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낙동강 둑길

by 김지숙 작가의 집

낙동강 둑길



갈잎이 유난히 곱던 지난해 겨울 할머니의 손을 잡고 구포장엘 갔다

겨울 들판 추운 바람을 피하며 양지바른 틈에 곱게 핀 붉은 상치가 먹고 싶다 하시며 여름 내내 앓으셨던 할머니 그날따라 발걸음을 재촉하셨다 원 없이 그 쌈을 드시고 할머니는 세상을 뜨셨다

할머니 그 할머니의 할머니가 구포장을 다녔을 때에도 낙동강 둑길은 늘 같았다 강바람, 갈매기소리가 장난을 치고 숭어 떼 철새 떼 함께 놀던 곳 둑길의 갈잎은 가지마다 하늘과 강물을 담았다

올 겨울, 둑길에 아스팔트길이 났다 빈혈기가 돌았고 수도공사 전기공사 도시가스공사 하수구공사 가로수 정비공사 우회도로 공사 민들레꽃 갈대 쑥부쟁이 주검들이 즐비하다 지난밤 폭우로 깊게 파인 물길에 숨을 텄는지 누운 꽃들이 다시 피었다





구포의 구龜는 갑우 또는 거뵈로 해석하는데 거뵈개라는 설과 구를 검神으로 해석하여 굿개라고도 한다 굿을 하던 장소이거니 거북이 사는 곳이라는 이중설이 있다 1871년 『영남 읍지嶺南邑誌』에서 처음 명칭을 발견할 수 있으며 3일 8일 장이다

구포장은 조선시대 후기에 개설된 오일장이다 처음에는 주로 소금 포목 석유명태 등이 주를 이루는 집산과 교역으로 이루어지던 곳이었다 상인이 아닌 일반인들로 이루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인들로 기존의 구포장이 상설장을 이루면서 3일 8일 장날이면 주변에서 농사짓던 일반인들이 자신의 농산물을 들고 와서 파는 형식으로 형성된 장터이다

원래는 구포나루 주변으로 자연형성된 시장이었으나 화재를 맞아 이재민이 발생하였고 이루 낙동강이 범람하면서 시장이 침수되어 제방을 쌓았고 현재의 장소로 옮겨왔다

구포시장은 부산에 오래 산사람이라면 한번 이상을 가게 된다 물론 나이가 제법 든 사람을 기준으로 삼을 때 이야기이다 지금도 구포장을 지나가는 버스를 타면 장날인지 아닌지를 알게 된다 지금은 북구 주민들에게는 생업이고 일반인들에게는 생활을 이어가는 화력소가 되는 곳이다 구포장은 언양장 이상으로 크다 교통이편리하니 사람들이 모여들어서인지 장날 구포장에 발을 들여놓으면 중요 구간에는 인파에 떠밀려서 지나곤 한다

그래서 나는 대체로 장날에 구포장을 가면 매인으로 되어 있는 구간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약방골목으로 진입하면 사람이 덜 붐빈다 그래서 이곳으로 들어서서 자연스레 형성된 길고 좁은 골목길을 천천히 걸어가면서 할머니들이 손수 농사지어 가져온 농산물들을 들여다보고 사고 싶은 것을 사곤 한다

어느 해인가 할머니와 함께 구포장엘 갔다 할머니의 입맛에 맞는 채소를 사기 위해서였다 복잡한 장을 누비며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수수떡 부침개며 상추를 사고 과일 삶은 옥수수 등도 샀다 많이 사면 무거워서 들고 다니기가 쉽지 않아 늘 탐이 나는 가벼운 것으로 최소한만 산다 하지만 그날은 양손에 가득 들고 낑낑 대며 차로 왔다 가까이 살고 있을 때라서 거리는 멀지 않지만 장거리에 한번 휩싸여서 차 타는 곳으로 돌아오는 길은 정말 무지 멀고 힘이 들었다

그래도 가끔은 구포장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사는 맛을 느껴질 때가 있다 힘이 빠지고 활력이 사라지고 의기소침한 날이면 예전에는 자갈치 시장을 찾았다 그런데 자갈치 시장이 현대식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서 예전 같은 느낌을 잃었고 이후에는 구포장을 가끔씩 찾는다 장꾼들이 목청껏 외치는 소리면 북적대는 사람들의 부산한 걸음들에서 생기를 느끼기도 한다 지금은 그도 저도 아닌 곳에 지내면서 가끔 그곳의 일들을 그린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웹툰 평론 미완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