가버린 여자

무식하게 무식하게 아기만 낳다가 죽어도

새끼들 자라는 살맛을 잊지 못해 다시 아그배나무로 태어난 저

여자

이 지구의 반 이상의 사람이 여자

어머니라는 거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송유나 「아그배나무여자」 일부



인간이 태어나서 처음 잡는 기둥은 바로 엄마의 품이다. 아기는 엄마 품에 안기거나 엄마의 목을 잡음으로써 비로소 안정감을 느낀다, 그렇다면 엄마는 아기에게 양식의 원천이 되고 아기는 엄마의 보호 없이 성장하지 못한다. 나무는 지구상의 생명체에 모성적 상징으로 이해된다. 무엇보다도 어머니의 몸이 젖먹이 아기에게는 양식의 원천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고대 신화에서 나무는 여러 형상으로 변화한 여성형상의 요정으로 발견된다.(자크 브로스, 나무의 신화, 206-251. G. Gollwitzer, Bäume, 73-94)

그리고 고대 이집트 신화의 누트(Nut)는 나무의 여신으로서 그녀의 그늘에서 죽은 자의 영혼(새의 형상)은 음식과 음료를 얻는다.(이집트의 성스러운 나무들에 대하여, A. Erman, Die Religion der Ägypter. Ihr Werden und Vergehen in vier Jahrtausenden, Berlin 1934, 134) 어머니는 이른바 “최초의 나무”이고 그래서 나무는 그 후에 모성적 상징으로 작용된다.(E. Drewermann)

나무는 인류에게 양식과 보금자리를 제공해 주었고, 살아 있는 것들을 풍요롭게 만드는 여성적인 상징성을 지닌다. 떠나보내되 다시 채우는 그리고 죽은 것들과 다시 태어나는 것들을 항상 곁에 두고 있어 생명성과 결부짓기도 하고, 부드러움과 더불어 여성성을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나무의 특성을 송유나의 「아그배나무 여자」『부산시인』(2004.가을)에서 볼 수 있다. 화자는 나무처럼 끊임없이 생명을 잉태하고 그것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아그배나무 같은 여자를 통해 항상 생명의 탄생을 이어가는 모성성을 보여준다. 치료 심리학에서 나무에 나 있는 상처는 그림 그리는 사람의 정신적, 육체적 상처로 읽혀진다. 잘린 가지는 심한 정신적 피해, 이별 심지어는 죽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나무는 개인적 상징성을 지닌다. 나무줄기는 우리가 세상에 사는 방식, 수관은 정신적 영역을 나타내며, 수관과 줄기의 관계와 뿌리에 대한 수관과 줄기의 관계는 육체적, 정신적 상태의 균형측도를 반영한다.

오귀진의 「나목」『문학도시』(2004.가을)에서 화자는 아무도 찾지 않는 벌판에 홀로 서서 추억에 떨어져 나간 팔을 쳐들고 무엇인가 기원하는 나목의 모습을 통해 모성의 그림자를 느낀다. 나무는 햇살 잘 드는 곳에 서서 그 햇살을 양분 삼아 위쪽으로 자라나야 하지만 시에서 나무는 이미 생명을 잃어버린 죽은 나무의 모습이다. 당당하지도 못한 초라한 모습은 생의 무게에 짓눌려 이미 무겁고 메마르고 지친 상태에 놓여 있다. 이는 마치 어머니가 자식의 안위를 비는 모성으로 간신히 자신을 지탱하는 나무로 그려진다.

본래 나무의 푸름을 접어두고 헐벗은 몸으로, 상처 입은 몸으로 슬프게 나이테 하나를 그려 넣는다. 화자는 나목의 모습을 통해 인고의 어머니를 생각한다. 태양을 바라보지 못하고 헐벗은 몸으로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운명을 고통도 슬픔도 아닌 숭고함으로 표현한다. 더 이상 쓸쓸함도 더 이상의 비틀림도 아닌 인고와 사랑이 숨어 있는 나목임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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