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철 밥상

by 김지숙 작가의 집

산 자(者)들이여 이 세상 소리 가운데

밥상 위에 놓이는 수저 소리보다 아름다운 것이 또 있겠는가

아침마다 사람들은 문 밖에서 깨어나

풀잎들에게 맡겨둔 햇볕을 되찾아 오지만

이미 초록이 마셔버린 오전의 햇살을 빼앗을 수 없어

아낙들은 끼니마다 도마 위에 풀뿌리를 자른다

청과(靑果) 시장에 쏟아진 여름이 다발로 묶여와

풋나물 무치는 주부들의 손에서 베어지는 여름

채근(採根)의 저 아름다운 殺生으로 사람들은 오늘도

저녁으로 걸어가고

푸른 시금치 몇 잎으로 싱싱해진 밤을

아이들 이름 불러 처마 아래 눕힌다

아무것도 탓하지 않고 全身을 내려놓은 빗방울처럼

주홍빛 가슴을 지닌 사람에게는 未完이 슬픔이 될 순 없다

산 者들이여 이 세상 소리 가운데

밥솥에 물 끓는 소리보다 아름다운 것 또 있겠는가

-이기철 밥상

인간은 자신의 가치관으로 살아간다 물론 문화나 가치관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요소 등 다양한 공동의 목표를 공유하면서 공동체 속에서 자립적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사소통이 필요하고 대면이나 접촉으로 삶의 동질성을 확보 확인하는 등 일정한 장소와 생활 공간을 공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간에게는 음식 물 잠과 같은 기본적 생리적 욕구에서 나아가 심리적 욕구가 있다 이를 매슬로우는 인간의 욕구가 중요도에 따른 계층으로 구분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이들 욕구가 충족되면 안정의 욕구가 자동적으로 나타나고 안정의 욕구 역시 충족되면 비로소 소속감과 애정의 욕구가 나타난다

시에서 화자는 산 자의 수저 놓는 소리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고 말한다 이 점은 매슬로우가 말하는 1차적 2차적 욕구가 충족된 상태에서 밥상으로 의미되는 소속감과 밥을 하는 애정의 욕구가 나타난다 매슬로우(Abraham Maslow)는 그의 이론에서 인간 욕구의 위계를 통해 인간의 자아를 실현하려는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에게서 자아실현이란 개인이 성장하는 과정이자 개인의 잠재력 실현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성격이란 개인의 독특함과 자신만의 자아실현 욕구에 따라 완성된다 하지만 이러한 욕구들이 충족되지 않으면 심리적으로 자아실현의 단계에 이르지 못하기에 정신적으로도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상태에 놓이며 동시에 삶에 불안과 고독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일어나고 심리적 허기가 찾아든다

그러한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이나 태도 등은 개인의 차에 따라 달리 나타나며 욕구에 대항하거나 극복하는 정도도 달리 나타난다

밥상은 가족이 소통하는 공간이자 삶을 영위하는 주된 공간이다 따라서 그 공간에서 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더해 만든 밥은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해서나 가능한 일이다 산자와 죽은 자의 경계에 놓인다는 의미로 밥이 표현되고 산자를 위해 밥을 짓는 그 행위들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따라서 ‘수저 놓는 소리’ ‘밥 끓는 소리’는 화자가 세상과 소통하는 소리이자 자신이 살아있다는 확신이 드는 순간이며 삶의 의미를 돌이켜보는 계기가 된다 인간은 어떤 경우라도 죽음을 피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살아있는 동안 삶의 의미를 찾고 동시에 매순간 진실하게 자신의 존재를 인식한다

자신의 삶을 충분히 긍정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은 죽음에 대해 힘들어 하지 않으며 죽음을 인식하면서 삶에 대한 열정은 더욱 커진다 따라서 시의 화자는 수저를 놓는 노력의 손길도 밥솥에 물 끓는 소리도 아름답다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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