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영완론 욕망 여유 일탈의 시학

「눈 온 아침, 내장산」

by 김지숙 작가의 집

탁영완론 욕망 여유 일탈의 시학

「눈 온 아침, 내장산」


A. 카뮈에 따르면 자기 비망록에서 작품이란 일종의 고백이며 자신을 증언이어야 한다 이에 따르면 시 역시 자기 삶에 대한 고백이자 자신을 증언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읽혀진다 편안한 미소 잘 어우러진 모자 옷 신발에 이르기까지 자연스레 조화를 이룬 탁시인의 패션 감각은 그녀가 지닌 멋진 삶의 여유라 여겨진다 시낭송 뿐 아니라 사진 찍는 솜씨 또한 일품인 그녀는 세상을 참으로 재미있고 당당하게 살아간다

그녀의 7번째 시집 「보로메 군도를 떠돌던 안개」는 자연의 가시적인 세계를 통해 비가시적인 세계를 표현하고 있고 시의 소재들이 바다 안개 물 늪과 같은 친수성을 지니는 가하면 그 물들이 변화하여 세상의 경계를 허무는 역동성을 지지고 있다 하지만 끝내는 모두를 상대에게 내어준다 희생당하고 착취당하는 모성성에 귀결된 시적 특성을 지닌다

8번째 시집 「타클라마칸 사막의 사랑」 에서는 앞의 시집에서 보여주던 시적 특징과는 다른 일면을 읽을 수 있다 진정 어린 욕망을 고백하는가 하면 그 고백은 삶에 대한 또 다른 열망임을 알게 한다 그리고 그 열망은 순식간에 화자의 내면 속에서 버려지고 비워진 다음 자신만의 독특한 삶의 여유로 그려진다 인간의 욕망은 결백과 부재 좌절과 분열을 통해 존재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욕망은 여전히 충족되지 않고 반복되는 특징을 지닌다. 이러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사람들은 죽음의 충동에 빠지지 않고 삶을 이어가는 것이리라


집 떠나온 외박의 아침 그 마음

산장에 쌓인 흰 눈이 알아라

세상의 님들은 다 땅 속에 있더라

아니면 하늘을 펄펄 날아

함박 눈발로 나를 찾더라

세상의 님들은 다 멀리 있더라

집 떠나 외박의 아침이 소복이듯

차연히 앉아 아름답더라

아니면 그리운 호수만 내 안에 드넓어 무정하더라




지라르에 따르면 비자발적 욕망의 구조는 욕망의 주체와 그 대상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직선적인 관계가 아니라 그 주체로 하여금 그 대상을 욕망하게끔 유발하는 제삼자인 타자가 존재하는 삼각형 구조를 지닌다 이 때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이 타자는 욕망의 모델인 동시에 대상과 주체를 연결시켜주는 仲介者가 된다 주체의 욕망은 그 매개자의 욕망을 모방하여 이루어진다

주체는 그 대상을 직접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매개자를 모방하여 매개자의 기준에서 보려고 하며 매개자에 의해 보이는 그 대상을 향하게 된다 대상은 여러 번 바뀌는데 바뀌더라도 매개자의 모방은 어떠한 경우라도 변함이 없다 이런 욕망의 구조는 직선적인 2항 구조가 아니라 주체와 대상 사이에 중개자가 들어있는 3항 구조가 되는데, 이를 가리켜 지라르는 삼각형 욕망 혹은 중개된 욕망 모방된 욕망이라 한다 「눈 온 아침, 내장산」에서 화자는 자신이 많은 것을 이루었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남은 욕망은 삶을 허무하게만 느껴진다 화자는 스스로가 욕망의 주체가 된다 그 욕망의 대상은 님이며 눈은 나와 님의 중개자 즉 타자가 된다

이 매개물인 눈은 화자가 바라는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대상의 모방이 된다 욕망의 주체인 화자의 마음을 알아주고 하늘을 펄펄 날아다니며 어디까지나 화자를 찾아와 줌으로써 욕망의 주체와 거리가 좁혀준다 세상 속에 있는 화자의 욕망의 대상인 님은 화자에게서 너무 멀다 화자는 외박한 아침 풍경이 처연히 아름다운 소복으로 이를 화자 자신의 모습으로 표현한다

이는 매개물과 욕망의 주체가 일치된 모습으로 표현되며 욕망의 대상이 너무 멀리 있기에 타자(매개자)가 대상화되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것은 화자 자신의 육체적 욕망의 상실되고 정신적 욕망이 채택되는 셈으로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인간의 욕망에 관하여 孟子는 「告子上」에서 삶도 내가 욕망하는 바이고 義도 내가 욕망하는 바이나 그 두 가지를 겸하여 내가 얻을 수 없을진댄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하겠다고 하여 마음의 도덕적 가치가 몸의 자연적 기호보다 더 善의 가치를 띠고 있다고 암시한 적이 있다 이는 위의 시에서 화자가 삶 속에서 욕망하는 바의 바램에서 벗어나기 위해 욕망의 대상으로부터 더 멀다 자신과 욕망의 대상과의 거리는 멀어지고 정신적 거리는 가까이 머물고 화자는 욕망의 대상과 관계에서 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렇게 욕망의 주체인 화자와 대상 그리고 매개물을 사이에 둔 삼각구도는 「화지천 낙동강」에서도 나타난다 처녀인 화자는 소나기와 천둥과 불어버린 강물과 한 남자와 밤을 새웠노라고 고백한다 욕망의 주체인 화자와 대상인 한 남자 사이에는 소나기 천둥 강물과 같은 매개물이 있고 한자리에서 밤을 새웠다

시에서 화자의 욕망의 매개는 한 남자 천둥 강물 등으로 나타난다 솔직히 그 남자가 욕망의 대상인지 혹은 화자의 고백을 듣는 제 삼의 인물이 욕망의 대상인지는 불분명하지만 문맥상으로 보아 후자가 더 명확해 보인다 그렇다면 시의 화자는 고백을 듣는 사람에게 더 가까이 가고자 여러 욕망의 매개를 보여주고 그것을 각인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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