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 「막춤의 종말은」

by 김지숙 작가의 집

희색이

검은 색을 탐하고

검은 색은

흰 색을 농락하면서

겉으로는

제법 모양새를 갖추지만

그 속을 홀랑 뒤집어보면

흰 색은

검은 색을 미워하고

검은 색은

흰 색을 싫어하면서

제 뱃속만을 채우려는

천지개벽(天地開闢)의 막춤을 추고 있었다

-김준형 「막춤의 종말은」



다산 정약용에 따르면 인간은 도의(道義)와 기질(氣質)을 합쳐 본성을 이루는데, 착한 성품대로만 따른다면 자연히 마음의 문제는 해결된다고 하였다. 또한 인간의 본성에는 선과 악이 존재하는데 사람이 기호(嗜好)에 따라 선택할 나름이라 하여 ‘성기호설’을 주장한다. 이는 그가 『중용』에서 ‘천명(天命)은 성(性)이며 성품을 따름이 바로 도(道)라면 성(性)은 곧 도심으로 본다’는 관점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다산은 사단과 칠정의 구분을 포기하고 인간의 모든 정감을 선한 감정과 악한 감정 공적인 감정과 사적인 감정 도심과 인심으로 나눈다.

「막춤의 종말은」에서 화자는 ‘탐하고’ ‘농락하며’ ‘미워하고’ ‘싫어하는’ ‘뱃속을 채우려는’ 등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해당하는 어휘들과 더불어 사물을 바라본다. ‘흰색’과 ‘검은 색’이 지니는 감각적 기호성을 들어 ‘탐하고’ ‘농락하’는 모습으로 색이 지니는 사물의 본성을 언급한다. 하지만 실상은 ‘미워하고’ ‘싫어하는’ 속성을 속 깊이 숨겨두고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로 보면 ‘막춤’을 추는 듯 보인다. 하지만 보이고 들리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화자는 두 사물의 본래적 기호성을 이미 파악하고 있다. 이들의 관계는 서로 자신의 관점에서만 상대를 바라보고 상대의 내면을 파악할 의도가 없는 사물을 빗대는 과정에서 자본주의 사회가 지닌 이기심 소유욕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팽배해 있는 상황들을 꼬집는다.

프롬의 말처럼 우리는 타인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며 사회생활 속에서 능동적으로 책임감을 지닌 채 공동체 의식을 지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모습이 화자의 시야에서는 모두가 상대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부정적인 관점에서 판단하는 모습을 막춤을 추는 것으로 형상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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