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자연의 브리콜라주
시집『햇빛과 연애하네』

「진지왕과 도화녀」김규화론

by 김지숙 작가의 집


「진지왕과 도화녀」



왕은 도화녀가 보고싶었다

미복微服을 하고 장텃길을 한바퀴 돌면서

맨처음 본 그때부터

장텃길의 그녀가 앞치마 안에 손을 묻고

양 볼에는 복사꽃이 피어나는 그때부터

회오리바람이 불어와 가슴을 후리고 지나갔다

왕은 그녀가 보고싶었다

한밤이면 그녀의 집을 찾아

용포龍袍를 벗고 미복을 입고 미복을 벗고 귀복鬼服을 입고 왕궁을 빠져나와

그녀의 싸리나무 울타리를 넘었다

초가집 흙벽을 넘고 그녀에게

정신이 혼혼하여 까무러진 그녀에게

나는 저승에서 온 당신의 애인, 방안 가득 스며들고 이승의 밤이면 밤마다 은밀한 사랑이 스며들고

열매로 얻은 아기 비형랑을 이승과 저승 사이로 그네처럼 흔들고 있다 도화녀는



우리 현대시에서 사랑을 절제미로 승화시켜 표현하는 경우가 자주 나타난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갈애는 생물체가 자기 종족을 번식하려는 욕구와도 같은 생식욕과 관련된 감각적 욕망의 대상은 사랑으로 나타난다. 시에서는 서로를 끌어당기며 서로를 품고 어루는 환희로운 사랑에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숙명적 사랑이 나타난다 이러한 갈애는 번뇌로 인해 생사를 끊임없이 윤회하면서 괴로움을 겪지만 시에서는 고통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이상과 현실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열렬한 사랑이 드러나는 이 시는 원초적 사랑의 맥락에 깊이 닿으며 열정적 사랑은 죽음도 가로 막지 못하는 내용이 현재화된다

어떤 공포도 사랑의 도취를 이겨내지 못한다 진지왕과 도화녀 간의 사랑은 몸으로 느끼는 온전한 사랑이다 성애에 집중하면서도 삶의 일과를 토대가 된 이상과 현실이라는 두 시공간을 오가는 두 종류의 사랑이 나타난다 삶이나 성 어떤 공포에도 제어되지 않는 사랑의 삼위일체는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들 간에 완전한 사랑으로 자리 잡았다 그 사랑은 격정적 희열상태에 놓인 사랑으로 이 경우 친밀감 헌신 열정으로 이루어진 완벽한 사랑이자 감각적 접촉과 느낌 집착으로 만들어진 관계에서 오는 사랑이다 이는 이심전심의 상대가 있기에 가능하며 신비한 힘을 지닌 채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일이 가능하다 도화녀의 볼에 복사꽃으로 피어나는 존재로 자연이 표현되거나 가슴을 후리치고 가는 회오리바람으로 표현되어 왕궁을 벗어나 싸리나무 울타리를 넘어 초가의 흙벽을 넘는 신분의 차이를 구분 짓는 기준이 된다 이승과 저승이라는 시공간적 변별성은 밤이 존재하기에 가능하며 이 밤은 두 사람의 사랑을 이어주는 시간적 매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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