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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컵

by 김지숙 작가의 집

종이컵




종이컵이 재활용안되는 이유는

폴리에틸렌 때문이다


종이컵 커피가 더 맛있다는

그 사람의 입맛을 사로 잡은

발암물질 유해환경호르몬


머그잔을 쓰면

1년에 15년생 소나무 한그루

심는 것과 같다는데


동해안 산불로 민둥산을 보면서

모두가 종이컵을 버리면

온나라 나무가 울울창창 하겠거니

땅에 가득 나무를 키우는 꿈을 꾼다




관광자에 살다보니 투숙객들이 여기저기 던져놓은 종이컵들이 바람을 타고 숲 사이에 몰려들었다 고향에 돌아왔어 이렇게 돌아오는 방법도 있구나 속삭인다 나무와 종이컵이 주고 받는 말을 가만히 생각해 봤다 정작 사람들은 무심한데 종이컵은 변신한 자기 모습에 반쯤은 뻐기는 모양새다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소나무가 할말을 잊은 채 종이컵이 이리저리 날아 다니는 모습을보면서 움직이니 좋아? 라고 말하고 종이컵은 좋아좋아 라고 연거푸 말하고는 가볍게 날아다닌다 너도 여기 있었어 종이컵은 삼나무에게도 자작나무에게도 말을 건다 다른 종이컵은 내 로고가 더 예뻐 라고 자랑한다

아무리 신나게 말을 하고 다녀도 나무들은 마음아프게 바라보지만 종이컵은 철없는 아이처럼 이나무 저나무를 돌아다니며 부지런히 말을 건넨다 잘 지냈어? 너도 나처럼 돌아다니고 싶지 부럽지 아이 신나 말을 하지만 숲의 나무들은 그저 안됐다는 목소리로 낮게 장단을 맞추고 있을 뿐이다

종이컵하나를 덜 쓰면 산이 살아난다는데 그 말을 철칙으로 삼고 덜 쓰려고 애를 써 왔다 그런데 동해 산불이 난 민둥산을 보고 나서 종이컵을 아끼는 것도 좋지만 산불이 더 무섭고 더 빠른 속도로 내 주변을 황폐화시킨다는 생각에 종이컵이 숲의나무를 망가뜨린다는 생각은 잠시 잊었었다 그런데 오늘은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종이컵을 보면서 다시 나무의 소중함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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