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몽희 「가난한 밥상」

by 김지숙 작가의 집

가난한 밥상은

한편의 소슬한 시다

데운 밥은 송구하여 그릇 바닥으로 내려앉고

멀건 찌개는 저 혼자 어눌한 변명이다

새는 숲으로 날려 보내고

물고기는 바다가 그립다

되돌아갔지

맞은편 빈자리에 떠나간 아내를 불러 앉히고

묵은 김치를 숟가락에 얹어주며 늙은 주인은 코를 훌쩍거린다

기웃이 넘겨다보던 앞집 살구나무

먼저 익은 살구 서너개 툭툭 던져

모처럼의 파격으로

오늘 저녁은 후식이 호사롭겠다

-이몽희 가난한 밥상




V E 프랭클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았지만 누이를 제외한 형제 아내까지도 몰살당한 사실을 안다 하지만 그는 사랑이란 바로 옆에서 존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따라서 지금 옆에 있다는 사실이나 함께 숨 쉬고 살아있다는 사실이 전제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여 자신의 의도한 바가 아닌 상황에서 잃어버린 사람으로부터 받는 고통을 극복한 그만의 정신적 방식에 관해 언급한 바 있다 따라서 눈앞에 있지 않더라도 함께 하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소중하며 마주보고 또 현재에 함께 한다면 더욱 소중하다는 점을 깨닫는다

시의 화자는 밥상을 펴고 식은 밥을 그릇에 담아 밥을 데운다 그 과정에서 밥그릇 아래로 쏠려 내려가는 밥의 모습을 그릇 바닥으로 내려앉은 밥으로 인식한다 그리고 그 밥은 마치 화자 자신의 처진 삶이나 우울한 감정으로 표현하며 밥상은 밥그릇과 멀건 찌개로 식사하는 외로운 밥상이다

이미 과거 아내와 마주 앉았던 밥상이 아니라 육체적으로 떠나갔는지 아니면 생각 속에서 아내가 떠나갔는지 혹은 과거의 상황을 잊은 아내와 함께 하는지에 대한 정황은 불분명하지만 그러한 상황 속에서 아내를 생각하거나 혹은 실제로 또는 생각 속에서 마주 보이는 자리에 불러 앉힌 다음 묵은 김치를 숟가락에 올려주며 식사한다 아내와 함께 식사를 다 하고 나니 뜰 안의 살구가 힘겹게 받은 밥상과 달리 호사롭게 다가온다는 내용이다

누군가가 시작해야 협력은 시작된다(A 아들러) 이 말처럼 과거 혹은 생각 속에서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화자의 눈앞에 앉은 아내와 더불어 화자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었고 그 속에서 협력은 시작되었다 가족은 개인이 모여서 이루어지지만 개인의 집합이라는 생각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화자는 자신이 당면한 힘든 상황 속에서 그 힘든 일에 야단법석을 떨지도 않고 피하지도 않는다 화자는 다만 어떤 형식으로든 아내를 밥상 앞에 불러 앉히는 방식을 선택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가장 이성적으로 가능한 상황을 이끌어내고 받아들이는 모습으로 포착된다

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 속에서 화자가 현명하게 삶에 대처하는 자세로 나타나며 파격적으로 호사한 후식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나쁜 상황 속에서도 가장 긍정적인 삶의 의미를 찾고자 노력하는 시선이 드러난다 또 시에서 화자는 아내와 함께 하는 힘든 상황이지만 그 상황들로 하여 화자가 상처받기보다는 오히려 순순히 받아들이고 함께 식사하고 후식을 즐기는 등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가치관의 긍정성을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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