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의 과거는 치유 불가한
암 덩어리 같은 거였다
퍼내도 퍼내도 바닥을 드러내지 않는
후회의 샘이었다
2
삶에서 원치 않는 상황이 일어나는 것은
업으로 인한 것이라고 했던가
만난 적 없는 비구는 법문했다
그냥 받아들이라고
과거는 없다고, 있다면 생각할 때만 있는데
그마저도 착각이 만든 것이어서
바꿀 수도 있다고
그때 이후 요지부동의 과거는
말랑말랑해지기 시작했다
3
언제부터인가 과거는 단지 경험으로 바뀌어 있었다
삶에 나쁜 것은 없다는 가르침을 믿는다면
나의 과거가 나쁜 것만은 아닐 거다 싶더니
후회로 가득한 과거를 조금씩
삭제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되었다
유리창의 얼룩을 닦듯이 지우고 나니
나를 옥죄고 있던 과거가
허공처럼 투명해진 것을 볼 수 있었다
텅 비어 있는 어제로 돌아가는 일이
더는 없을 것임을 스스로 일러주었다
날마다 맑은 물을 공양하며 감사하기로 했다
-신현봉 「떠난 자리, 돌아온 자리」
헤겔에 따르면 기억이나 회상은 진리에 대한 사유나 체계의 자기 관계로서의 반성을 의미한다 반성은 회상과 더불어 표현된 마음의 상황이며 이는 감각적 사고에서 출발하는데 이는 진리가 자신의 내부 잠재력을 관찰하고 경험한 것을 보여주는 또 다른 방식이 된다
따라서 이럴 경우 반성은 회상을 동반하며 이 회상은 직접적으로 각인된 기억이라기보다는 각자의 인성 정도에 알맞게 풀어낸 다양한 모습으로 의식적 사유가 재건된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회상은 자연 발생적인 행동이자 생을 되돌아보는 내적 활동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되기도 한다
지나간 시간을 되살릴 수는 없지만 주변과 사물 속에 언제나 과거와 닿아 있다 때로는 단지 떠올리기만 하는 기억에서 과거의 상황과 감정이 가미된 추억은 좀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매개가 되기도 한다 시의 화자에게 과거는 치유 불가한 암 덩어리이거나 후회의 샘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화자는 과거는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만 있고 그마저도 착각이라고 하는 법문을 생각한다. 그 순간 과거는 그냥 경험일 뿐이라고 한다 그래서 후회로 가득 찬 과거를 삭제하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일은 없다고 단언한다
이는 자신의 내면을 관찰하고 자신의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엉킨 실을 풀 듯 과거의 아픈 상처들을 풀어버리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화된 과거를 가진 자로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지닌 채 긍정의 힘을 회복하는 과정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