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자연의 브리콜라주
시집『햇빛과 연애하네』

「대물림」

by 김지숙 작가의 집

소박한 자연의 브리콜라주

시집『햇빛과 연애하네』




설거지 끝내고 개숫물에 손 헹구고

소파에 돌아와 혼자도는TV 그냥 쳐다보는데

TV앞에 쪼그리고 앉아 레고 조각을 맞추던 홍아가 손털고 일어나서 짧은 다리 달랑 소파에 올리고

나처럼 TV에 눈을 맞추면서

보고싶었어요. 할머니

귀엣말하고는 나와 나란히 TV를 본다

그와 나는 언덕마루에 앉았다

발등으로 떨구던 네 개의 눈이 들판을 건너서 산등을 향해 달리다가

그 위에 번지는 노을에 눈을 댔다

까만 귀밑머리 가까이 대고 그가 나에게

보고 싶었어요...

타는 노을의 심장을 바라보는 내 얼굴도 붉어져

그와 나란히 노을에 그냥 눈을 줬다

마흔 두 달 먹은 남자가

쌍육 세 나의 여자에게

이히 리베 디히‘하고 속삭인다

사랑이 시간을 끌어와 대물리고 있다.

「대물림」



Sternberg(1986)의 사랑의 삼각구조이론에 따르면 공유 원활함 따뜻함에 해당되는 긍정적 인지의 친밀감(intimacy) 성적 몰입과 같은 뜨거운 감정에 해당되는 열정(passion) 장기적으로 사랑을 지속시키기를 원하는 책임의식에 해당되는 헌신(commitment)의 세 가지가 갖춘 상태를 완전한 사랑으로 간주한다

화자가 TV를 시청하면서 TV 속의 남자가 보여주는 열정적 유희적 사랑을 하는 장면을 손자와 더불어 시청한다 동시에 화자가 손자를 향한 헌신적 사랑 우애적 실용적 사랑 표현 장면들이 TV속에서 방영되는 사랑하는 장면과 겹쳐 표현되면서 혼란한 아이러니가 나타난다

건성건성 읽는다면 읽는 순간 마흔 두달이라는 나이에 관계의 혼돈이 일어날 수도 있다. 시에서 화면 속의 사랑은 노골적이기보다는 어떤 사물이나 개념으로 간접적으로 표현된다 사랑하는 남녀 사이에서 공유되는 감정을 조용하면서도 감미로운 격정으로 표현한다 반면 오랜 세월 함께 해 온 손자와의 사랑은 우애적 사랑에 해당되며 편안하고 정다우며 신뢰감을 드러낸다

이 사랑은 내면적으로 성숙하여 자녀에게 전해지고 긍정적 경험에서 긍정적 사랑으로 자리 잡아 대대로 온유하게 고스란히 전수된다 따라서 이 시에서의 화면 속이나 손자와의 관계에서는 친밀감이나 헌신적인 사랑은 나타나지만 열정이라는 사랑은 보이지 않는다 TV 화면 속에서 표현된 자연은 화자에게는 언덕마루에 앉았던 기억과 겹쳐진다

두 사람의 눈망울은 들판을 건너 산등을 달리고 노을에 눈이 간다 화자는 노을에 시선을 준다 자연을 받아들이는 입장기라보다는 자연은 일정한 거리를 둔 채로 떨어진 상태에서 존재하는 자연을 바라본다 이는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자연에 눈을 주거나 노을의 심장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자연에게 거리감을 지니며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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