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하단포구
낙동강 맨아래에 위치한다고 아래치 끝치라고도 부르던 하단포구는 안동에 이르는 물길의 시작점이 되기도 한다 조선시대의 하단포구는 명지의 소금 젓갈 갈대 세공품을 실어 나르던 곳이다 김해평야의 벼가 들어오면서 정미소가 생기고 객주가 선행했다 해산물 농산물의 유통이 늘면서 객주의 수가 불어났다
구포에 철도가 생기면서 쇠락한다 또한 매년 낙동강 홍수로 수위가 높아지면서 포구의 조건을 잃고 지금은 몇 군데 재첩을 파는 몇 집만 있다 웅어 민물장어 숭어 도다리 전어 등을 잡지만 이제는 소형선 몇 대만이 남아 겨우 포구라는 이름을 유지한다
하단 오일장은 각지에서 실려 온 물건들을 파는 장꾼들이 모여들고, 각설이들이 각설이 타령을 한다 장타령은 지역마다 익살스런 내용을 조금씩 달리하여 전해져 내려오며 경상도 지방에서는 각설이패들이 장터를 돌며 부르는 소박한 소리이다
하단포구는 을숙도로 들어가는 배를 타는 곳이기도 했다 대학축제가 있으면 이곳나루는 을숙도로 들어가서 갈숲을 헤치고 뱃길을 열며 을숙도의 신비로움을 느끼기도 했다 하단나루가 사라진 것은 많은 기억과 추억을 한꺼번에 데려간 것 같아 안타깝니다
하단포구는 30년 전에만해도 작은형태로 남아있어 가끔 무료한 날이면 그곳을 찾아 배를 타고 을숙도로 들어가서 철새를 보던 기억을 떠올리곤 했었다 금의 아파트가 자리잡고 있고 그 앞은 낙동대로가 자리잡기 전에는 물길이 열려 있어서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아주 작은 포구가 눈앞에 펼쳐졌다 작은 배들이 몇대 포구를 한가로이 지켰다 지금은 아무런 흔적조차도 찾을 길이 없이 사라졌다
웅어는 청어목의 멸칫과 은빛 바닷물고기로 가을전어와 비교되는 봄의 진미로 직결되며, 임금님 수랏상에 오를 정도로 맛이 좋은 어류이다 큰도로에서 힌블록 들어가면 지금도 웅어회를 피는 곳이 딱 한곳 남아있다 3월 4월 5월이면 식당간판 아래에 <웅어회 개시>라는 글씨들이 나붙는다 뼈가 연하고 기름이 가득해서 뼈째 썰어 먹기도 하고 구이 탕 등으로도 먹는 웅어는 6월이 넘어서면 기름기와 살이 빠져나가 맛이 없다
이 일대는 대학촌이라 한때는 술집과 찻집이 양쪽 길옆으로 나란히 들어서있었다 가락타운이라는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땅값이 오르고 가난한 대학생을 상대하던 작은 주점들과 찻집은 자연히 사라졌고 그나마 지금은 딱 한곳 남은 오래된 식당을 보면서 옛정을 떠올리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