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룽나무와 나비」

소박한 자연의 브리콜라주시집『햇빛과 연애하네』

by 김지숙 작가의 집

「귀룽나무와 나비」


흰 꽃을 피운 귀룽나무 집한 채가

향내 진동하는 꽃술 밖으로

서늘한 꽃 궁전의 둥긋한 지붕 밖으로

나비 한 쌍을 내보낸다

북한산 골짜기는 파란 하늘 벽을 따라서

하얀 두 날개를

폈다가는 접고 오므렸다가는 다시 펴 날아가는

나비들의 낭떠러지다

앞서는 나비가 얽다가 뒤서는 나비가 섥다가

동그라미 그려서 터뜨리는 허공 속에서

멈출 수 없어 마침내 부서질 듯이

끌고 당기는 팽팽한 사랑놀이 끝에

나비 한 마리는 갑자기 숨고

남은 한 마리는 날개짓 빨라져

귀롱나무 깊은 심장에 바람처럼 한 점 부서진다


흰꽃 한 채 등지고 사라진

나비의 시체가 허공에 가득하다

시체에 가린 하늘이 꽃궁전 안으로 숨는



갈애渴愛란 목마름이나 갈증을 뜻하며 자극을 향한 갈망과 채우지 못한 열망으로 강열하게 대상을 찾는 한편 끊임없이 이 상태가 재생되는 마음을 일컫는다 이 갈애는 불교의 12연기에서 언급된 바 갈애를 완전히 뿌리 뽑아야 열반에 이르고 그렇지 않으면 윤회에 묶여 나고 죽기를 되풀이 한다 매순간 알아채지 못하면 갈애는 업을 생성하고 생과 노사로 이어지고 윤회의 길에 들어선다

갈애를 놓으면 생사고통에서 윤회에서 벗어난다 모든 번뇌의 근저에 있는 이 갈애는 윤회를 반복하는 원인이 되는 욕망의 총칭이며 이를 추구하는 순간 또 다시 새로운 윤회를 만든다 귀룽나무와 나비 간의 사랑이 나타나는 이 시에서는 귀룽나무의 꽃은 바람이 불면 흰 나비처럼 날아 나무에서 떠나가는 모습이 화자에게는 마치 나비가 세상 밖으로 나가는 모습처럼 각인된다 귀룽나무와 나비가 서로의 생명성을 따뜻하고 원활하게 공유하는 가운데 이르는 친밀감에 이른다

귀룽나무를 떠난 나비 간의 사랑은 귀룽나무에 핀 꽃들이 바람에 흩날리는 광경과 나비 두 마리가 죽음에 이르는 사랑놀이가 겹쳐 표현된다 열정적으로 사랑하던 두 마리 나비 중 한 마리가 먼저 죽어버리고 나머지 한 마리도 귀룽나무에 부딪쳐 사라지는 비참한 상황이 나타난다 나비 간의 사랑은 유희적 사랑으로 갈애에 해당되며 충동적이며 무의식적 친밀감과 열정으로만 이루어진 로맨틱한 사랑이 나타난다 귀룽나무는 모성 이미지를 갖고 새로운 생명체를 생산하는가 하면 다양한 균열과 갈등을 어루만지고 흡수하는 생명성을 지닌 모성애의 실체로 다가온다

나비의 마지막 죽음까지도 껴안는 귀룽나무의 모성애가 나타난다 나비 간에 나누던 사랑은 어느 특정 순간에 몰입하면서 죽음을 환기하는 사랑의 완결을 언급한다 이 열정은 몰입에서 비롯되면 사랑의 관계망을 살펴보면 사랑의 절정이 죽음과 동일시되는 극단적 아름다움의 정서로 귀룽나무 나비로 귀결되는 상상력의 극대화 속에서 현실과 환상이라는 경계를 넘나드는 가운데 사랑의 관계망을 몰입시킨 이 시에서는 특히 자연 속에도 존재하는 사랑의 본능을 표현하는 성 에너지의 발현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생명력을 지닌 채 살아있는 귀룽나무와 나비와 같은 자연 생명체도 포용하고 때로는 폭력적 난폭한 사랑도 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인간 뿐 아니라 자연 역시 갈애의 감정을 지니며 이는 인간과 유사한 점이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삼았다 나아가 식물 동물 화자는 서로 하나의 생명체로 연결되어 존재의 진정한 관계로 나아간다는 점을 환기한다. 화자는 귀룽나무가 꽃을 나비처럼 내보내는 시선을 고정시킨 채 꽃을 따라가면서 나비 같은 꽃의 일생과 마침내 부서지고 사라지는 허망함을 보는 귀룽나무의 어미된 심정을 드러낸다 꽃을 나비로 나비의 극단적 사랑으로 자연이 보여주는 사랑의 영역을 점점 확대시켜 가면서 사랑이 자연의 커다란 섭리 중 하나라는 점을 각인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지하철에서」